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현실 너머를 통찰하는 지식 여행서 : 채사장님 글에 첨언하거나, 요약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입해서 정독 바랍니다.
* 프롤로그 : 탄자니아 세렝게티 평원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하는 사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현대 철학의 거물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철학적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다. 바로 공통분모다. 이 책은 현실 너머 이야기를 다룬다.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의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알아본다. 이 책을 마주하고 서로가 가진 공통분모를 넓혀가며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1. 철학 / 2. 과학 / 3. 예술 / 4. 종교 / 5. 신비
0. 진리
1) 진리란 무엇인가 :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것, 인간은 두 세계에 공존하며 살고 있다. 현실 세계와 현실 너머의 세계이다. 동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온전히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인간은 현실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실 너머를 보려하고 현실을 초월하려 하며, 현실이 아닌 것을 상상하려고 한다. 이렇듯 인간은 현실 너머를 갈망한다. 이 책은 현실 너머의 이야기다.
진리가 무엇인지 규정하기 어렵다. 현대의 철학, 과학, 예술,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들마저도 진리의 규정에 대해 아직도 논쟁할 정도다. 진리란 무엇인가 막연하고 대답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렇게 정의한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것이다.
먼저 절대성은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이 붙지 않음을 의미한다. 가령, 신을 정의함에 낮에는 신이지만, 밤에는 신이 아니라는 가정을 한다면 그것은 신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특정 제약이나 조건이 붙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절대성은 진리의 속성이 되기에 타당하다. 두번째는 보편성이다. 이 역시 진리의 속성을 적합하다. 보편이란 모든 것에 두루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진리는 반드시 보편적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는 신으로 불리지만, 누구에게는 신으로 불릴 수 없다면 그것은 신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성이 기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불변성의 속성도 마찬가지다. 불변이란 모양이나 속성이 변하지 않음을 말한다. 분명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신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신의 능력이 사라져버렸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신은 아닐 것이다. 변화하는 진리는 진리라고 할 수 없다. 정리하면 이 세가지 특성은 의심하기 어려운 진리의 속성이 된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로 진리가 있다고 보는 것은 절대주의라고 한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단일한 진리가 있다는 견해를 말한다. 둘째로 진리가 없다고 보는 것은 상대주의라고 한다. 상대주의는 상반되는 두 가지 태도로 구분된다. 하나는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니라며 모든 진리를 거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된 하나의 진리가 없을 뿐 다양한 진리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극단적으로 보이는 두 견해는 하나로 맞닿는다. 어쨋거나 단일한 진리는 없다.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로 구분되어 이 책을 가로지른다.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태도도 있는데 이를 불가지론이라고 한다. 인간의 감각이나 관념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본질은 결코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견해다. 불가지론은 세계에 대한 강력하고 객관적인 설명 방식으로 이후의 여러 철학자들에게 수용되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그것은 불가지론이 진리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탐구 의욕을 꺾고 학문이 발전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였다.
마지막으로 진리가 있던지 없던지 상관없다는 답변이다. 생각해보면 진리가 뭐가 되었던 무슨 상관인가? 신이 있다고 해도 통일장 이론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나의 삶은 바뀌는게 없다. 당장 내 삶에 써먹을 진리가 없다면 다 필요 없다. 이런 생각을 프래그머티즘이라 해서 실용주의라고 한다. 실용주의는 미국 중심으로 발전했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오늘날 한국은 철학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극단적인 미국식 실용주의가 완벽하게 장악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진리는 절대, 보편, 불변의 속성을 지녀야만 한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총 네가지로 정의했다. 진리가 있다는 절대주의.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 진리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불가지론, 유용한 것만 이야기 하자는 실용주의가 그것이었다.
2) 진리의 역사 : 자연신에서 포스트모던까지, 진리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해야 하는 속성이 변하지 않아야겠지만, 역사속에서 그 모습을 바꿔왔다.
원시시대의 진리는 자연신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의 압도적인 풍요와 폭력에 무방비하게 놓여있었다. 그래서 예측하기 힘든 여러 자연현상 발생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그들은 자연의 속성을 인간의 감정을 대응시켜 서술했다. 풍요는 어머니요, 가뭄은 외면이었으며, 폭풍은 분노이고, 무지개는 용서였다. 원시시대 사람들에게 펼쳐진 환경은 하나의 신성함 그 자체였다.
고대의 진리는 신화였다. 대표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등장 인물들은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는 실재하는 존재였다. 그들에게 올림푸스의 신들인 제우스, 헤라, 아폴론 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실제로 존재했고 인간 세상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자기 세계의 사실로서 존재했다.
중세 시대에 이르러 진리는 진리다운 면모를 보인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유일신은 초월적이고, 완벽한 존재로 등장했다. 이 유일신은 진리의 속성인 절대성, 보편성, 불변성을 다 갖춘 우주의 창조자였다. 중세의 초월적인 신은 왕권을 정당화해주는 역할도 했다. 권력의 물질적 기반으로서 장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정신적 정당화를 위해 신을 요청했다. 그런데, 중세 후기가 되면서 생산수단인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가 등장했고 신의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진리인 이성을 제시했다. 이로서 신본주의가 무너지고 인본주의가 도래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근대에 이르러 진리는 이성으로 대체되었다. 이성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 근본적 학문을 의미한다. 수학, 철학, 물리학이다. 이 세 영역은 다른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수학, 철학, 물리학이 이룬 성과는 가히 놀라워서, 근대 사회의 분위기는 인간의 이성을 토대로 한 거대한 학문 체계가 세계를 넘어 인간과 우주의 존재 모든 것을 규명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근대인의 낙관적인 전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근대는 매우 빠르게 붕괴하였다. 그 원인은 외적 원인과 내적 원인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외적 원인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기인한다. 이성에 대한 신뢰와 그에 따른 기술발전은 세상을 풍요롭게 해줄 것 같았지만 반대로 인류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은 대량 살상무기가 되어 인류를 위협했다. 그리고 산업발전은 환경 파괴와 빈부격차, 거대 자본에 의한 개발도상국의 종속화를 가져왔다. 이성과 합리성의 추구가 유토피아를 가져오지 않으며, 반대로 삶과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음을 경험한 것이다. 다음으로 내적 원인은 인간 이성이 학문의 영역에서 스스로 한계를 들어낸 것을 말한다. 인간 이성의 꽃이며 모든 학문의 최종 근거로서의 지위를 차지했던 수학, 철학, 물리학에서 스스로의 한계와 불가능성이 발견된 것이다. 수학에서는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수학의 불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냈고, 철학에선 파이어아벤트가 인식론적 무정부주의를 통해 철학적 방법론에 규칙이 필요하지 않음을 설명함으로써 학문 전체의 질서를 흔들었다. 물리학에서는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고전 물리학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설명했다. 세 이론의 공통점은 자신이 속한 학문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수학 :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 괴델은 20세기에 활동했던 수학자로, 아인슈타인과 친구였다. 26세에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짧은 논문을 발표해서 수학계를 뒤흔들었다. 내용은 하나의 특정 수학 체계는 자기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음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우리가 수학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적어도 하나의 명제는 증명할 수 없고, 이것은 수학 체계가 완벽하게 증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철학 : 파이어아벤트의 인식론적 무정부주의, 20세기에 활동한 파이어아벤트는 근대 이성중심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과학사에서 역사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과학이 이성적 검증만으로 발전되어온 것이 아니라, 예술적이거나 심지어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왔음을 보여주었다. 파이어아벤트에게 과학은 신화나 점성술, 미신에 비해 더 우월한 방법론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네 멋대로 해라." 라고 선언했다. 과학적 방법론만을 추구해야 할 이유는 실제 역사와 현실을 고려할 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인류는 과학적인 방법이 아닌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들로 과학을 발전시켰다. 