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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둘 (지대넓얕2) part4 [종교]

by Utnapishtim 2023.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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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 / 2. 과학 / 3. 예술 / 4. 종교 / 5. 신비 : 채사장님 글에 첨언하거나, 요약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입해서 정독 바랍니다.

지대넓얕 시리즈 구조
지대넓얕2 part4 종교

4. 종교

1) 종교라는 진리 : 인간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종교만큼 진리라는 용어와 밀접한 분야는 없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결국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그 어떤 분야보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제시해주었다. 다만 그 답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문제는 종교가 독단적이고 배타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갖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줌으로써 자기 삶의 진리 앞으로 다가서게 했다. 

2) 종교의 구분 : 절대적 유일신교와 상대적 다신교,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해도 실제로는 거의 하나의 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종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카톨릭, 개신교), 이슬람교를 아우르는 구약이라는 종교이다. 세계 3대 종교로 불리는데 믿는 인구만 해도 세계 인구의 2/3 이상이다.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 3대 종교는 성서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구분된다. 성서는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구약은 옛날의 약속 혹은 오래된 증거라는 뜻으로, 신과 오래전에 맺은 약속을 뜻한다. 천지창조부터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이후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대체로 기원전 1000년 경부터 정리되어왔다.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으로 서기 1세기 무렵에 활동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에 대한 이야기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외적으로는 매우 달라보이지만, 믿음 체계에서 구약의 내용을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세 종교 모두 세상을 6일만에 창조한 유일신과 홍해를 가른 모세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만 시간의 격차를 두고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신약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즉, 구약과 신약에 대한 입장에 따라서 세 종교를 구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유대교는 구약을 절대시 하지만, 신약은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의 가치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을 믿고 동시에 신약을 절대시 한다. 예수를 신의 지위에서 이해하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태도다. 마지막으로 이슬람교는 구약을 절대적으로 믿지만, 신약을 절대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유대교처럼 예수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예수라는 인물을 여러 예언자들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최종적으로 신이 보낸 인물로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남겨준 코란을 절대시 한다.

우리나라는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막강한데 여기서의 그리스도교란 1세기에 나사렛이라는 지역에서 태어난 예수를 메시아인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무리를 뜻한다. 그리스도교를 세분화하면 로마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동방정교회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각각 로마가톨릭은 천죽로, 프로테스탄트는 개신교로 번역되었다. 동방정교회도 한국에 유입되었지만 교세가 크지는 않다. 

구약의 구분과 그리스도교의 구분, 출처 : 지대넓얕2

이렇게 보면 유대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회 할 것 없이 모두 외형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뿌리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어쨌든 간에 모두 세계를 창조한 인격적 존재로서의 유일신을 믿고, 그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구약을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 공통점을 기준으로 이들 종교를 구약의 종교, 유일신교 또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라고 부른다. 

3) 절대적 유일신교 :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 유대교는 유대인의 민족 종교를 말한다. 신도수만 보면 보잘것없는 규모지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기원이되는 종교로서 현재까지 존속한다는 측면에서 종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유대교는 최초의 유일신 사상으로 평가된다. 교리의 핵심은 두 가지로 하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신으로소 야훼를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로서 메시아 사상을 따른다는 것이다. 유대교에선 이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본다. 반면 메시아가 이미 왓다고 판단하고 분리해서 나온 종교가 그리스도교다. 성서로서는 유대교 성경인 타나크를 중시한다. 이 문서가 기독교의 구약 성서에 해당하며 토라, 네비임, 케투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부분의 앞자를 따서 타나크라 부른 것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토라는 예언자 모세가 기록한 내용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어서 모세오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타나크의 내용은 사실 유대 민족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기록이라는 지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라는 세계 종교를 탄생시키면서, 결과적으로는 인류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보편의 기록이 되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만 알아보기로 한다. 창세기는 아담에서부터 요셉까지의 이야기다. 

아담 : 창세기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야훼,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야훼는 첫째 날 가장 먼저 빛을 만들고 이어서 낮과 밤을 정했다. 둘째 날 하늘을 만들고 위쪽의 물과 아래쪽의 물을 나누었다. 셋째 날 아래쪽에 있는 물을 모아 바다와 땅을 나누고 그 위에 식물이 심어지게 했다. 넷째 날 해와 달, 그리고 별이 탄생했다. 다섯째 날에는 바다 생물들과 하늘의 새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 땅의 짐승이 만들어지고 마지막에는 인간이 탄생했다. 일곱째 날에 신께서 안식을 취하셨다. 야훼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했는데, 남성인 아담은 흙으로 빚어 만들고 여성인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들었다. 다만 유대 신화에서는 이브 이전에 릴리트라는 여성이 아담과 동시에 창조된 것으로 나온다. 릴리트는 성관계를 중심으로 한 여성 평등을 주장하다가 아담과 갈등을 겪고 결국 홍해로 가서 악마가 된다. 릴리트가 떠나고 혼자 외로워하는 아담을 위해 아담의 갈비뼈로 온순한 이브가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릴리트의 이야기는 이후 바빌로니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전파되었는데, 성경에서는 사라졌다. 아담과 이브가 태고의 낙원 에덴에서 살고 있을 무렵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 하나 있었다. 야훼께서 금지하신 규율로, 선악을 구별하게 하는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열매를 먹게 되었고, 또한 아담도 이브의 유혹으로 함께 죄를 지음으로써 이들은 행복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들은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 카인은 농부가 되고, 아벨은 양치기가 되었다. 둘은 야훼에게 각자 제물을 바쳤는데, 야훼가 아벨의 것은 받아주고 카인의 것을 받아주지 않자, 카인은 질투심에 아벨을 살해했다. 이후 카인은 세상을 떠돌았고 아담과 이브는 세번째 자녀인 셋을 낳았다. 

