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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둘 (지대넓얕2) part2 [과학]

by Utnapishtim 202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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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 / 2. 과학 / 3. 예술 / 4. 종교 / 5. 신비 : 채사장님 글에 첨언하거나, 요약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입해서 정독 바랍니다.

지대넓얕 시리즈 구조
지대넓얕2 part2 과학

2. 과학 

1) 과학의 역사 : 절대주의에 대한 낙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진리를 찾기 위해 인류는 탐험을 계속해왔고, 다양한 진리의 후보들을 발견했다. 첫 번째 후보가 철학이고 두 번째 후보가 과학이다. 현대인에게 과학만큼 신뢰받는 진리의 후보도 없다. 과학 역시 진리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인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로 알아볼 수 있다. 다만 과학에서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는 항상 비주류로 배제되어왔고, 등장한 시기도 비교적 최근이다. 그래서 절대주의 측면이 강했던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과학사를 알아보고, 다음으로 아인슈타인 이후의 현대과학이 보여주는 상대주의적 특성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에 대한 회의주의적 견해가 과학철학 속에서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것이다. 

2) 고대 과학 :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고대 과학은 사유실험이나 추상화 과정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었으므로 과학이라기 보단 철학과 같은 면모를 보였고, 이 둘이 실제로 구분되지도 않았다. 자연철학자들은 주로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이런 기본 요소를 아르케라고 하는데, 물, 불, 원자 등이 아르케의 후보들이었다.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 보았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데모크리토스는 원자가, 피타고라스는 수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이 시대 중요 인물로는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 등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2세기 중엽에 활동한 인물로, 천문학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그는 당시 천문학 지식을 모은 저서 알마게스트에서 천동설을 주장했고, 이에 대한 근거를 수학적으로 기술했다. 천동설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의 천체들이 회전한다는 설명으로, 그 때 당시는 매우 상식적인 사고였다. 천동설은 지구가 정지해 있다는 상식에 부합했고, 수학적으로 예측이 되었으며, 신이 창조한 인간 세계를 세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이후 1400년간 유럽인에게 거부감없이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3) 중세 과학 : 과학의 잠복기와 오컴, 중세 천 년은 과학의 암흑기인데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수용한 스콜라철학에 의해 현실 세계와 경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명맥을 이어갔다. 특히 스콜라철학 시기에 활동했던 신학자 오컴은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부르는 원칙을 제시했는데 이는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서로 다른 두 이론이 존재할 때, 논리적으로 더 간결한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진실에 가깝다는 사고방식이다. 오컴의 면도날로 인해 신학의 영역(명확하게 지각할 수 없는 대상)과 철학의 영역(명확하게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을 구분해 냄으로서 중세 시기 천대받았던 철학이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 말기가 되면 믿음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오컴의 면도날처럼 객관적인 이론을 정립하고 찾아내는 방법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탐구는 결국 과학 담론이 탄생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제공했다. 

오컴의 면도날(신학과 철학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출처 : 뉴턴 과학과 철학