그의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합리적 이성의 기초가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충동에서 기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그는 괴델과 같은 시기인 20세기에 활동한 이론 물리학자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현대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소립자 세계의 물리 법칙은 거시 세계를 다루는 고전 물리 법칙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미시세계에서 소립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소립자의 이후 속도가 불확실해지고, 소립자의 속도를 정확하게 파악을 하면 소립자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물리학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위 상기 3가지 이론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와 불가능성을 되돌아보게 해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인간의 이성은 사실 너무나 초라하고 제한적이며 폭력적인 귀결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류는 몸처리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절대적 진리로서 기대했던 근대 이성을 극복하고, 근대 합리성을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현대의 진리는 무엇일까? 시대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아갔다. 어떤 이들은 근대 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근대가 절대적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 비극을 맞이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성과 합리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성의 잘못된 사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합리적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추구했던 철학자 하버마스가 이러한 입장을 대표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근대가 비극을 맞이한 것이 이성의 오용이 아니라 이성 자체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이들은 근대 합리성의 독단을 무너뜨리고 탈출하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를 탈근대성이라고 부른다. 영어로 말하면 post-modern이 된다. 포스트모던, 탈근대성은 우리 모두가 바보가 되자는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이성중심주의의 독단과 폭력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포스트모던은 196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포스트모던의 이념적인 측면에서 보면 포스트모든은 중세와 군대가 추구했던 이념을 거부했다. 중세와 근대는 이분법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봤다.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보수와 진보, 서양과 동양 이처럼 이분법은 복잡한 세계를 놀랍도록 단순하게 정리해주는 분석의 툴로 유용하다. 포스트모던은 중세와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는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를 억압하는 폭력을 수반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분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를 휩쓴 문화 운동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실천적 움직임이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운동, 인종차별 철폐, 학생운동 등의 정치, 사회 운동과 함께 회화, 사진, 미디어, 패션에 이르는 문화-예술 운동을 동반했다. 이렇게 폭넓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에선 68혁명으로 사회를 휩쓸었다. 68혁명은 1968년 프랑스 대학생들이 일으킨 시위로 시작하여 기성세대와 시민이 함께하는 혁명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권위적이고 계몽적인 학교와 국가에 저항했다. 모든 권위와 권력, 국가, 체제, 규범에 반대한 68혁명 정신은 유럽을 휩쓴 뒤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의 히피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은 군부 독재시기였고, 중국은 독재 공산주의였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건축에는 해체주의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해체주의의 특징으로는 비대칭적이고, 불안정하며, 기능적인 효율성을 배제한 양식이다. 최대한 넓고 쾌적하고 인간의 편안함이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근대 건축에 대한 전면적 저항은 해체주의 건축이 추구하는 바였다. 그래서 의도적인 비효율로 설계되었다.
* 최종 정리
진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진리는 절대, 보편, 불변 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진리를 대하는 태도로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절대주의,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 알 수 없다는 것까지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불가지론, 쓸모 안에서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실용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역사속 진리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보았다. 원시의 자연신, 고대의 신화, 중세의 유일신, 근대의 이성으로 흐름이 이어졌다. 특히 근대 이성은 합리성, 객관성, 효율성을 기반으로 인류를 신과 종교로 부터 벗어나게 해주었고, 기술과 산업의 발달에 따른 풍요를 선물해 주었다. 이성에 대한 낙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근대성의 붕괴와 함께 단일 진리에 저항하던 포스트모던이 등장했다. 포스트모던은 중세와 근대가 공유해왔던 이분법적 세계관의 폭력성을 지적하고,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다원적 가치를 복원하는 실천운동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왜 진리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나의 삶에서 세상이 말해주는 진리가 진짜라고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진리 또한 내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 역할에 따른 색안경임을 자각하며 다시 스스로 나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1. 철학
1) 세가지 중심 개념 :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 절대주의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단일 진리를 상정하는 태도이다. 상대주의란 변화하고 운동하는 세계의 다양한 진리를 고려하는 태도이다. 회의주의란 보편적 진리나 그에 도달하는 방법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이다. 엄밀히 말해서 한 명의 철학자나 하나의 철학 사조를 절대주의 혹은 상대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오해의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에도 우리는 진리에 대한 세 가지 태도로 철학사를 구분할 것이다. 철학사를 구조적으로 개괄함으로써 분주한 일상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철학에 대한 기본 틀을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고대 철학 : 소피스트(회의주의), 플라톤(절대주의), 아리스토텔레스(상대주의)
소피스트(회의주의) 서양 철학의 시작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는데 보통은 자연철학자나 소피스트(회의주의)를 그 처음으로 본다. 자연철학자는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로 봤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게 아니라 복잡한 자연 이면의 근본적인 재료를 파악하려 한 것이다. 철학자들은 직접 보이는 세계를 현상이라고 부른다. 반면 공통 속성을 본질이라고 부른다. 철학에서의 현상과 본질의 구분은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처럼 이분법적인 구조다. 현상 세계의 개체는 하나하나가 매우 독특하고 감각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성을 갖지만, 본질 세계의 존재자들은 변하지 않는 영원성을 갖는다. 현상 세계는 상대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계이고, 본질 세계는 절대주의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계다.
자연철학자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본질에 대해 논했다. 딱히 분석, 측정할 기구가 없었던 시기라 그저 논리적인 사유만으로 이에 닿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 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제시했다. 이처럼 자연철학자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를 보려했고, 사물의 본질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양에서 최조로 등장한 철학자들인 동시에 최초의 절대주의적 관점을 가졌다.
자연철학자 이후 등장한 소피스트(회의주의)들은 상대주의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지중해 주변의 여러 지역에서 모인 지혜로운 사람들의 집단으로 다양한 주장과 사고를 발전시켰다. 소피스트란 그리스어로 지혜로운 사람 혹은 지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구체적 현실에서 얻은 경험으로 도시 국가 아테네로 오는 과정에서 넓은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여러 지역의 법과 제도, 관습은 너무나도 다채롭고 상이했다. 그렇기에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공통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굳이 수고스럽게 공통점을 찾을 이유도 없어보였다. 소피스트는 자연스럽게 절대적 진리나 고정된 본질을 부정하는 상대주의적이며 회의주의적인 관점을 견지하게 되었다. 대표적 인물로 기원전 5세기 무렵 아테네를 중심으로 활동한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그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라는 유명한 말은 진리가 개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회의적인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소피스트는 교육자이기도 했으며 변론술과 수사학을 가르쳤다. 그들이 변론술과 수사학을 가르쳤다는 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고정된 진리와 보편적 기준이 없다면 그때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내가 아는 사실과 진실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피스트들에게는 아테네 사회에서 변론술과 수사학은 매우 쓸모가 있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절대주의) : 소크라테스(기원전469~기원전399)는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인물이다. 지금와서야 서구 철학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그도 소피스트 중 하나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를 비판하고 진리의 절대성을 주장했다는 점이 달랐다. 그는 사람들과 문답법을 통해 누구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문답법이란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쳐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으로, 산파법이라고도 불렀다. 산파가 산모로부터 출산을 유도하듯, 적합한 질문이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진리를 잉태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장 근본적인 진리의 토대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사유방식을 '정초주의' 혹은 '토대주의'라고도 불렀는데, 여기선 넓은 의미에서 절대주의로 부르기로 한다.