노아 : 이후 성경에는 대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야훼가 홍수 심판을 내린 것은 사람들의 죄 때문이었다. 이때 유일하게 의인이었던 노아와 그 가족들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었다. 노아는 신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짓고 그 안에 가족들과 땅의 모든 생물종 중 암수 한쌍 씩 태워 죽음을 면했다. 홍수 기간은 40일이었고, 방주는 물이 빠질 때까지 150일을 기다렸다가 현재 터키에 위치한 아라랏산에 정박했다. 야훼는 이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남겨놓았다. 

바벨탑 : 홍수 심판으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은 바빌로니아 땅에 정착했다. 이들은 도시를 건축하고 벽돌로 피라미드 형태의 탑을 세우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세워 자긍심을 높이고, 혹시 모를 야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야훼는 이들의 의도에 노해, 사람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었다. 말이 달라 혼란스러워지자 사람들은 작업을 멈추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뿔뿔이 흩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아브라함 : 이후 구약 성서의 주인공급 인물로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세계 3대 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이다. 처음의 이름은 아브람으로 존경받는 아버지라는 뜻이었는데, 야훼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으로 개명케 했다. 이슬람교에서는 이브라힘으로 부른다. 아브라함은 원래 현재의 이라크 지역인 수메르의 도시 우르에서 다른 신을 섬기며 살고 있었다.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했고, 아브라함은 유일신 야훼만 섬기기로 약속하고 그의 명령에 따랐다.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자손을 약속했다.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86세 때 이집트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리고 100세가 되어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 이삭을 낳았다. 나중에 정실부인 사라의 질투와 시기로 여종 하갈과 이스마엘은 사막으로 떠나게 되었다. 장자 이스마엘은 이슬람교의 직계 조상이 되었고, 둘째 아들 이삭은 유대인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삭이 성장했을 때, 야훼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소중한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 이때 신실한 아브라함은 야훼의 명령에 따라 정말로 이삭을 칼로 내리쳐 죽이려 했다. 이에 야훼는 그의 믿음을 확인하고는 이삭 대신 그 옆에 있던 염소를 제물로 바치게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복받을 것임을 약속했다. 이슬람교에선 제물로 바치려 한 아이가 이스마엘이라고 하며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야곱 : 다행히 제물이 되지 않은 이삭은 장성했고, 리브가와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았다. 형은 에서라고 지었고, 동생은 야곱이라고 지었다. 형 에서는 사냥꾼으로 아버지의 신임을 받았고, 동생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총애를 받았다. 에서는 털도 많고 남성스러운 스타일이었고, 야곱은 여성스러웠다.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와 배가 고팠던 에서는 때마침 팥죽을 끓이고 있던 동생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고 했다. 야곱은 그 대가로 장자의 권리를 달라고 했다.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에서는 팥죽을 대가로 장자권을 야곱에게 넘겼다. 여기서 야곱의 팥죽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어리석은 거래의 상황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이후 이삭이 늙어 마지막으로 축복을 내리기 위해 장남 에서를 불렀다. 그런데 아내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고 싶어서 야곱을 에서처럼 꾸미고 아식에게 가게 했다. 이삭은 눈이 침침했던 탓에 야곱을 축복해주었다. 나중에 에서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장자권과 축복을 모두 빼앗긴 것에 화가나서 야곱을 죽이려고 했다. 이에 야곱은 하란 땅의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쳤다. 도망친 야곱은 삼촌 라반의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그의 집에서 7년간 무임금 노동을 했다. 하지만 삼촌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첫날밤에 첫째 딸 레아를 들여보냈다. 야곱이 이에 항의하자 삼촌 라반은 첫째 딸을 먼저 출가시키는 풍습을 들어 7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도 함께 야곱에게 주기로 했다. 이후 아내들과 그 전까지 일한 대가인 가축들을 데리고 삼촌의 집에서 도망나온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형 에서가 아직도 원한을 갖고 자신을 해칠 것이 두려워 먼저 가축과 선물을 보내고, 다음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보냈다. 야곱은 홀로 남아 있다가 우연히 어떤 이와 밤새 팔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날이 샐 때까지 끈질기게 그를 놓아주지 않자 그는 야곱에게 복을 주기로 약속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스라엘은 신과 겨루다라는 의미로,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명칭이 된다. 이스라엘로 개명한 야곱은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형 에서는 야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셉 : 야곱은 12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중에서 11번째 아들인 요셉을 가장 사랑했다. 어느날 요셉은 자신이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 꿈이야기를 형제들에게 하자, 형제들은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요셉을 시기해서 죽이려고 했다. 형제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은 다음 지나가던 상인들에게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어느 고관의 종이 되었는데, 주인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셉은 감옥에서 꿈풀이하는 재능을 인정받고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요셉은 총리대신에 올랐고, 나라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여 이집트를 재난에서 구해내었다. 이후 요셉은 자신의 고향에 흉년이 들었고 이때문에 형들이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셉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형들이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시험했고, 결국 이들을 용서해주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데려와 풍성하게 대접하고 살 곳도 마련해주었다. 야곱과 요셉의 자손들은 이집트에 정착해서 살아가게 되었다. 