4) 근대 과학 : 갈릴레이의 지동설 그리고 수학적 근거, 중세가 저물고 르네상스가 도래한 시기에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등장하며 비로소 비로소 과학이라 부를 만한 탐구 방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폴란드 천문학자로 1400년간 진리로 받아들여진 천동설을 비판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이단 재판을 우려해 출간을 주저했던 것과 달리, 그의 저서는 교회와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가 경험한 관측 자료나 수학적 근거를 적절히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거가 부족한 주장은 그 내용이 아무리 파격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공론화한 인물이 코페르니쿠스임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이는 갈릴레이(1564~1642)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그는 경험적 관측 자료와 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지동설을 지지했다. 그는 "우주는 수학 문자로 쓰인 책"이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자연 과학의 원리에 수학을 적용하기 위해 힘썼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 과학을 출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갈릴레이가 일반적으로 과학의 아버지라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지동설에 대한 저서는 교황청에 의해서 금서가 되고, 갈릴레이가 재판에서 자신의 견해를 철회할 것을 강요받은 것도 그의 근거가 수학적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항상 유의미하게 진리를 내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인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어반복이란 정의하는 말이 정의되는 것을 되풀이하는 특수한 문장을 말한다. 수학이 내적으로 언제나 참일 수 밖에 없으므로 그 관찰 결과도 언제나 참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과 과학자 집단이 현대 사회에서 진리의 담지자로 존경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은 수학과 관찰의 방법을 병행함으로써 합리론과 경험론 모두를 이론에 대한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검증 절차가 과학이 그토록 빠른 시간에 진리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게 한 조건이었다. 갈릴레이가 과학의 아버지인 것은 그가 과학적 관찰과 수학적 근거를 병행해서 제시하는 방법론의 시초이기 때문이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을 추가적으로 보충한 인물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1571~1630)다. 그의 스승이었던 티코 브라헤가 남긴 방대한 천문학 자료를 기반으로, 우주를 기하학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케플러는 우주가 아름다운 기하학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서 행성들의 궤도가 완벽한 원 형태 일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자료를 아무리 맞춰봐도 계속 오차가 발생했다. 케플러는 어쩔 수 없이 오차를 없애기 위해 행성들의 궤도를 원이 아닌 타원으로 계산했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케플러의 법칙을 찾아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출처 : 지대넓얕2

케플러의 제1법칙은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며, 타원의 초점중 하나에 태양이 위치한다는 이론이다. 타원은 원래 두 개의 정점(초점)을 갖는다. 그중 한 곳에 태양을 위치시켜야 실제 관측 자료와 일치했던 것이다. 제2법칙은 타원의 궤도를 도는 행성이 같은 시간 동안 지나가면서 만드는 부채꼴의 면적이 언제나 같다는 이론이다. 이를 통해 태양에 근접할 때와 멀어질 때의 행성 속도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자연을 기호화 하고 위치 도식화 한 뒤 수학화 하였다. 출처 : 지대넓얕2

갈릴레이와 케플러 이후 행성들의 움직임은 수학으로 기술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데카르트가 기하학과 대수학을 연결하는 해석기하학을 탄생시키면서 과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수학은 숫자와 문자로 수학식을 기술한 방정식 문제를 푸는 수학 분야를 말한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수학의 두 분야인 기하학과 대수학이 따로 발전해가는 학문이었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이 둘을 연결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 방법이란 좌표 평면이었다. X축과 Y축을 갖는 2차원 평면 위에 도형을 올려놓으면, 이를 문자로 표기할 수 있었다. 해석기하학의 탄생이 의미하는 것은 기하학이 된 자연 세계가 이제 문자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방정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자연세계를 수학의 언어로 온전히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 

5) 뉴턴 : 존재에서 관계로, 물리학의 확장, 자연과학에 수학을 적용하는 것은 뉴턴(1642~1727)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했다. 영국에서 태어난 뉴턴은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로 활발히 활동했다. 이와 동시에 연금술과 신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것은 시대 상황에 따른 것으로 과학과 종교와 연금술이 느슨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뉴턴의 다양한 연구 분야 중에서도 최대 업적은 뉴턴 역학 정립에 있다. 뉴턴은 중력에 관심이 많았고 만유 인력으로서의 중력을 수학으로 정리해냈다. 당시 사람들도 중력에 관심이 많았는데 무거울수록 중력이 강하고 가벼울수록 중력이 약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뉴턴은 인력이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기본 상식을 수학으로 표현했다. 뉴턴 역학의 의미는 기존 과학이 가지고 있던 관심사를 확장했다는데 있다.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기하학을 통해서 사물들을 수학화 했다면 뉴턴은 그 사물들 간의 보이지 않는 힘을 수학으로 정리해낸 것이다. 철학적으로 표현해보자면 뉴턴은 특정 존재자와 다른 존재가 맺고 있는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수학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뉴턴으로 인해 물리학은 존재부터 관계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수학으로 다를 수 있게 되었다. 뉴턴이 완성한 수학적 우주에 더 이상 신이나 영혼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6) 아인슈타인 :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 