절대주의 사상은 제자 플라톤에게 이어졌다. 플라톤은 스스의 가르침을 극단화해서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로서의 '이데아'를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이데사 세계는 원래 우리의 영혼이 존재하던 세계로, 이곳의 그림자가 현실 세계가 된다. 변화하고 혼란스러운 현상 세계는 이데아의 모방일 뿐이며, 본질로서의 이데아 세계에 비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철학자라면 불안정한 물질 세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이데아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일까? 플라톤에 따르면 그것은 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번째 방법은 '상기'다. 인간의 영혼은 이미 육체로 들어오기 전에 이데아 세계에 존재했으므로 미약하게나마 이데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사물과의 접촉을 통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두번째 방법은 '변증'이다. 인간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추상할 수 있다. 세번째 방법은 '사랑'이다. 사랑은 우리를 특수한 것을 넘어 보편적인 것에 이르게 한다. 사랑은 특수를 넘어 보편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특히 지혜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다. 지혜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제한되고 특수한 인식을 영원하고 보편적인 이데아 세계로 점차 고양시킬 것이다. 플라톤은 본질적이고 영원한 이데아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절대주의 철학의 시조가 되었다. 서구 철학 전통의 거대한 축을 담당하는 절대주의는 모두 변형된 형태의 이데아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톤의 철학은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인간에게 완전하고 무한한 진리의 세계가 있음을 알림으로써 인간 이성의 가능성을 극대화했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완전한 세계를 상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현실세계의 가치를 저하하고 일상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스승의 생각에 불만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상대주의) : 플라톤이 절대적인 하늘에 관심이 많았다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하는 땅 위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플라톤의 거대한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어서, 보편적인 지식이나 초월적인 관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했다. 현실 너머의 초월적인 근원을 탐구하는 학문을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 기원한다. 형이상학은 현상 이면의 근원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시학 등 거의 모든 분야를 탐구했는데, 이 각각의 학문들이 자기 분야 안에서 궁극적으로는 전제하는 근원 개념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근원 개념들의 존재 일반을 탐구하게 된다. 즉, 존재란 무엇인지, 존재 그 자체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 그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이 형이상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근원적인 진리에 관심을 가졌지만, 주된 관심사는 현실의 존재였다. 실체가 없는 이데아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개체들을 질료와 형상으로 구분함으로써 탐구를 시작했다. 질료란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가능성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찰흙은 질료다. 이러한 질료를 그는 가능태라 불렀다. 다음으로 형상이란 질료를 통해서 만들어져 실현된 상태다. 찰흙으로 빚은 코끼리가 형상이다. 이러한 형상을 현실태라 불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물질적인 질료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물질적 기반이 필요없는 이데아로부터 세게를 이해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질료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질료의 세계인 현실 세계를 중시했다. 그런데 질료와 형상, 가능태와 현실태는 고정된 개념은 아니다. 홁에서부터 시작해보면, 흙이 질료가 되면 형상은 찰흙이 되고 찰흙이 다시 진료가 되면 형상은 코끼리 작품이다. 질료로서의 코끼리 작품이 형상으로서의 전시회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물질은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 운동해간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계속 현실태로 올라갈수도 있고, 가능태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럼 최초 질료와 최종 형상은 어떤 모습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맨 아래에 있는 최초의 질료로서 어떤 형상도 가지고 있지 않고 가능성만 가지고 있는 질료를 제일질료라고 불렀다. 제일질료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인간의 사고 속에서만 존재하는 순수 재료다. 반대로 맨 위에 있는 최종 형상으로서, 어떤 질료도 지니지 않은 형상을 순수형상이 불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것은 신이 된다. 신은 질료가 없으므로 물질 세계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물질의 최종 형상으로서 모든 질료가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적이 된다. 그의 철학에는 스승 플라톤의 이데아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플라톤과 비교해볼 때 그는 현실의 구체적 존재자들을 중요시했으며, 물질 세계의 변화와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질료와 형상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말 말하고자 한 것은 궁극의 신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질료가 형상으로 나아가는 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자연과학과 경험주의 철학의 기원이 되었고, 플라톤과 함께 서양 철학의 양대 산맥이 되었다.
고대 철학에 대해 정리해 보자면 그 시작은 최초 철학자들인 자연철학자들과 진리에 대해 회의적인 소피스트부터 시작되었다. 이들과 견해를 달리하며 등장한 소크라테스는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다. 이후 플라톤이 이를 계승, 발전시켜 궁극의 절대적인 세계로 이데아를 제시했다. 반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이데아 세계보다는 변화하고 운동하는 상대적인 현실 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형상과 질료의 관계와 운동성에 주목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서양 철학의 양대 산맥은 이제 중세로 이어진다.
3) 중세 철학 : 교부 철학, 스콜라 철학,
교부철학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이후 남겨진 사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리스도교는 점차 유럽 사회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는 계시적이고 신비적인 측면이 강했고 유대교 신앙과 명확히 구분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수용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이질감은 로마 제국이 탄압할 수 있는 구실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등장한 인물들을 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의 '교부' 라 부르고, 이들이 만든 이념을 '교부철학'이라고 한다. 주교나 교회의 지도자부터 존경받는 평신도까지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교부들이 그리스도교 사상을 보편적 사상으로 정비하기 위해 차용한 이념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었다. 특히 당시 널리 연구되던 신플라톤학파의 영향이 컸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 사상의 기반 위에 이를 더 세분화한 이론이었다. 이에 따르면 이데사 세계의 궁극적 근원은 일자에 가서 닿는다. 이 일자로부터 세계가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이론 체계는 유일신 사상에 쉽게 대응할 수 있었기에, 초기 그리스도교가 사상 체계를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사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실제로 유사하다.
예를 들어 신플라톤주의의 일자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응하고,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는 그리스도교의 천국에 대응한다. 플라톤 사상에서 완전한 이데아 세계와 불완전한 현상 세계를 구분하는 이분법은 그리스도교에서 완벽한 천상 세계와 타락한 지상 세계를 구분하는 이분법과 동일하다. 이에 대해서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대중을 위한 플라톤 주의에 다름 아님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니체에 따르면 플라톤 사상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그리스도교 세계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플라톤 주의로 초기 그리스도교 교리를 체계화한 교부로는 오리게네스와 그레고리우스가 있다.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는 4~5세기 활동한 아우구스티누스 이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교부로 중세 기독 사상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신의 이데아에 따라서 그의 의지대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불완전한 지상 세계에서 원죄를 짊어진 인간은 절대적인 존재인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 구원의 대상이 누가 될지는 이미 신이 예정한 것이며, 교회는 신과 예정된 대상이 매개되는 공간이다.
스콜라 철학 : 스콜라 철학은 교부 철학의 뒤를 잇는 그리스도교 사상의 흐름이다. 9세기부터 중세가 무너지는 17세기 무렵까지를 스콜라 철학의 시대로 보는게 일반적이다. 교부 철학이 그리스도교 철학을 정립했다면 스콜라 철학은 이를 증명하고 세밀화했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이 강했던 까닭에 전통적인 교부 철학과 충돌하면서 성장했다. 스콜라 철학은 초기를 거쳐 중기에 이르자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흐름을 도입했다. 즉, 플라톤의 이데아적 절대주의 대신 그동안 기독교 철학 내에서 배제되었던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분석에 차츰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중세 기독 사상 안에서 플라톤 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충돌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보편논쟁'이다. 이것은 중세 스콜라철학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큰 논쟁이었다. 보편논쟁의 핵심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보편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세상에 다양한 개별적 개체들을 우리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궁금해했다. 과연 보편 개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가) 보편이 실제로 존재한다. 개별적인 것은 보편의 모사, 모방이다.
나) 보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별적인 것만이 실제로 존재할 뿐이고, 보편은 단지 언어이고 이름일 뿐이다.
당신은 어떤 설명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의 사고방식은 실재론 혹은 관념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플라톤의 사고와 닮아 있다. 나의 사고방식은 유명론이라고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토대로 한다. 실재론을 극단적으로 주장한 인물은 기욤으로, 그는 보편자가 항상 개별 사물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반대로 유명론을 극단적으로 주장한 인물은 기욤의 스승인 로스켈리누스다. 그는 세상을 채우고 있는 건 보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별 사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로스켈리누스는 자신의 유명론을 삼위일체 개념에 연결해서 성부, 성자, 성신의 존재가 따로 존재한다는 삼신론을 전개했다가 교회로부터 이단이라고 비난받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기도 했다.