창세기 내용은 천지 창조로 시작해서 아담과 이브의 타락, 대홍수와 바벨탑,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이르는 가족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 출애굽기는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출애굽기의 원래 제목은 엑소더스(Exodus)로 번역하면 탈출기 정도가 된다. 출애굽에서 애굽이 이집트를 의미하므로 이집트를 나옴으로 해석된다. 말그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세 : 출애굽기의 주인공은 이스라엘 민족과 모세다. 모세가 태어난 당시의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미 노예화되어 있었지만 인구는 매구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파라오는 이것이 이집트의 골칫거리라고 생각했고, 이에 따라 유대인 출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다. 여자아이들은 살려두고, 남자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익사시키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의 어머니와 누이는 모세를 살리기 위해 바구니에 송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이를 넣어 강가에 두었다. 그런데 우연히 파라오 딸의 눈에 띄어서 모세는 궁궐에서 자라게 되었다. 청년이 되면서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같은 민족이 억압받는 모습에 그는 괴로워했다. 그러던 중 모세는 이집트 감독관을 죽이는 사건에 휘말렸고, 이에 대한 처벌을 피해 광야로 몸을 숨겼다. 그곳에서 토착 민족인 미디안족을 만났고, 사제이자 족장인 지도자의 딸과 결혼하여 40년간 종교 지도자로서의 소양을 갖추었다. 80세가 되던 해에 모세는 시나이산에 올랐다가, 불붙은 관목의 모습으로 나타난 유일신 야훼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신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로 돌아갔다. 모세는 파라오를 만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파라오는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모세는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얼마 후 나일강이 피로 물들었다. 이어서 수많은 개구리과 이, 파리떼, 메뚜기 떼가 도시를 덮쳤고, 우박이 내리고 3일동안 어둠이 찾아왔다. 결국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파라오는 곧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 민족을 추격하게 했다. 쫓기는 상황에서 모세의 무리는 홍해에 다다랐다. 바다에 막히자 모세는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켰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빠져나가고 이후 이집트군이 홍해에 들어서자 홍해를 닫히게 하여 이들을 모두 수장시켰다. 기적 이후, 모세는 물과 먹을 것이 부족해서 불만이 가득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광야에서 40년간 방랑하게 되었다. 방랑을 시작한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모세는 다시 시나이산에 올랐다. 그곳에서 야훼로부터 열 가지 계명을 받았다. 이를 십계명 또는 모세율법이라고 한다. 십계명은 신이 직접 돌에 새겨주었는데, 이 석판은 곧 모세에 의해 깨뜨려졌다.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고, 이를 본 모세가 화가나 석판을 깨뜨린 것이다. 이후 모세는 야훼로부터 다시 율법을 받아왔다. 이 열 가지 율법은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매우 중요한 규율로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토라 혹은 모세오경 중에서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내용은 이 유대 민족의 역사적, 종교적 기록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 유대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메시아 사상은 유대인에게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약속이다. 그들에게 세상을 구원할 존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반면 그리스도교인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2천년 전에 세상에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의 뿌리는 유대교에 있지만, 이 지점에서 유대교와 갈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구약과 신약 성서를 근간으로 하고 야훼와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믿는 종교, 이러한 정의를 공통분모로 로마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동방정교회가 세부적인 교리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그리스도교 믿음의 근간이 되는 신약 성서는 예수의 삶과 그 제자의 행적에 대한 27권의 문서들을 묶은 것이다. 복음서 4편, 사도의 행적이 1편, 그 밖에 사도들의 여러 편지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의 예언서로 되어 있다. 4편의 복음서의 기록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직제자인 네 명의 사도가 작성한 것으로 본다. 한국에선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다르다. 가톨릭은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라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으로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 : 신약 성서의 핵심이 되는 존재로,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언급된다. 유대교에선 유일신 야훼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도교가 탄생한 초기에는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다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예수를 야훼의 뜻을 전하러 온 수 많은 예언자 중 하나로 인식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유대교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한다. 다만 유대교와 동일하게 예수를 신이나 신의 아들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가장 위대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등장하기 전에 있었던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으로 평가할 뿐이다. 예수의 탄생은 기원 전후의 기준이 되므로 원래는 서기1년, 1세기에 태어났다고 봐야 하지만, 실제 탕생 연도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대략 기원전 4년 전후로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약 성서에 따르면 동정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를 회임할 것을 고지받는다. 이를 수태고지라고 한다. 마리아는 이를 약혼자 요셉에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의 요셉은 구약에서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아니다. 유대 문화 안에서는 흔한 이름으로 하느님께서 더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어쨋거나 요셉은 심적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그의 꿈속에 나타나 계시를 내리고 요셉은 이를 통해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고 마리아와 결혼했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호적 등록차 여행을 떠났다가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다. 

예수는 출생후에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록이 많지 않은데,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수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시 목수는 변변치 않은 직업이었다. 예수가 회당에서 예배를 주도하며 자신이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할 메시아라고 말하자, 몇몇 사람들이 예수를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장면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출가를 했다. 예수는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기 전에 강물로 세례를 하는 세례자 요한을 찾아갔다. 요한은 당시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예수가 그를 찾아오자 오히려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예수는 광야에서의 고행기간동안 사탄을 만나 유혹과 시험을 당했지만 모두 물리쳤다. 이후 가난한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행했다. 언덕위에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도덕과 믿음에 대해서 설교한 산상수훈과 다섯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이 대표적이다.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랐지만, 유대인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위험인물로 간주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 유다와 말을 맞추고 예수를 제거하기로 했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많은 민중이 그들을 환영했다. 예수와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식을 진행할 때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제자들 중 한명이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만찬을 마치기 전, 유다는 유대교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의 위치를 알렸다. 만찬이 끝나고 예수와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유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왔고 누가 예수인지 알리는 신호로 예수에게 입맞춤을 했다. 