특수상대성이론 : 뉴턴역학의 토대 위에서 과학은 200년 넘는 시간동안 안정적이고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빛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지금은 전자기파로서의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음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빛은 소리와 같이 파동으로 인식되었다. 파동은 매질의 진동이 주기적으로 움직이며 퍼져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19세기 사람들은 태양 빛이 지구로 날라올 때, 우주에 가득 찬 매질 에테르의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에테르를 검증하기 위해 1887년에 마이컬슨과 몰리가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해서 검증 실험을 진행했다. 이 결과 우주 공간에는 에테르가 없다는 것과 지구의 운동과 무관하게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게 관측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한 약 30km/sec로 항상 일정한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같은 방향으로 속도를 더하면 가속이 되고 반대방향으로 속도를 빼면 감속이 되는게 일반적인 현상인데 빛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주선 속도 20km/sec 인데 헤드라이트를 켰다면 관측자 입장에서 보면 20+30km/sec라서 합이 50km/sec가 빛의 속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빛은 30km/sec로 동일하고 단지 빛의 파장이 짧아지게 된다. 물리량이 항상 같은 값을 지닌다는 것은 아직도 과학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20세기에 활동한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빛의 성질을 토대로 사유실험을 거쳐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론을 도출해냈다. 특수상대성이론이라고 하는 이 이론은 우선 두가지 전제를 한다. 하나는 빛의 속도가 30km/sec로 절대적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이렇게 빛의 속도가 고정된다면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관측자가 보든 빛의 속도는 C로 일정하다. 출처 : 뉴턴 상대성이론

물리학의 가장 기초함수인 '거리=속도x시간' 에서 속도가 고정된다면 나머지 변수인 거리와 시간이 조정되어야 한다. 실제로 빛의 속도 99%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탑승자는 우주선 밖에 있는 관찰자보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 이를 쌍둥이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빛의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왜냐면 빛의 속도에 도달할수록 물체의 질량은 점점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선은 빛의 속도 100%에 도달할 수 없다. 무한대의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광속의 절대성'과 '속도, 거리, 시간'의 관계를 전제로 심도 깊게 탐구되었고,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가) 물체가 빛의 속도 c에 도달할수록 물체가 느끼는 시간이 느려진다. 나) 물체가 빛의 속도 c에 도달할수록 물체의 길이가 짧아진다. 다) 물체가 빛의 속도 c에 도달할수록 물체의 질량이 증가한다. 이를 토대로 상상해본다면 물체가 점차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그 물체가 느끼는 시간은 관찰자가 바라볼 때 느리게 흘러갈 것이고 물체의 길이는 짧아질 것이고 질량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다. 만약 질량이 음수 혹은 허수라면 빛보다 빠르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타키온이라는 상상의 물질이 탄생했다.

일반상대성 이론 : 1905년에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십여 년이 지난 1916년에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특수 상대성이론이 빛의 속도와 관련된 시공간과 질량의 관계 이론이라면, 특수 상대성이론은 중력(가속도)과 시공간에 대한 이론이다. 좀 더 자세히 풀어보면 특수 상대성이론은 우주에서 빛의 등속도로 움직이는 특수한 영역의 물리학 이론이라면, 일반 상대성이론은  등속도를 포함한 가속도 운동을 하는 일반적인 영역의 물리학 이론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가속도 운동이 중력의 작용과 동일하다는 발상에서 중력의 본질을 밝히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즉, 중력가속도와 운동가속도는 구분되지 않는다. 이를 등가원리라고 한다. 우주선이 무중력 상태에서 중력가속도 1G로 상승한다면 탑승자는 지구와 동일한 가속도를 느끼고 중력과 동일한 만유인력을 느끼게 된다.  