기욤의 실재론과 로스켈리누스의 유명론은 중세 교회의 열띤 논쟁을 불러왔는데, 이 두 견해를 절충한 인물이 기욤의 제자인 아벨라르였다. 아벨라르는 우선 유명론부터 비판했다. 유명론에 의하면 보편은 단지 언어이며 이름일 뿐,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의미없는 말이다. 그러므로 보편 개념이 포함된 문장 역시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보편에 해당하는 어휘를 유의미하게 사용하며 문장을 만들고 소통을 한다. 따라서 아벨라르는 보편 개념이 실제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유명론의 보편 부정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실재론하고도 선을 그었다. 그는 보편이 의미를 갖는다고 해도, 그것은 자연에 존재하거나 물질적인 실체를 가진 것은 아니고 인간 사고의 유용한 관념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적인 이데아로서의 보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아벨라르는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편논쟁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이후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컴 같은 근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철학자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한 것이다.
중세 회의주의 : 중세 철학은 초기에 교부들에 의한 플라톤의 절대주의적 성향이 짙었는데 후기로 하면 보편논쟁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대주의적 관점이 수용되었다.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교회의 권위가 중세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시기에도 철학적 논쟁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철학적 논쟁들 속에서 회의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왜냐면 회의주의가 진리에 대한 의심과 거부를 의미한다고 할 때, 중세에 진리를 의심한다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이단 행위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회의주의자는 이름을 알리기도 전에 불타 죽었다. 그나마 중세 초기에는 플라톤의 철학을 계승한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에서 회의주의적 관점이 명맥을 유지했다. 이들은 진리는 발견되지 않고 다만 탐구될 뿐이라는 회의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중세의 나머지 기간동안에는 교회의 절대적 권위로 회의주의가 등장하기 어려웠다.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이 컸던 유럽과는 달리 이슬람교의 지배를 받던 스페인에서는 합리주의를 거부하는 회의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11세기 알 가잘리 등의 이슬람 신학자들과 유다 하레비 등의 유대 신학자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교조적이고 권위적인 학문 이론과 종교 체제를 거부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그리스도교, 이슬람고, 유대교의 거대한 유일신 중심의 사회 분위기속에서 신 존재를 자체를 의심하는 심도있는 회의주의를 전개하지는 못했다.
중세 천 년은 유일신 중심의 절대주의 시대였다. 그리고 여기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세계관이 플라톤의 절대주의 였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대주의 관점이 보편논쟁을 중심으로 등장했다. 보편논쟁은 보편이 실재한는지에 대한 중세 최대의 논쟁이며, 보편이 실재한다는 실재론은 플라톤의 절대주의에서 그 이론적 토대를 찾았다. 반면 보편은 실재하지 않고 다만 언어일 뿐이라는 유명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상대주의에서 그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보편논쟁을 종합한 인물은 아벨라르였다. 그는 보편을 관념적인 개념으로 정립함으로써 실재론과 유명론의 논쟁을 마무리했다.
4) 근대 철학 :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니체, 신본주의 중세가 저물고 인본주의 근대가 오면서 이성 중심의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물질적 권력을 획득한 부르주아 시민 계급은 왕의 권력을 정당화 하는 신을 폐기하고 인간의 주체성을 보장해주는 이성을 시대중심 개념으로 격상시켰다. 이제 진리의 영역은 종교에서 철학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진리의 영역이 변화된 것과 무관하게 진리에 대한 입장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세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싸움이 보편논쟁에서의 실재론과 유명론에 있었다면, 근대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우선 합리론은 실재론의 관점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실재론이 개별적 개체보다 보편적 관념을 우선했던 것과 같이 현실에서 관찰되는 개별 사건보다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을 중요시 했다. 반면 경험론은 유명론의 관점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유명론이 보편을 단지 언어적인 것으로 보고 그보다는 개별적인 개체를 우선했던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의 경험과 관찰을 중요시 했다. 이처럼 세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하는 거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과,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현상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 말이다. 철학이라는 분야가 어렵고 난해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세부 내용만 조금 바뀔 뿐,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은 '어떻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처럼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분야를 철학에서는 인식론이라고 한다. 합리론과 경험론은 인식론의 두 가지 답변이다.
존재론과 인식론은 진리에 대해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존재론은 '진리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에 대해 답한다면, 인식론은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에 답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A가 질문한다.
A: 외계인이 진짜 있을까? B가 대답한다. B: 그럼, 있지. 이 대화는 존재론적 대화이다. 존재론은 특정 존재의 유무나 존재 방식에 대해서 논하는 분야다. 다음 대화를 들어보자.
A: 응? 외계인이 있다고? 어떻게 알았는데? , B: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우주가 무한하니까 지구랑 비슷한 물리적 조건을 갖는 행성들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같은 물리적 조건이라면 생명의 탄생 조건도 비슷했을 테니까. 지금의 대화는 인식론적 대화다. 인식론은 존재론처럼 있느냐 없느냐의 물음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묻는다.
존재론이든 인식론이든 답은 정해져있다고 봐야 한다. 우선 존재론은 그 대상이 신이건 이성이건 외계인이건 '있다', '없다' 둘 중 하나의 대답으로 정해져 있다. 인식론 역시 대답이 정해져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답은 '이성을 통해', '경험을 통해' 둘 중 하나의 대답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하는 방법은 머리로 생각해봐서 알거나, 직접 경험해봐서 알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질문에서 B처럼 대답한다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이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인식론적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이성을 제시하는 입장을 합리론이라고 한다. B는 합리론자다. 반면 이성적인 사유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실제로 외계인과 접촉해서 눈으로 확인해야만 확신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한데, 이를 경험론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존재론과 인식론은 각각 강조되던 시기가 있었다. 고대와 중세가 존재론적 철학이 중심이었다면 근대 철학에 와서 인식론적 철학이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근대인이 관심가졌던 것은 진리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합리론과 경험론이 대두된 것이다.
합리론 - 데카르트(절대주의) : 합리론은 합리주의, 이성주의라고도 부른다.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입장을 말한다. 특히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이성을 제시한다. 프랑스나 독일을 중심으로 발전했기에 대륙 합리론이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데카르트, 가상디,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이 있다. 그중 서양 철학의 거대한 흐름을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전환시킨 대표적인 인물이 르네 데카르트이다. 그가 활동했던 17세기는 마지막 종교전쟁이었던 30년전쟁이 진행된 시기였다. 30년전쟁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벌어졌는데, 오랜 전쟁으로 유럽은 허무주의적이고 회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며 신과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이런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의 분위기를 극복하려면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진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그는 반대로 모든 것을 의심해보기 시작했다.모든 것을 의심하다보면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발견된다면 그때부터 이 단단한 기반을 토대로 모든 학문 체계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카르트의 방법을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지식을 세 가지 범주, 즉 감각지식, 일반지식, 보편지식으로 나눠서 의심해 보기 시작했다. 감각지식에서 감각은 우리의 오감외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없다. 그리고 감각을 통해 알게 된 지식들이 오류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감각을 통한 지식은 믿을 수 없다. 다음으로 자연과학에서 얻은 일반지식이다. 과학 이론은 다양한 관찰을 통해서 귀납적으로 정리된 지식이다. 하지만 귀납법은 논리적 비약이 따를 수 있다. 왜냐면 많은 관찰을 한다해도 그 관찰은 언제나 과거의 관찰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납법은 과거의 관찰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려한다. 그런 까닭에 귀납법은 언제나 틀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지식, 일반지식 역시 불확실하고 의심 가능한 지식이다. 마지막으로 데카르트는 의심하기 쉽지 않아보이는 수학과 기하학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데카르트는 이런 지식을 보편지식이라고 불렀다. 일반지식이 경험적 관찰을 통해서 귀납법으로 찾아낸 지식이라면, 보편지식은 논리적 추론을 통해 연역법으로 도달한 지식이다. 수학과 기하학은 논리적 추론으로 얻은 지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과 기하학의 보편지식은 의심하기 쉽지 않다. 데카르트는 극단적으로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전지적 악마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가정을 함으로 진실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보편지식이라해도 절대 의심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데카르트는 끝없는 의심 속으로 침잠해갔다. 그리고는 그 끝에 극적으로 닿게 되었다. 어떠한 극단적인 가정으로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말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다. 사실은 이 말은 후에 데카르트에 의해 수정되어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로 변경되었다. '고로'를 뺀 것이다. 이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고로를 넣을 경우 마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실로부터 나의 존재함이 발생되는 것처럼 보인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생각한다와 존재한다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독립해 있는 것이다. 그런 미세한 차이는 이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수정된 명제를 사용하기로 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를 의심할 수 없는 제1명제라고 했다. 이 명제는 둘로 나눠서 생각해봐야 하는데 우선 나는 생각한다를 보자. 나는 생각한다는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명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라고 의심하는 순간 나는 이미 의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적 악마가 나타나 나를 조정한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생각하는지 의심하는데, 나로 하여금 생각을 못하게 만드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나는 내가 생각하는지 의심하기 때문에 그 조차도 생각이다. 이로써 이 명제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가 된다.