빌리도는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 총독이었다. 당시 유대 민족은 로마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유대 제사장들의 고발로 예수 그리스도가 빌라도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빌라도는 그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로마인으로서 유대인들 간의 문제에 깊게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때마침 축제일이었고, 축제일에는 죄수 한 사람을 특별사면하는 관습이 있었던지라 빌라도는 예수와 강도 바라바 중 한 명을 선택할 것을 유대인에게 미루었다. 유대인은 당시 독립운동가와 같은 강도 바라바의 사면을 원했고, 이에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십자가형은 로마 점령지의 민족들을 처벌하는 방식이었다. 자신이 처형될 십자가의 가로대를 처형장까지 짊어지고 올라가게 한 후, 가로대의 양쪽 끝에 손목을 못으로 박아 고정하고, 세로대에 다리를 포개어 뒷꿈치를 못으로 박아 고정한 다음에 수시간을 매달아 놓아 죽게 만드는 형벌이었다. 일반적으로 횡격막의 압박에 의한 질식이나 탈수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교에서 속죄와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 죄 없는 이가 대신 희생됨으로써 인류는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이를 통해 다시 신과 관계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은 당시의 관습대로 동굴 속에 보관하게 되었다. 하지만 장사를 치른 지 사흘 만에 예수의 시신은 사라졌으며, 부활하여 막달라 마리아를 시작으로 제자들에게 모습을 나타냈었다. 이후 예수는 올리브산에서 승천했다. 예수의 희생과 부활은 이후 그리스도교인의 종교적 신념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슬람 교 : 이슬람교는 세계적으로 규모면에서 그리스도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종교다. 대략 세계 인구의 1/4이 신자로 추정된다. 남성은 무슬림, 여성은 무슬리마라고 불린다. 이 신앙의 핵심은 두 가지를 믿는 것이다. 첫 번째는 구약의 절대적 창조주인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하느님의 사도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무슬림들은 신앙고백으로서 '샤하다' 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알라신을 믿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알라의 의미 자체가 유일신을 의미하므로 특별한 신의 이름이 아니다. 특히 한국 이슬람교는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신을 하나님으로 표기한다. 하느님, 하나님, 야훼, 여호와, 알라는 특정한 이름이 아니라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야훼와 동일한 존재로, 그저 유일신을 말한다. 이슬람교의 핵심 인물은 예언자 무함마드로 한국에서는 마호메트라고도 부른다. 무함마드가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아 작성한 경전이 코란이며, 이슬람 교리의 핵심을 이룬다. 이슬람의 신앙에 따르면 유일신 알라는 인간을 처음 만들 때 유일신을 믿게 했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계속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일신 알라는 이를 기억하기 위해 인간에게 예언자와 선지자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주었다. 코란에 기록된 대표적인 예언자는 25명이다. 그중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가 보낸 마지막 예언자로서,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 더이상의 예언자는 없다고 한다. 그런면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근본적 차이는 각각이 갖고 있는 예수와 무함마드의 지위에 대한 차이에 있다고 하겠다. 우선 예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의 경우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로 하느님과 동일시되는 반면,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 전가지의 예언자 중에서는 가장 위대한 인물이지만 하느님과 동일한 존재자가 아닌, 다만 선지자일 뿐이다. 특히 코란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 처형당한 인물이 예수가 아닌, 예수를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긴 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일신 알라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선지자로서의 예수를 희생시켰을리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교는 신약 성서까지 믿는 까닭에 6세기에 태어난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반면 이슬람교에서의 무함마드는 최후의 예언자이자 가장 중요한 선지자가 된다. 

예언자 무함마드 :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한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이슬람교에서는 신성한 두 존재인 알라와 무함마드를 이미지로 그리는 것을 불경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 속에 없는 것이다. 무함마드의 모습을 묘사하지 않은 것에 더해서, 이슬람교에서는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구약의 말씀에 따라 성전에 어떤 상징물도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에서 그나마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교에서는 철저히 상징물을 거부한다. 그래서 발달한 미술이 기하학적 무늬가 끝없이 반복되는 아라베스크 양식이다.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고 다만 벽과 기둥에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만이 보인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6세기 말인 570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쿠라이시족의 명문 가문인 하심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쿠라이시족은 당시 메카의 지배 부족이었으며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아브라함을 떠난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인 여종 하갈이 메카에 정착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브라함이 이곳에 와서 신전을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고, 할아버지와 숙부의 손에 키워졌다. 젊어서는 평범하게 양치기를 하며 지냈는데, 우연히 부유한 미망인 카디자에게 고용되었다가 무함마드의 성품에 반한 그녀의 청혼으로 결혼하게 되었다. 당시 무함마드 나이는 25세였고, 카디자는 40세였다. 결혼이후에는 생활에 여유가 생겼지만, 그는 세속적인 생활을 멀리하고 메카 교외의 산속 동굴에 들어가 깊은 명상에 잠겼다. 오랜 기간의 수행 생활이 지나고 그가 40세 무렵이 되었을 때, 무함마드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왔다. 천사는 빈 종이 한 장을 들고 와선 무함마드에게 읽으라고 말했다. 무함마드가 무엇을 읽으라는 것이냐 묻자, 천사는 그를 포옹한 후 다시 읽으라고 말했다. 무함마드가 다시 물었고 천사는 읽으라고 되풀이하다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슬람 경전 코란은 읽어야 하는 것이란 뜻인데, 그 기원이 여기에 있다. 알라의 계시는 첫 말씀이 있던 610년에 시작해서 무함마드가 죽은 632년까지 22년간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했던 무함마드는 여러 차례의 계시를 통해 점차 알라 외의 신은 없다는 유일신 사상을 견지하게 되었고, 신의 사자로서 신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메카에서의 포교활동은 쉽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메카가 상업의 중심지이자 모든 문화의 용광로여서 무수히 많은 신이 공존하는 다신교 문화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메카는 점차 문화적 혼란과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처음 포교를 시작할 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고, 점차 세력을 넓혀갔다. 하지만 세력이 넓어짐에 따라 종교적 박해도 심해졌다. 결국 622년 70여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메카를 탈출하여 북쪽의 메디나로 떠났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도착한 날인 622년 9월 20일을 매우 중요한 날로 여기며 헤지라 라고 부른다. 이슬람교는 헤지라를 계기로 메카에서의 혈연중심의 사적인 신앙 단계를 벗어나 공적인 측면에서의 교단과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래서 이 해가 이슬람 달력의 원년이 된다. 이후 무함마드의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 메디나와 전통적인 다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메카의 전투가 발발했다. 여러 차례의 공방을 거쳐 결국 630년에 무함마드의 군대는 메카에 입성한다. 입성 직후 무함마드는 가장 먼저 신전에 안치된 무수히 많은 우상을 부수었다. 메카 점령 이후 주변 부족들은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2년 후 건강이 악화된 무함마드는 애첩 아이샤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 