중력파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동일하다. 출처 : 뉴턴 상대성이론

특수 상대성이론을 통해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로 매우 빨라지게 되면 시간과 공간이 변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만약 속도와 중력을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중력이 매우 강해지면 가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의미이므로 동일하게 시간이 느려지고 공간이 변화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중력 현상이 실제로 시공간의 휘어짐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텅 빈 우주 공간에 질량을 가진 물체가 등장하면 그 물체를 중심으로 주변 시간과 공간이 그 물체의 중심으로 휘어진다. 이처럼 중력이 질량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의 곡률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1919년 멀리서 오는 별빛이 태양 주변을 지나면서 구부러지는 현상(중력렌즈)이 관측됨으로써 사실로 증명되었고 학계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빛은 질량이 없으므로 뉴턴역학에 따르면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빛이 중력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중력이 물체에 작용하는 특정한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일반 상대성이론은 과학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뉴턴역학의 지위를 대체하며 근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이후의 물리학자들은 상대성이론에서 도출되는 결과들을 토대로 블랙홀의 존재, 우주의 팽창 등 다양한 현상들을 예측했다.

우선 블랙홀은 시공간의 곡률을 만드는 물체 M의 질량이 무한히 키워간다고 가정함으로써 예견되었다. 질량이 점차 커질수록 물체 M이 만드는 시공간의 곡률도 무한히 커질 것이고 결국에는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깊고 강력한 곡률을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했다. 빛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은 공간 자체 구멍이 생긴다는 의미인데 블랙홀이 존재함을 미리 예견한 셈이다. 

다음으로, 팽창 우주론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면밀하게 검토한 러시아의 수학자 프리드만과 벨기에의 천문학자 르메르트가 주장했다. 팽창 우주론은 이름 그대로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정적인 우주를 주장하며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상수를 도입하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이 모든 은하가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모두 후퇴하고 있음을 실제로 관측하면서, 팽창 우주론이 정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 도입을 생애 최대의 실수라며 주장을 철회했다. 

상대성이론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학에서 리만 기하학의 탄생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세기 수학자 리만이 정립한 이 기하학은 기존의 유클리드 기하학의 문제를 넘어서는 이론으로 제시되었다. 그렇다면 유클리드 기하학과 리만 기하학의 차이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유클리드 기하학은 기하학적 대상이 2차원의 면에 위치하는 수학이다. 반면 리만 기하학은 휘어진 공간에 위치한 기하학적 대상에 대한 수학이다. 3차원 이상의 휘어진 공간에 위치한 기하학적 대상에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 기하학의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이지만, 축구공처럼 휘어진 공간 위에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를 넘는다. 유클리드의 제5공리인 평행선 공리도 마찬가지여서, 2D인 유클리드 공간의 평행한 두 직선은 절대로 만나지 않지만, 곡률을 가진 3D 공간 위의 평행한 두 직선은 서로 만나게 된다. 뉴턴역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물리학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비유클리드 기하학, 특히 리만 기하학 위에서 전개되는 물리학 이론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상대성이론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수학의 발전이 있었다. 

7) 현대 과학 : 결정되지 않은 우주의 미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현대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거대한 이론이지만, 근대 물리학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고 더 적합하기도 하다. 그것은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을 포함해서 그 이전의 물리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갖기 때문이다.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은 동일한 세계관을 갖는다. 그것은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결정론은 우주의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수학과 물리학의 법치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고 예측된다. 특정시점의 물리적 조건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알 수만 있다면 우주의 과거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물리학은 결정론의 전제와 확신 위에 쌓아 올려진 왕국이다. 그런면에서 절대주의 측면의 과학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리학에서 상대주의 경향을 띠는 견해를 찾는다면 그것은 현대 양자역학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양자역학의 결과 역시 수학으로 정리되고 예측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양자역학의 결과값은 확률로만 예측될 뿐, 확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양자역학의 세계는 비결정론적 세계다. 우주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자신이 제시한 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탄생한 양자역학이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는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과학자 닐스 보어와의 토론에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 세계관을 문제삼았다. 20세기의 과학적 실험과 검증은 오늘날에 이르러 결국 비결정론적인 양자역학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제로 양자역학의 예측은 매우 정확한 편이고, 실용적인 면에서도 현대 기술 문명에 크게 기여했다. 