다음으로 '나는 존재한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일단 내가 생각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있는 주체로서의 내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고 있음이 확실하면 나는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생각이 내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는 의심할 수 없고, '나는 존재한다.'는 것도 필연적으로 증명된다. 이제 나의 생각과 존재를 증명했으니, 데카르트에게 남은 것은 세계에 대한 증명이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사실 당신이 꿈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식물인간으로 십 년째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당신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다. 눈앞의 세상이 실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동양과 서양의 오랜 역사에서 등장하는 사고 방식이다. 장자의 호접몽과 세계를 환영으로 이해하는 인도의 마야 사상이 그렇고, 서양의 관념론과 현대 철학의 하이퍼리얼리티 개념이 그렇다. 데카르트도 눈앞의 세계가 허구이거나 가짜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세계가 진짜임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데카르트는 세계를 증명하기 위해서 신의 관념을 끌어들였다. 다시 제1명제로 돌아가보자.
내가 생각하고 존재하는 것은 증명되었다. 그런데 내 생각 속을 들여다보면 독특한 관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에 대한 관념이다. 이 관념이 독특한 것은 신은 개념상 완전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 자신도 의심하고 세계도 의심할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인데, 나에게는 이미 완전함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질서에서 무질서가 도출될 수는 있어도 무질서에서 질서가 도출되지는 않듯,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함은 도출될 수 없다. 왜냐면 질서란 질서를 계획할 수 있는 주체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무질서와 불완전성에서 질서와 완전성은 도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내가 신이라는 완전한 신의 개념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외부의 절대적 존재가 나에게 신의 개념을 주입해주어서일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 존재로서 신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정리해보면 데카르트는 나를 증명했고, 내 관념 속에서 발견되는 완전함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외부에 신이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를 증명할 차례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신은 개념상 완벽하기 때문에 이 개념 안에는 성실함도 포함될 것이다. 신의 개념상 신은 방만하거나 불성실하거나 나태할 수 없다. 따라서 성실한 신은 나를 속이지 않고 이 세계를 존재하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이 있다면 세계는 존재해야만 한다. 나, 신, 세계의 존재가 증명되었다. 무신론자이거나 21세기 기술문명과 과학을 신뢰하며 살아온 현대인이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증명인가 싶겠지만, 데카르트 이전까지의 시대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였다. 신이 중요할 뿐 인간의 가치나 중요성은 필요하지 않았다. 데카르트의 사유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모든 세계를 증명하기 시작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나의 의심과 회의를 통해서 발견되고, 나의 존재 증명이 신과 세계의 존재 증명보다 앞선다. 즉, 인간의 이성이 우선이고 신과 세계는 이로부터 파생되어 증명된다. 데카르트가 아직도 신을 언급함에도 불가하고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카르트의 사고는 존재론적인가? 인식론적인가? 내가 어떻게 신과 세계를 증명할 수 있는지 인식의 측면을 탐구했다. 따라서 인식론적 물음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데카르트를 근대 인식론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나와 신의 관계를 순수하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추론만으로 진행했다. 즉, 데카르트는 합리론적 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경험론 - 베이컨(상대주의) : 합리론이 인간의 이성과 논리만으로 세계를 증명하고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다면, 경험론은 반대로 자연 세계에서의 감각적인 경험만이 지식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완전무결한 진리를 도출하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경험 세계를 토대로 진리를 발견하고자한다는 측면에서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개별 개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중세의 유명론과도 연결된다. 현대인 관점에서 보면 자연 세계를 관찰하고 실험함으로써 이론을 도출해야 한다는 경험론의 주장은 특별할게 없어보인다. 하지만 경험론이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은 이것이 실제로 별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근대의 경험론이 승리한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고도로 발전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인되고 증명되는 것만을 믿는 경험론자들이 되었다. 하지만 근대 초기에 경험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왜냐면 경험론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진리는 관찰할 수 있는 자연에 있고 우리는 자연과 규칙과 질서를 찾아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경험론의 진리 탐구 방법에는 신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경험론은 중세의 신중심주의를 끝내고 근대 이성중심주의와 근대 과학을 탄생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프랜시스 베이컨으로 데카르트보다 35년 전에 태어나서 16~17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다.
베이컨의 세계관을 두 가지 측면에서 알아보자. 하나는 기존 학문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학문의 방향으로 그가 제시한 방법이다. 그는 기존 학문을 우상론으로 비판했고, 새로운 학문 방법으로 귀납법을 제시했다. 특히 베이컨이 기존의 학문 체계를 비판하려 할 때 염두에 둔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왜냐면 당시는 중세가 끝나갈 무렵으로 스콜라철학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다루었듯 스콜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기반으로한 기독교 철학 체계였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한다는 것은 당시의 학문 체계와 기독교 철학 전반의 뿌리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이컨의 저서 제목도 '노붐 오르가눔'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추론 방법에 대한 저서들을 '오르가논'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대응해서 지은 제목이다. 여기서 노붐(Novum)은 새롭다는 뜻이고 오르가눔(Organum)은 기관으로 해석된다. 즉, 새로운 기관(신기관)정도가 되는데 의역하면 새로운 학문의 도구라는 뜻이다. 노붐 오르가눔에서 베이컨은 우상론으로 기존 학문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여기서 우상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을 말한다. 베이컨은 편의상 네 가지 이름을 붙였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여기서 종족,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개체적인 편견에 해당하고 시장, 극장의 우상은 사회적인 측면이 강하다.
종족의 우상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편견을 말한다. '꽃이 웃는다.' 의인화 하는 말은 인간 중심적인 문장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다. 이러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사물에 투영해서 사물을 인간적으로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오류를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이 전체의 일반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오류를 발생시킨다. 베이컨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동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동굴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동안은 외부의 빛이 아니라 동굴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제한된 빛으로 동굴 안을 본다. 베이컨은 이러한 주관성이 극복될 때 편견없이 학문을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장의 우상은 잘못된 언어를 사용할 때 발생한다. 사람들은 보통 주어가 들어가는 단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신, 악마, 요정, 도깨비 등의 단어가 존재하면 그에 부합하는 대상이 진짜 있을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베이컨에 따르면 사람들은 관찰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하는데, 이럴 경우 혼란에 빠지고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극장의 우상은 권위에 수긍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사람들은 미신, 신학, 철학 등 기존에 전통으로 확립되어 있는 이론들의 권위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갖는다. 베이컨이 보기에는 이러한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는 제대로 된 학문 체계를 세우지 못하게 한다. 그에 따르면 기존 전통 이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연 세계를 직접 관찰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만 학문에 대해 논해야 한다.