4) 상대적 다신교 : 힌두교, 불교, 티베트불교, 상대적 다신교는 인도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아시아 지역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지역의 종교는 가장 근원적인 뿌리로서 베다를 기원으로 한다. 베다는 구전되어 전해오던 내용을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신성한 언어인 산스크리어로 종합한 문서다. 베다는 지식, 지혜를 뜻하는 말로, 신화, 종교, 철학, 제의, 생활과 관련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구성 면에서 시간적 흐름을 따른다거나 논리적 체계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구분된다. 여러 구분 방법 중에서 내용에 따라 상히타, 브라흐마나, 아라니아카, 우파니샤드 의 네 부분으로 구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앞의 세 가지는 신에 대한 찬가와 기도문, 의식, 제례, 교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베다의 마지막 부분인 우파니샤드는 우주의 원리에 대한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철학서로서 베다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며, 베다의 궁극적 끝이라는 의미에서 베단타라고 부른다. 신이 말해준 이 비밀스런 지식은 이후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전승되어 내려왔는데, 스승의 가까이에 앉아서 직접적으로 전해 듣는 지식이라는 의미로 우파니샤드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간략하게 우파니샤드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두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우주와 자아다. 우선 우파니샤드에서는 우주를 브라흐만이라고 부르며, 이는 우주의 궁극적 원리이자 실체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물질과 정신을 포함한 세계 전체다. 서구 관점에서는 하느님과 우주 전체 정도가 되겠다. 다음으로 자아는 아트만이다. 다만 여기서의 아트만은 개인의 신체나 지금 가지고있는 마음, 정신과는 다르다. 나의 신체, 마음, 정신은 항상 변화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이러한 자아 말고, 자아의 궁극적 실체를 아트만이라고 한다. 쉽게 생각하면 불변하는 영혼 정도가 되겠다. 아트만은 죽거나 파괴되지 않아서, 신차게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곧바로 다른 신체로 이동해 생명력을 유지한다. 이처럼 아트만이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 듯 새로운 신체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것을 삼사라, 번역해서 윤회라고 한다. 윤회가 멈추는 것이 바로 해탈이다. 불변하는 자아가 끊임없이 윤회한다는 생각이 우파니샤드의 내용이고 불교는 ㅂ나대로 불변하는 존재로서의 자아인 아트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듯 불변하는 자아를 부정하는 불교의 관점을 무아론이라고 한다.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우주의 궁극적인 두 원리다. 그런데 우파니샤드의 궁극적인 가르침은 질적으로 달라보이는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사실은 하나라는 것이다. 이를 범아일여 사상이라고 하는데, 여기서의 범은 브라흐만을, 아는 아트만을 한자어로 옮긴 것이다. 개인이 무한한 윤회를 끝내고 해탈을 이르기 위해서는 방금 말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깊은 명상속에서 브라흐만과의 합일을 실제로 체험해야만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깊은 명상을 사마디라고 하고, 한자로 삼매라고 한다. 우리말의 삼매경은 여기서 나왔다. 삼매는 고도의 정신 집중 상태로 모든 시간과 공간이 의식 속에서 소멸한 상태를 말한다. 사마디를 통해 아트만이 브라흐만과 하나라는 것을 체험으로 깨닫게 되는데, 이렇게 체험을 통해 얻게 된 실질적인 지식을 아트마 즈냐나라고 한다. 아트마 즈냐나에 동달하는 수단으로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하면 인도 사상의 뿌리가 되는 문헌은 베다이고 이 오래된 지식의 궁극적 결론을 우파니샤드라고 한다. 우파니샤드의 핵심 개념은 개인의 본질로서의 아트만과 우주의 본질로서의 브라흐만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의 사상이었다. 이러한 심오한 깨달음은 깊은 명상을 통해 사마디에 들 때 얻을 수 있었으며, 이것은 윤회를 멈추고 해탈에 이르는 방법이었다. 베다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동양 종교의 근간을 이루었다. 베다에 대한 수용과 비판이 힌두교, 불교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는 힌두교가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전통을 계승하고 대중적을 확대한 반면, 불교는 베다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극복한 것을 볼 수 있다. 