양자역학은 논의되는 범위와 수학적 전문성 뿐만 아니라 기존의 물리학과 배치되는 철학적 함축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간단히 몇가지 예로 설명해보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있다. 양자역학이 탄생하기 전, 과학자들은 원자나 전자 단위의 소립자들도 당연히 뉴턴역학을 따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편적인 물리법칙이 거시세계 따로 미시세계 따로 적용될리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원자 이하의 세계에 대한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과학자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움직이는 듯 했다. 이러한 요구에 탄생한 물리학이 양자역학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거시 세계 근현대 물리학과 양자역학자들에 의한 미시 세계 현대물리학으로 양분할 수 있다. 아직 이 둘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론은 없다. 

미시 세계를 탐구하면서 첫번째 발생한 문제는 소립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서 측정 자체가 곤란하다는 점이었다. 전자의 속도를 알기 위해 빛으로 전자를 쏘면 전자는 이내 튕겨나가 버리곤 위치를 상실한다. 또한 전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 약한 빛을 쏘았더니 빛이 되돌아오지 않아 위치를 알수 없게 된다. 즉 위치와 속도라는 기본 물리량을 동시에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자들은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이 미시 세계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불확정성 원리를 토대로 앞으로의 물리학의 미래에 대해 과학자들의 선언이 뒤따랐다. 이것이 그 유명한 코펜하겐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새로운 시대의 물리학으로서 양자역학의 출발을 알리는 선언인 동시에, 근대의 결정론적 세계가 끝나고 현대의 비결정론적 세계가 열였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코펜하겐 해석이 물리학을 포기했다거나 진리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선언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원인과 결과의 수학적 필연을 따르는 결정론의 세계 대신, 수학적 확률로서 제한되는 비결정론적의 세계를 제시한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 개념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관측 행위가 위치나 속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자역학에서는 근대 물리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던 관측행위가 물리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 핵심 개념은 '물리량이 관측 행위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측 행위의 영향을 받는다'이다. 양자역학의 미시세계에서는 누군가가 관측을 할 때 비로소 세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관측하지 않을 때의 소립자는 중첩된 상태의 확률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관측 행위를 할 때 소립자는 비로소 자신의 위치와 속도를 확정한다. 파동으로 존재하던 소립자는 관측하면 한 점으로 오그라든다. 이를 파동 수축이라고 한다. 이때 소립자가 존재하는 확률 분포는 peak를 찍으며 100% =1로 표현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 코펜하겐 해석의 비결정론에 많은 물리학자가 반발했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가 에르빈 슈뢰딩거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거시 세계와 분리된 양자역학의 결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러한 결론이 타당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유 실험을 제안했다. 이 실험은 이후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불렸다. 실험은 밀폐된 공간에 고양이, 독가스가 있는 병, 입자가속기가 있다. 입자가속기에서는 1시간 후에 알파입자가 방출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때의 확률은 50%이다. 만약, 알파입자가 방출된다면 그 입자는 독가스가 든 병을 깰 것이고 그러면 고양이는 죽을 것이다. 50% 확률로 방출되지 않는다면 병은 안전할 것이고 고양이 또한 살아있을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상자 안의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상자의 뚜껑을 열어본 것은 아니다. 고전물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고양이가 죽었거나 살아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상식적이다. 우리가 고양이가 죽은 것을 확인하든 확인하지 않든 상자 안의 고양이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자들은 고양이가 죽어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중첩 상태의 확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왜냐면 알파입자는 미시 세계에 속하는 소립자이고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소립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확률로서 존재할 뿐, 위치와 속도를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파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확률로 존재한다면 고양이의 삶과 죽음도 확률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양자역학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실험이 아니라 양자역학의 특성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대표적인 사유 실험이 되었다. 역사는 양자역학의 손을 들어주었으니 말이다. 