베이컨은 네 가지 우상을 통해서 기존의 학문 체계를 비판한 후, 그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학문 방법인 귀납법을 제시했다. 사실 귀납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체계를 세운 방법론인데 다만 그가 귀납법보다는 연역법을 더 중요시 했다. 베이컨은 이를 비판하는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새로운 귀납법을 제시한 것이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특정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추론법이다. 연역법은 주로 보편명제에서 특수명제를 이끌어내는데 유용하고, 반대로 귀납법은 특수명제로부터 보편명제를 이끌어내는데 사용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편과 특수라는 용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인류 전체가 X, Y, Z 라는 셋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들은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단어로 묶을 수 있다. 보편논쟁은 인간이라는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중세의 실재론자들은 보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유명론자들은 개체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의 개체가 특수를 말한다.
근대의 철학은 중세 철학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 중세 실재론자들처럼 근대 합리론자들은 보편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들은 보편으로부터 추론을 시작하는 연역법을 추구했다. 반면 중세 유명론자들처럼 근대 경험론자들은 특수를 더 중요시 했다. 그래서 특수로부터 추론을 시작하는 귀납법을 강조했다.
우선 연역법에서는 보편이 우선하고 개체는 이에 종속된다. 보편의 속성이 A라고 한다면 X도 Y도 Z도 필연적으로 A의 속성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연역법에서는 보편에 대해서만 알면 무수히 많은 개체의 속성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효율적이고 완벽한 추론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궁극적인 보편에 대한 지식을 찾는다면 우리는 모든 특수의 속성을 눈감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합리론자인 데카르트는 실제로 수학, 기하학 등의 완벽한 보편자로부터 세계 전체를 추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보편에 대한 지식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건 어쩔 수 없이 특수한 개별자를 일일이 전수검사해서 알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지적하며 등장한 사람이 경험론자 베이컨이다. 그는 연역법이 언제나 논리적으로 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연역법은 지식의 확장없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매 순간 특수에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학문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때, 연역법은 학문의 진보란 측면에서 쓸모가 없다. 베이컨은 개별적인 특수를 종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잠재적인 보편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X, Y, Z를 한 명씩 관찰해보는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추론할 때에야 비로소 보편자로서의 인간의 속성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베이컨은 노붐 오르가눔에서 학문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귀납법을 제시했다. 그가 귀납법을 통해 정말로 비판하고자 한 것은 아무런 경험적 근거없이 쌓아 올려진 중세의 종교와 철학이었다. 중세 스콜라철학에 이르러 집대성된 신학과 철학은 교회의 강력한 권위와 신앙에 기초하고 있을 뿐, 검증 가능한 현실에서의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베이컨은 누구나 관찰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특수한 개체로부터 경험적 자료를 쌓아 올린 새로운 학문 체계를 원했다. 이러한 경험적 학문만이 신이나 천사, 영혼, 천국 등의 형이상학적이고 소모적인 무수한 논쟁을 끝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베이컨의 경험주의는 당시 태동하던 자연과학이 발전하는 데 철학적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베이컨은 우리가 오류에 빠지는 상황을 우상론을 통해 설명하고 학문의 방법으로 귀납법을 제시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따라서 그의 사고는 인식론에 집중된다. 베이컨이 진리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이성적 사유를 제시하는 대신 감각적 세계에서의 경험 자료를 강조했다. 즉, 그는 경험론적 철학을 전개했다.
관념론 - 칸트 : 절대주의 + 상대주의 ,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은 근대 서양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다. 두 관점은 상이한 방향과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고, 간극은 좁히기 어려워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체계를 종합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서향 철학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킨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임마누엘 칸트이다. 우리가 철학사를 탐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철학 전체는 핵심적인 두 가지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절대주의-실재론-합리론으로 이어지는 축과 상대주의-유명론-경험론으로이어지는 다른 축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했다는 것은 사실 철학 전체의 두 사조를 종합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칸트는 2000년 넘게 이어오던 거대한 철학적 논쟁을 종결지은 것이다. 18세기 독일에서 활동했던 이 경이로운 인물의 업적은 '관념론'으로 알려져있다. 관념론은 일반적으로 실재론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류해보면, 존재론과 인식론은 질문에 해당하고 실재론과 관념론, 합리론과 경험론은 그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인식론은 우리가 어떻게 참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지를 묻는 분야였다. 그에 대한 답변은 두가지였다. 합리론의 이성과 경험론의 경험. 존재론 역시 하나의 질문이다. 존재의 존재 방식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실재론과 관념론이다. 실재론은 우리 바깥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참된 존재라고 답하고, 관념론은 우리 내념 세계의 관념이 참된 존재라고 답한다.
이중에서 실재론의 세계관은 상식적이고 친숙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참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나의 외부 세계에 있다. 그것이 종교에서의 신이든, 플라톤의 이데아든, 합리론의 수학적 대상이든, 경험론의 자연 세계든 어쨌거나 이것들은 나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다. 반면 관념론의 세계관은 상식적이지 않고 낯설다. 관념론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나의 관념이다. 그것은 나의 내면 세계에 있다. 눈앞에 펼쳐진 감각적인 외부 세계는 실제로는 나의 내면 세계에 의해 재구성된 이미지 일 뿐이다. 관념론은 나의 의식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외부의 세계를 의심한다. 실재론이 상식에 부합한다는 큰 장점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발달하고 인간 의식에 대한 탐구가 심화되면서 서양 철학은 관념론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자기 세계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칸트의 관념론은 도움이 된다.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경험으로 느껴지지만, 엄밀히 생각해보면 신비한 측면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것은 광원에서 쏟아져 나온 광자들이 사과 표면에 충돌한 후 튕겨져 나와 내 수정체를 통과해 망막에 있는 시상세포를 자극하는 것을 말한다. 광자에 의해 자극된 시세포들은 빛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해서 시신경을 통해서 뇌로 정보를 보낸다. 빛의 알갱이를 뇌로 직접 보내는 것이 아니라 0과 1로 된 디지털 신호를 모스부호처럼 뇌로 알리는 것이다. 뇌는 전기적 신호를 사과의 이미지로 나에게 보여준다. 눈앞에 그려지는 사과는 실제로는 내 뇌가 만들어내는 영상이다. 우리는 실제 사과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려준 영상을 보는 것이다. 박쥐가 물체를 인식하는 과정도 인간이 사과를 인식하는 것과 같은 매커니즘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보는 사과와 박쥐가 듣는 사과는 아마 다른 모양일 것이다. 같은 대상이지만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새들은 자외선 영역까지도 볼수 있다고 하니 우리보다 더 다채로운 색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즉 외부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릿속에서 해석된 그 심상(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세상을 둘로 분리했다. 내 눈앞에 드러난 세계를 현상이라고 부르고, 현상 너머의 진짜 세계를 물자체 라고 불렀다. 칸트에 따르면 결국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고, 사물의 실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현상 세계에 매몰되어 있는 주관적인 존재다. 사람들마다 너무도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보고 있다는 것인데,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자폐아이다. 하지만 칸트는 이렇게 주관주의로 빠질 위험에 처한 자신의 이론을 현명하게 구제해냈다. 칸트는 모두의 사고 구조가 보편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세계가 개인의 주관에 함몰되는 문제를 극복해냈다. 즉, 우리 각자가 자신의 머릿속 세상인 현상 세계만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현상 세계를 드러내고 사고의 형식 혹은 뇌의 구조가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실은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드러나는 세계도 동일하다. 즉, 우리는 각각의 카메라이지만, 소프트웨어가 모두 동일하지만 비슷한 사진을 촬영해서 뇌에서 인화하게 된다.
정리해보면 물자체는의 세계는 결코 알수 없다. 개인은 주관적으로 현상 세계를 구성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동일한 세계를 본다. 칸트의 설명이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합리론과 경험론의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통합했다는 것이다. 이제 진리는 세계 밖의 경험에서 혹은 내 안의 주관적 이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체의 인격형식에서 찾아야 한다. 칸트는 주체의 인식형식을 감성형식과 지성형식으로 구분한다. 우선 감성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다. 칸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외부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인식 주체가 기진 형식적 구조다. 다음으로 지성형식은 12개의 범주로 되어 있다. 이를 칸트의 12범주라고 부른다.