힌두교 : 힌두교는 단순히 인도의 종교라는 뜻으로, 힌두의 뜻 자체가 인도와 어원이 같다. 인도와 그 주변 국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신도 수만 고려하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이어서 세번 째로 크다. 철학과 인도의 민간 신앙이 섞여 있는 형태를 띠는데, 창시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교조나 체계를 가진 것도 아니라서 다양하고 복잡한 특성을 보인다. 다만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근간으로 하고 마하바라타, 라마야나, 수트라 등 다른 문서들이 추가된 것이어서, 다채로운 내용 속에서도 기본 세계관으로서 범아일여를 공유한다. 힌두교는 수많은 신의 근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세 신이 있고, 이들 역시 근원적인 면에서는 한 존재의 서로 다른 세 측면인 까닭에 일신교의 모습도 갖는다. 가장 중요한 세 신은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다. 브라흐마는 창조의 신이고, 비슈누는 이를 유지하며, 시바는 파괴를 담당한다. 우파니샤드에서 우주의 근본원리로서의 브라흐만이 창조를 담당하는 이 브라흐마와 같은 존재다. 이 두 개념의 차이는 한글자 차이 뿐만 아니라 인격화 여부아다. 우파니샤드에서의 브라흐만은 우주 전체를 의미하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인 반면, 힌두교에서의 브라흐마는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신의 인간 형태가 강조되어 있다. 

브라흐마 : 창조의 신으로 지금의 우주를 탄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힌두교의 신화나 그림 속에서는 수염을 기른 나이 많은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가 네 개여서 각각 네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보통 네 개의 팔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다리는 정상적으로 두 개다. 선과 악을 구분해주는 백조를 타고 다닌다. 탄생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으나 그중에서 들을 만한 것이 물에서 태어났다는 설이다.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우주의 씨앗이 황금알 모양으로 망망대해 위에 떠 있었는데, 여기에서 그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힌두교 전통에서는 모든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만큼 정해서 믿으면 되는데, 다른 주요한 두 신인 비슈누와 시바가 인도의 많은 사원에서 모셔지는 것에 비해 브라흐마를 모시는 사원은 극히 드믈다. 이렇게 인기가 없어진 것은 대략 6세기 무렵부터다. 비슈누와 시바는 세상을 관리하고 파괴하는 등 지금까지도 신의 역할을 계속하는데 비해, 브라흐마는 우주를 창조한 이후 특별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슈누 : 비슈누는 유지의 신으로 가운데 자리에 위치한다. 힌두교가 발전해오던 초기에는 중요성이 크지 않았으나, 현재에는 파괴의 신인 시바와 함께 최고의 신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힌두교의 양대 종파는 비슈누파와 시바파다. 비슈누파는 일반적으로 높은 계급과 부유한 사람들이 믿고, 시바파는 낮은 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이 신봉한다.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 종교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세계관 차이로 설명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보수는 세계를 안정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따라 사회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띠게 됨을 확인했다. 반대로 진보는 세계가 불안정하다고 이해하고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를 유지하는 비슈누를 높은 계급이, 세계를 파괴하는 시바를 낮은 계급이 신봉한다는 것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고 정치, 경제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비슈누는 창조된 이 세계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데 외모는 검푸른 피부에 잘생긴 젊은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네 개의 팔에는 각각 방망이, 연꽃, 소라고둥, 원반을 의미하는 차크라를 들고 있다. 비슈누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화신을 의미하는 아바타라를 지상에 주기적으로 내려보낸다. 이 아바타라는 비슈누의 대리자이기도 한 동시에 비슈누 자신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아홉 가지의 아바타라가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열번째 아바타라가 내려올 차례다. 물고기와 거북이 등 동물의 형태일 때도 있으나,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중 8,9,10번째 아바타라가 중요하다. 8번째 아바타라는 크리슈나로 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최고로 인기가 많은 신이다. 실존했던 인물을 비슈누파가 힌두 사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는 설명도 있는데, 경건한 모습보다는 자유분방한 측면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영웅으로 등장하고, 이 외에도 인도의 회화와 문학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9번째 아바타라는 놀랍게도 부처다. 불교가 등장한 의미를 힌두교가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흡수한 노력의 결과다. 이것은 불교의 세계관과 입장과는 무관하게 수용된 것으로, 부처가 일부러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함으로써 악마와 악인들의 수행을 방해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이것은 이슬람교에서 예수의 지위를 예언자로 낮춘 것을 그리스도교가 인정할 수 없는 것처럼, 불교 신자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해석일 것이다. 열 번째 아바타라느느 칼키다. 그는 마지막 아바타라로 예정되어 있다. 칼키는 영원, 시간을 뜻한다. 선함과 종교가 무너지는 칼리유가라 불리는 시기에 그가 세상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위해 올 것이라고 인도인은 믿고 있다. 