슈뢰딩거 고양이의 중첩된 삶과 죽음, 출처 : 뉴턴 무와 유의 물리학

이뿐 아니라, 실제 이중 슬릿 실험에서도 소립자의 중첩성이 확인되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입자와 파동의 특성을 구분하기 위한 실험으로 제시되었는데, 실험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평면의 두꺼운 막에 얇고 긴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을 두개 뚫어놓으면 끝이다. 이중슬릿에 한개의 전자를 쏘면 전자는 이중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현상을 보인다. 즉, 입자인 전자가 파동성을 지니게 되어 간섭 무늬를 만든다는 뜻이다. 관측자가 전자를 관측하는 순간 전자의 확률분포는 peak를 찍으며 한 곳에 위치하게 된다. 즉 파동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고 있지 않으면 파동처럼 보고 있으면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예측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미시 세계의 대상들은 실제로 확률 안에서 중첩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측하지 않을때는 위치와 속도가 결정되지 않은 중첩의 상태로 이중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며 간섭무늬를 만들어내지만 관측을 할 때는 위치와 속도가 하나로 결정되며 단일한 입자로서 하나의 슬릿만 통과해 직사각형 무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미시 세계의 특성을 파동-입자 이중성 혹은 상보성이라고 부른다. 

정리하면 현대 물리학은 기존의 물리학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것은 결정되지 않은 확률로서 존재하는 세계다. 근대까지의 물리학자들은 현재 우주의 조건만 알면 당연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의 양자역학자들은 그러한 생각을 거부한다. 결정론의 오래된 전통을 깨고 비결정론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자들은 근대 물리학자들에 비해 상대주의적 측면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8) 과학 철학 : 과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진리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누가 뭐라해도 과학이다.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라는 말이 붙거나 어느 외국대학의 연구소에서 실험한 결과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특별한 망설임없이 이를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렇게 과학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태도를 과학주의라고 한다. 과학주의는 모든 문제가 과학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흥미로운 건 실제로 과학자 집단이 과학에 대해 갖는 신뢰보다 대중이 과학에 대해 갖는 신뢰가 더 크다는 점이다. 과학의 실제 내용에는 무관심하면서 과학이 진리라고 믿는 마음가짐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매우 종교적이다. 우리의 과학적 믿음에 찬물을 끼얹고, 과학적 진보라는 것이 허구이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해온 것이 아님을 밝힌 인물이 토마스 쿤이다. 20세기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과학철학자 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 단어는 매우 유명해서 일상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사고의 틀' 정도로 사용된다. 여기서 패러다임의 의미는 단순히 사고의 틀의 의미를 넘어 이러한 사고의 틀이 형성되기까지의 비합리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새로운 패더다임이 의미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단지 예전과는 달라진 사고방식일 뿐이다. 

쿤에 의하면 대중의 기대와는 달리 과학의 발전은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과학의 역사가 실험과 관찰 그리고 수학 적용에 따른 논리적 진보일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쿤이 과학사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과학에서의 패러다임 변화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단계 :  우선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시절로 가보자. 이 단계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무척 당연한 사실로 여겨진다. 천동설은 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작동한다. 이때의 천문학자들은 이 패러다임 안에서 실험과 관찰을 진행한다. 패러다임 안에서의 과학활동을 '정상과학'이라고 부른다. 정상과학이 진행될수록 패러다임은 점점 더 확고해진다. 