감성형식과 지성형식은 모든 인간에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내면의 틀이다. 모든 사람이 이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주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세상을 함께 보고 있다고 안심할 수 있다.
칸트의 관념론은 혁신적인 통찰이었다. 칸트는 이것을 스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명명했다. 칸트 이후의 관념론은 서양 철학의 주류를 형성하며 심화되었고 헤겔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일반적으로 헤겔은 근대의 마지막 철학자로 평가된다. 그의 거대 철학은 변용되어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이어지거나, 혹은 이에 대한 반발로서 실존주의를 탄생하게 했다.
니체 : 회의주의 , 근대가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헤겔 등의 걸출한 철학자를 배출하며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종합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이와 동시에 회의주의적 사조도 그 모습을 유지해나갔다. 쇼펜하우어로 대표되는 염세주의와 키르케고르에서 야스퍼스로 이어지는 실존주의는 종교, 이성이라는 기존 가치를 거부하고 개인의 삶과 개체의 한계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러한 철학적 조류는 철학사의 거인 니체에 이르러 극단화되었고, 결국 중세의 종교와 근대의 이성을 전복시켜 현대의 포스트모던이 등장하는 길을 열었다.
19세기 독일에서 활동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별명은 망치든 철학자였다. 별명에 맞게 그는 근대의 서구 문화 전체를 전복하려고 했다. 니체가 진단한 유럽 사회는 병들고 건강하지 못했다. 병의 원인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하는 서구의 이성중심주의 철학과 예수 이후 그리스도교 사상이었다. 특히 니체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기반한 윤리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와 대비되는 고대 그리스의 도덕관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갔다. 니체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언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좋음과 나쁨 그리고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한다. 니체는 이 차이를 엄밀하게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는 선악의 구분 대신 좋음과 나쁨의 구분만 있었다. 여기서 좋은 것은 주인의 생활 방식을 말하고, 나쁜 것은 노예의 생활 방식을 말한다. 니체에 따르면 주인의 도덕은 지배가 계급의 도덕으로, 여기에는 진취성과 확실성, 결단력, 창조력 등이 내포되어 있다. 쉽게 말해 주인은 주인처럼 행동한다. 그는 도덕에 구속받지 않고 도덕의 기준을 스스로 창조해간다. 니체에 따르면 주인의 도덕은 건강하고 좋은 것이다.
반면 노예의 도덕은 나쁘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강압되는 부자연스럽고 억눌린 도덕이다. 노예의 도덕은 겸손, 근면, 친절, 순종, 질서의 순응 등이 강조된다. 순종적이고 겸손하고 착해야 하는 계급은 노예 계급이다.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노예 도덕의 본질이 분노와 원한임을 밝혔다. 주인이 되지 못하고 주인에게 현실적으로 복수하지 못하는 억눌린 노예들의 원한이 그들의 도덕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니체는 이러한 노예의 도덕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불렀으며,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교가 바로 이 원한의 도덕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기원전 6세기에 유다 왕국이 멸망한 이후로 유대 민족은 언제나 다른 제국의 식민지 노예였다. 니체에 따르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유대인의 도덕은 원한으로 시작되었고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주인에 대한 그들의 원한은 점차 왜곡되고 이상화되어 결국에는 독특한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재탄생한다. 즉, 노예들은 자신들이 가진 도덕인 겸손, 근면, 순종, 순응 등을 선이라는 개념으로 뒤바꾼다. 그리고 주인의 진취성, 결단력, 창조력 등은 악이라는 개념으로 가치절하한다. 마음속의 소심한 복수가 형이상학적 체계를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결국 유대인에 의해 좋음은 악이 되고, 나쁨은 선이 되는 가치 전도의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으로부터 발생한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선과 악의 개념을 공고히 했다는데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럽 사회 전체를 장악하면서 유럽인에게 선과 악이라는 원한의 도덕관을 뿌리깊게 심어놓았다. 무엇인가 억눌리고 금욕적이며 겸손하고 희생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로 유럽이 병들어간다고 니체는 판단했다. 니체에 따르면 주인의 도덕은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건강한 도덕이다. 그러나 노예의 도덕은 타인에 대한 원한으로 비롯된 병든 도덕이다.
그렇다면 치료제는 있는가? 인류를 다시 건강케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니체의 처방은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제시된 초인 사상과 영원회귀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영원회귀는 같은 우주가 무한히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니체 사상의 주요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영원회귀에 따르면 나의 삶이 끝나고 정확히 다시 나의 삶을 그대로 다시 살게 된다. 이것은 힌두교나 불교에서의 윤회와는 다르다. 윤회는 다른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지만, 영원회귀는 지금 자신의 삶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다시 반복한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인가? 아니면 기쁜 일인가? 영원회귀는 우리로 가여금 삶과 순간이라는 두 종류의 시간의 가치를 전복시킨다. 기존에는 80년의 삶은 길고 지금 이 순간은 짧았지만, 영원회귀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80년의 삶은 유한하지만, 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영원한 시간임을 말이다. 영원한 순간에 비교해 볼때 80년의 유한한 삶의 길이는 0으로 수렴한다.
영원회귀 사상은 가장 극단적인 허무주의다. 하지만 허무는 허무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원회귀를 깨닫는 순간, 그는 허무를 딛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시켜야 한다. 그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게 창조해야만 한다. 왜냐면 지금 이 순간은 내 평생의 삶보다 훨씬 긴, 무한히 반복될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제안한다 순종적인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하는 주인이 될 것을 말이다.
5) 현대 철학 :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실존주의, 칸트가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하고 니체가 서구 사상의 실상을 파헤친 이후 현대 철학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가 뒤섞인 양상을 보였다.
하이데거(절대주의) : 20세기 독일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철학자다. 그는 인식론과 관념론을 중심을 흘러온 서양 철학의 역사를 비판하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존재론에 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 이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진지하게 다뤘으나 그 이후의 철학사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존재라는 무거운 주제를 20세기에 다시 꺼내들었다. 하이데거의 대표적인 저서는 존재와 시간으로, 두께와 난해함은 거의 모든 철학서를 압도한다.
하이데거가 탐구하고자 했던 존재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있음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가 있다.' 라는 문장이 있을 때, 우리는 사과에 관심을 기울이지, 있다의 의미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에서의 진리가 언어로 표현되어야만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의심없이 사용하는 술어 '있다'에 대해 검토해야만 한다. 고대 그리스 이후 존재의 문제가 단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하이데거는 언어적 혼란을 지목한다. 그는 언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한다.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하이데거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이 존재와 존재자의 구분에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존재와 존재자가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망각함으로써 존재자에게만 관심을 가졌지, 존재를 탐구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것'이라 했고, '존재자는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 이라고 정리한다. 다만 이 모든 것 안에 존재는 포함되지 않는다. 존재는 특정 존재자가 아니다.