시바 : 파괴의 신으로 절대적 궁극자의 왼쪽에 해당한다. 파괴의 신이기도 하지만 파괴된 세계의 재건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외모는 이마 정중앙에 모든 것을 불태우는 제3의 눈이 있고, 뻗친 머리에서 갠지스강이 흘러나온다. 특히 목만 푸르스름한데 세상을 멸망시키는 독을 삼키고 있어서라고 한다. 완전히 삼킬 경우 시바도 죽기 때문에 걸려만 있는 상태다. 민중에게 인기가 많은 신이며, 금욕과 고행의 상징이기도 하다. 회화와 문학 작품에서도 히말라야에서 명상과 고행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대적 관점으로 힌두교의 주신들은 허황되고 사실적 설명이라기 보단 문학 장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허구적 상상력으로만 볼 수 없다. 힌두교는 베다 철학, 특히 우파니샤드의 형이상학적인 심오함을 대중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불교 : 기원전 6세기 무렵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시작된 불교는 베다의 영향권 안에서 탄생한 까닭에 업, 윤회, 해탈 등의 개념을 이어받았다. 다만 베다의 철학이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측면을 거부하고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불교의 초기 경전에 의하면 부처는 형이상학적인 질문에는 대답을 보류한 것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사후 세계가 있는지, 우주의 시작에 대한 질문, 이상적인 사회 형태에 대한 질문 등에는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응 독화살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는데, 독화살을 맞았다면 독화사를 빼는 것에 집중해야지 누가 쏘았는지, 왜 쏘았는지를 궁금해하면 안된다고 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삶에도 적용되는데 삶 가운데 고통이 발생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일이다. 고통의 본질과 개념에 대한 탐구는 부수적인 문제다. 이처럼 부처는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담론을 중단하고 현실의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실존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불교의 문제의식은 고통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처가 깨달은 진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 둘째, 자아의 실체는 없다. 셋째, 세상의 실체는 없다. 이러한 깨달음은 마치 삶에 대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가 그러함을 말한 것으로, 부처는 이를 정확히 이해할 때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무엇인가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겻을 찾으려 할 때, 실제 삶은 그렇지 않으므로 고통은 가중된다. 따라서 베다 철학에서 자아의 영원한 본질로서 제시되었던 아트만은 부처에 의해 부정된다.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영원한 자아는 없다. 나라는 존재는 다만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들이 임시로 뭉쳐있는 무더기 일 뿐이다. 이것이 무아이다. 부처에 따르면 이 세계 역시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 단순하고 우연적인 조건들에 따라 순간적으로 모이고 흩어질 뿐이다. 눈앞의 사물, 동식물, 사회, 국가 등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의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어 우연하게도 지금의 모습으로 임시로 모이게 된 것이다. 이를 연기라고 한다. 불교의 핵심 개념이 되는 무아와 연기는 이후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공 사상으로 심화되었다. 불변하고 고정된 실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무아와 연기를 받아들일 때, 삶의 고통은 제거되고 개인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부처는 이를 명료하게 고집멸도의 네 가지 단계로 설명했다. 해탈에 이르는 고집멸도의 네 단계를 사성제라고 부른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불교 이론의 핵심이다. 

부처 : 기원전 6세기에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불교의 창시자다. 부처는 깨달음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반 명사다. 석가모니는 고대 인도의 부족인 석가족에서 태어난 성자란 뜻이다. 싯다르타는 지금의 네팔과 인도 국경 근처에 샤카이족의 작은 나라 왕자로 태어났다. 어머니인 마야 부인은 분만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아이를 낳기 위해 당시 전통대로 고향에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진통이 시작되었고 룸비니 동산에서 싯다르타를 낳았다. 싯다르타가 탄생한 이후에 히말라야산에서 예언자 아시타가 찾아와 왕에게 말하길 만약 싯다르타가 왕이된다면 전 세계를 통일하는 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게 된다면 깨달은 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성장하면서 싯다르타는 궁궐 안의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만 누렸으나, 어느 날 성 밖으로 외출하면서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사람이 힘들게 노동해야 먹고 살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현실에 대한 충격으로 우울해하는 싯다르타가 혹시나 출가할까 걱정하던 왕은 그가 16세가 되던 해에 결혼식을 올리게 했고 많은 미녀와 향연을 마련해주어서 싯다르타가 현실에 만족하도록 애썼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통의 문제에 사로잡혔다. 결국 서른의 나이에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끝내는 방법을 찾고자 몰래 왕궁을 빠져나왔다. 그는 이름난 현인들을 찾아가 배웠다. 하지만 곧 이러한 방법으로는 생사의 괴로움을 끝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숲으로 들어가 거기서 다섯 명의 고행자들을 만나 6년간 수행 생활에 들어갔다. 먹고 자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 상태로 끝없는 명상에 드는 고행이었던 까닭에 싯다르타는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주변 마을 사람들은 뼈만 앙상한 싯다르타를 먼지 괴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결국 그는 강둑에 쓰러졌다. 얼마후 서서히 의식을 찾은 그는 강에서 몸을 씻었다. 마을의 소녀가 우유죽을 가져다주었고,  싯다르타는 그 음식을 먹었다. 기운을 되찾고 나서 지금까지 고행이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음을 깨닫게 된 그는 극단적인 고행도, 극단적인 쾌락도 모두 적절한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편안하게 자리를 마련하고 고통이 없는 가운데 선정에 들어갔고, 결국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때 얻은 깨달음이 사성제와 연기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부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인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45년의 긴 세월을 걸쳐 설법과 교화를 계속하였고, 80세의 고령이 되어서 파바라는 마을에 이르러서 받은 공양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이질을 앓으며 점차 위독해졌다. 부처는 최후의 목욕을 마치고 숲으로 들어가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발을 포갠 다음 누웠다.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은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설법을 상기시킨후에 마지막 가르침을 설파하고 입적했다. 