2단계 : 그런데 위기가 다가온다. 정상과학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변칙 사례가 발견된 것이다. 예를 들어 밤하늘에서 화성의 경로를 추적하다보면 원래의 경로와 다르게 역행해서 움직일 때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천동설 안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변칙 사례들이 발견된다고 해도 패러다임이 단번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패러다임보다는 변칙 사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변칙을 수용하려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프톨레마이오스도 실제로 주전원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추가해서 화성의 역행을 설명하고 천동설의 변칙 사례를 해결했다. 

3단계 : 위기가 심화되고 혁명이 발생하는 시기다. 새로운 변칙 사례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기존의 정상과학이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면, 패러다임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젊은 과학자 집단이 새로운 이론으로 기존 이론에 도전한다. 이 시기에는 기존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경쟁하게 되는데 이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듯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다음어지지 않은 까닭에 기존의 패러다임보다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미적으로 보기에 좋다거나 더 간결해진다는 과학 외적인 요인들을 기반으로 젊은 과학자 집단에 의해 주장되는 단계다. 기존 과학계를 장악하고 있던 나이 많은 과학자 집단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변칙들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하고 노련한 방법들을 사용한다. 코페르니쿠슥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했지만, 기존 과학계로부터 다양한 비판을 받은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4단계 :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의 것을 폐기하고 혁명적으로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정상과학이 되는 단계다. 이러한 변화가 기존의 정상과학과는 단절되는 혁명적인 변화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새로 등장한 과학 이론이 기존의 과학 이론들을 아우르면서 점진적으로 과학적 진보를 이루어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쿤은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기존의 정상과학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이전해가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이를 과학혁명이라고 한다. 쿤이 과학 발전 대신 과학혁명이라고 부른 이유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의 패러다임과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은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서 과학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 두 과학자 집단은 논증과 검증의 절차를 공유할 수 없고 합의점 역시 도출하지 못한다. 따라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던 나이 많은 과학자 집단이 늙어서 사라지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젊은 과학자 집단이 그 자리를 대체해서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비로소 패러다임 이동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축된 새로운 패러다임은 또다시 정상과학이 된다. 

과학 혁명 단계는 합리적이지 않다. 출처 : 지대넓얕2

쿤의 패러다임 개념은 과학에 대한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이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과학적이지 않고 정치적인 권력 투쟁의 결과였다. 과학의 역사는 점진적인 진보가 아니라 혁명적인 단절의 역사였던 것이다. 쿤의 패러다임 이동은 과학은 수평적으로, 단절되면서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음 세대의 과학은 우리와는 다른 모습일테지만, 오늘날의 과학적 성과로부터 점진적으로 진보한 과학은 아닐 것이다. 정리해보면, 과학철학은 과학의 역사에서 회의주의 입장을 담당함으로써 과학적 합리성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것은 과학 기술에 대한 인류의 막연한 낙관을 경계하게 했고, 과학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욱 엄밀한 방법론을 향하는데 기여했다. 

* 최종 정리

과학 역시 진리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인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철학은 세 가지 관점이 균등하게 등장한 것과 달리 과학은 절대주의 측면이 강하게 띠고 있었다. 그것은 과학 탐구 자체가 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얻고자 하는 목적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 아래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는 객관적 검증과 수학적 근거를 토대로 절대주의적 태도가 이어졌다. 특히 갈릴레이부터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근대 과학은 인과법칙에 따른 수학적 필연성을 근거로 존재자부터 관계에 이르는 세계의 실상을 파악하고 예측하려 했다. 반면 현대에 등장한 양자역학은 미시세계가 수학적 필연이 아닌 개연적 확률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이를 근거로 불확정적인 세계관을 제시했다. 이런 측면에서 양자역학은 근대 과학에 비해 상대주의적 관점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과학에서의 회의주의는 과학철학 분야로 제시되었다. 쿤은 패러다임의 이동을 과학사를 기반으로 분석함으로써 실제 과학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논박의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변화되어왔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론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과학이 믿을 수 없는 무엇이라는게 아니라, 과학적 확실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에서의 절대주의/상대주의/회의주의 구분출처 : 지대넓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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