티베트 불교 : 불교는 한때 인도에서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지만, 9세기 이후 힌두교에 밀리기 시작했고, 11세기에는 이슬람의 침입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3세기 말이 되면서 불교는 인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불교는 여러 분파로 나눠지며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불교의 분파는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와 부파불교, 그리고 금강승으로 구분한다. 개인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부파불교는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었고, 대중의 해탈을 고려하는 대승불교는 동북아시아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밀교적 형태를 가진 금강승은 티베트로 전파되었다. 티베트는 초기 불교의 모습과 부처의 가르침의 요체를 잘 보존하고 있는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한 인물은 파드마삼바바로, 8세기 티베트의 왕 티송데첸이 인도의 출가 수도승이었던 그를 티베트로 초대하면서 티베트 불교가 시작되었다. 파드마삼바바는 108개의 경전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 중 서양에 알려지면서 영향을 미친 것이 '티베트 사자의 서' 다. 원래 제목은 티베트어로 '바르토 퇴돌' 인데, 바르도는 중간이나 사이를 퇴돌은 해탈을 의미한다. 사자의 서에 의하면 사람은 죽은 다음에 환생할 때까지 대략 49일을 삶과 죽음 사이인 바르도에서 보낸다. 이 책은 죽음 가운데 한번 듣는 것만으로도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사후 안내서다. 파드마삼바바는 깊은 명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이 책을 썼고, 천기를 누설하는 내용이었던 까닭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비밀스런 장소에 책을 숨겨두었다. 그리고 600년이 지나 이 책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1400년 무렵에 발견되어서 티베트인에게 널리 읽히게 되었다. 사자의 서에 따르면 죽은 이는 죽음이 찾아온 그 순간 빛을 보는 단계로 죽음의 과정을 체험한다. 이때 죽은 자는 매우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갖는데, 이 과정에서 평화로운 만다라나 분노하는 만다라를 만나게 되고, 환희나 공포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서 파드마삼바바는 이러한 환희와 공포를 만들어내는 대상들은 단지 자신의 마음에서 기인하는 환영일 뿐이므로 여기에 압도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만약 이러한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다시 윤회하게 되고, 그렇지 않고 이를 극복해내면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정치적 왕인 동시에 종교적으로 최고 지도자다. 달라이 라마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정치, 종교 지도자의 세습명이다. 여기서 달라이는 큰 바다를 뜻하고 라마는 스승을 뜻하는 몽골어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14대이고 그 기원은 14세기 1대 달라이 라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대 달라이 라마부터 지금의 14대 달라이 라마에 이르기까지 한 명의 존재가 윤회를 반복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티베트에서는 높은 경지에 오른 수도승들이 해탈을 잠시 유예하고 중생을 돕기 위해 세상에 다시 환생한다고 하는데, 이 수도승들은 전생의 기억을 완전히 잊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나는 특별한 존재를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의 툴쿠 혹은 린포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도 그중 한 명이다. 티베트인은 달라이 라마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고 있다. 달라이 라마를 선출하는 방법은 독특하다. 그는 권력과 권한을 자녀에게 세습하거나 특정 권력층에게 이양하지 않는다. 전대의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서 다음 달라이 라마가 환생할 곳을 지목하면, 이후 신하들이 그 지역으로 가서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때 환생자의 후보자들에게 여러 물건 중에서 생전의 달라이 라마가 개인적으로 사용했던 물건들을 정교하게 고르게 하는 시험을 진행함으로써 실제로 환생자인지 검증한다.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의 본명은 텐진 갸초로, 1950년대에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함에 따라 인도로 망명했다. 북인도 다람살라 지역에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독립운동의 방법으로서 비폭력 노선을 견지하고 있어서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티베트 내에서 중국의 감시와 검열로 달라이 라마를 지지하거나 언급하는 것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에서의 정신적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 최종 정리

종교는 크게 절대적 유일신교와 상대적 다신교로 구분되었다. 우선 절대적 유일신교는 말그대로 절대적 창조주를 신으로 상정한 종교였다. 특히 구약 성서를 근간으로 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여기에 속했다. 이들 종교에 등장하는 야훼, 하느님, 알라는 모두 특정한 이름을 갖지 않는 절대적인 신 그 자체이며, 아담으로 시작해서 노아, 아브라함, 모세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을 의미했다. 다만 이 세 종교는 구약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 차이를 보였다. 유대교는 구약 이후 메시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그리스도교는 신약의 근간이 되는 예수가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슬람교는 예수는 단지 한 명의 선지자일 뿐이고 마지막 예언자로서 무함마드가 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로서의 신이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인간과는 완벽하게 분리된 존재라는 것이다.인간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초월하는 신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영광을 찬양하고, 그를 믿으며 그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상대적 다신교는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신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인간이었다. 상대적 다신교의 근간이 되는 베다와 그 결론 부분인 우파니샤드에서는 절대적 전체로서의 브라흐마와 개채로서의 아트만이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자신이 신적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계승한 것이 힌두교다. 힌두교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베다 철학을 인도의 민속신앙과 결부해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신화적 인물들로 설명했다. 개인 선호에 따라 믿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개인의 깨달음인 것이다. 이후 베다와 힌두교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가르침을 비판하고 현실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집중해야 함을 설파한 불교가 등장하면서, 더이상 신은 인간 삶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게 되었다. 삶의 고통을 직시하고 원인을 제거하고 깨달음을 얻어 궁극적으로 해탈해야 하는 존재로 인간 자신이며,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기 불교의 모습을 이어받은 티베트 불교 역시 인간의 죽음과 윤회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모든 존재는 누구나 언젠가는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윤회를 멈추고 스스로 해탈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베다, 힌두교, 불교는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개인이 깨달음을 통해 초월적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수행하고 정진하며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는 것이다. 

회의주의적인 종교는 가능하지 않다. 이는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만 발견된다. 구체적으로는 무신론, 유물론, 경험주의, 논리실증주의, 과학주의가 있다. 흥미로운점은 종교에 대해 극단적인 회의주의적 태로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면에서 종교적인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철학과 과학이 신앙과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일부 배타적이고 독단적인 종교만큼이나 개인을 편협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종교의 절대주의/상대주의 구분, 출처 : 지대넓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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