예를 들어 '사과가 있다.' 라고 할 때 사과는 존재자다. 그럼 그 사과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당연히 있는 상태에 있다. 하이데거가 주목하는 것은 사과가 사과로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그 무엇, 다시 말해 그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답부터 말하면 '존재'란 '드러나 있음'을 말한다. 드러나 있음이란 은폐되지 않음으로서의 비은폐성이다. 쉽게 말해 존재란 숨겨져 있지 않고 그 상태 자체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은 이러한 비은폐성을 알레테이아(ale-theia)라고 했다. 알레테이아는 망각, 은폐라는 의미의 레테(le-the-)에 부정을 의미하는 아(a)를 붙인 것으로, 말그대로 은폐되지 않음, 비은폐성, 탈은폐성을 뜻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인은 알레테이아를 '진리'라는 용어로 사용해왔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존재'는 '비은폐성'으로 '알레테이아'이고, 이는 '진리'다. 이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의 관념론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칸트는 세계를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실제 세계로서의 물자체의 세계와 나의 내면 세계로서의 현상 세계로 나누었다. 인간은 현상 세계에 살며 물자체에는 닿을 수 없다. 현상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나의 의식이다. 현상 세계는 나의 의식의 공간, 의식의 장에서 드러난다. 하이데거는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눈앞의 존재자들, 의자, 책상, 컵 등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바로 나의 의식의 장에서 드러난다. 의식의 열린 장에서 존재자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자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열려있는 의식의 장을 하이데거의 용어로 '존재', '비은폐성', '알레테이아', '진리' 로 부를 수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존재자에 대한 탐구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 존재자나 탐구할 수 없다. 의지한테 아무리 존재가 뭐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테니까 존재자는 지구에서 인간이 유일하다. 존재에 대한 물음은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어휘가 너무도 오랜 기간 사용되면서 철학적, 이념적으로 오염되어 오해의 소지가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존재가 무엇인지 물을 수 있는 존재자를 인간이라는 용어 대신 '현존재'라고 불렀다. 현존재는 현재 존재하고 있어서 존재의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의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존재자는 현재 존재한다는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이데거는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현존재의 시간성을 탐구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시간이 존재의 나타남 그 자체임을 밝혔다. 그래서 그의 저서 제목이 '존재와 시간'이다.
단순화 하면 하이데거의 사고 흐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구 철학의 역사는 존재자에게만 관심이 있지, 존재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존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데, 존재에 대해 묻기 위해서 물을 수 있는 현존재를 탐구해야만 한다. 셋째, 현존재를 탐구하면 존재는 시간성 위에서 밝혀진다. 넷째, 시간에서 나타나는 존재 자체는 비은폐성으로 알레테이아이며, 즉 진리를 말한다. 하이데거는 무거운 주제인 존재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주의깊게 언어를 정교화 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탐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실존주의 철학자로 분류되기 쉽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자진이 그렇게 분류하는 것에 반대했다. 실제로는 존재 그 자체를 밝히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는 존재론의 철학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 안에서는 근원적 진리로서의 존재를 탐구한 그의 철학을 절대주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상대주의) : 하이데거가 존재에 대해 탐구했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탐구했다. 그는 철학에서의 모든 문제가 언어 사용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가 언어를 탐구했다는 것은 철학 전체와 세계 전체를 탐구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20세기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다. 그의 철학은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로 나눈다. 보통 전자를 전기 철학, 후자를 후기 철학이라고 한다. 이는 전기와 후기가 너무나도 대조적이라 그렇다. 각각의 철학은 후대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전기 철학을 대표하는 저서는 '논리-철학 논고' 로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두 가지를 구분했다. 하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서양철학의 대부분의 문제가 단지 철학자들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함으로써 일으킨 언어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언어를 형식적, 논리적으로 정밀화하는 것에 있었다. 전기철학을 대표하는 개념인 그림이론에 의하면 언어는 그림과 동일하다. 이름은 대상과 일치해야하고, 명제는 사실과 일치해야 하며 언어는 세계와 일치하게 된다. 언어는 세계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의 마지막에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 끝맺었다. 세계와 대응하지 않는 언어는 말할 수 없고 보여줄 수 만 있다. 이러한 견해는 영국의 경험론과 이어지는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경험론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만 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고,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같은 맥락에서 경험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그런 까닭에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비트겐슈타인은 자신들의 이론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거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와 달리 비트겐슈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철학적 대상이 되지 않았을 뿐,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들은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름다움, 신성함, 도덕성, 이런 것들은 말할 수 없고, 단지 보여줄 수만 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당황했다. 언어를 바로잡음으로써 철학의 모든 문제를 끝냈다고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은 학계를 떠나서 방랑자나 순례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중년이 되어 자신의 철학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고, 다 끝내지 못한 철학 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학계로 돌아왔다.
그의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저서는 유고작이 된 "철학적 탐구" 이다. 그가 스스로 잘못이라고 깨달은 점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다루는 언어가 인위적인 특수한 언어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방대한 언어는 세계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일상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명제의 내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용 맥락이었고, 일상 언어에서의 단어는 형식적으로 완벽하게 규정되기 어려웠다. 그는 스스로 '논리-철학 논고'를 철회했다.
철학적 탐구를 대표하는 개념은 '가족유사성'이다. 이 개념은 단어가 하나의 대상과 정확히 대응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초기 이론인 그림이론이 전제했던 세계와 언어의 대응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다. 쉽게 말해서 말의 기본 단위인 단어조차도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는 정의되지 않는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역사상의 모든 학문, 종교, 철학, 사상이 존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 안정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처럼 단어조차 규정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학문과 종교와 철학은 허약한 모래 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가 가족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공통분모 때문이 아니라, 다만 개체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게임이 있다. 축구 게임, 매스 게임, 체스 게임, 인터넷 게임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게임이 동일하게 공유하는 본질로서의 공통점은 없다. 다만 개별적인 게임끼리 마치 가족들처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어는 공통분모로서의 본질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유사성임을 밝힘으로써 단어가 규정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신뢰하고 있던 언어의 본질이 허구임을 보여줌으로써 언어의 벽돌로 쌓은 서양 철학의 본질주의는 무너졌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은 경험론과 이어지며 상대주의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후기 철학은 서구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회의주의적인 측면을 보인다.
실존주의(회의주의) : 이 사상은 가치관과 이념의 혼란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근대이성주의가 붕괴한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체제 경쟁을 앞세운 냉전을 겪으며 사람들은 파편화되고 불안해졌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등장했다. 원래 실존주의는 19세기에 키르케고르와 야스퍼스 등에 의해 앞서 제시되었던 사상적 조류였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은 20세기 프랑스에서 활약한 사르트르였다. 그는 실존주의를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눠, 키르케고르를 전자에 배치하고 자신을 후자에 배치했다.
실존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존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나는 본질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의자, 돼지, 인간의 새 존재자를 구분해보자.
우선 의자는 본질로서 존재한다. 의자의 본질은 앉는 것으로 이것은 개별적인 의자보다 중요하다. 만약 의자가 부러져서 앉는 것이라는 본질을 상실하면 나는 그 의자를 폐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자에는 본질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한다. 돼지의 경우도 본질로 존재한다. 돼지의 본질은 먹는 것으로 만약 병에 걸려 못먹게 되었다면 그 돼지는 본질을 잃어버렸으므로 우리는 살처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존재도 생각해보자.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서구 역사에서 오랜 시간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본질을 상실하면 인간을 파기할 만한 본질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은 장애가 있거나 지능이 낮아도 가치가 있고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인간으로서 가치가 있다. 즉, 인간은 의자나 돼지처럼 단일한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 실존이다. 인간은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문제는 규정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을 억압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집단들이 있다. 국가, 사회, 가족, 관습, 도덕, 종교, 철학, 과학은 우리를 본질로 규정하려고 한다. 우리는 국민으로, 아들과 딸로, 피조물로, 이성적 존재로, 회사원으로, 학생으로 규정되어 왔고, 스스로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의 본질이 아니며, 나는 본질을 가질 수 없는 존재도 아니다. 나에게 뒤집어씌워진 본질을 하나씩 벗어내고 어떠한 규정과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면 나에게는 단지 세 가지만 남게 된다. 그것은 '내가', '지금', '여기', 에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규정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실존하는 존재다.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다." 라고 말했다. 기존의 권위와 체제에 저항하는 실존주의 사상은 1968년 유럽의 68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고, 탈근대적이고 탈이념적인 포스트모던의 도래를 가능케 했다.
* 최종 정리
진리는 3가지 상반된 태도가 있었다. 절대주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입장이고, 상대주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단일한 진리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진리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회의주의도 있었다. 진리에 대한 이 세 가지 태도는 모든 학문의 기본적인 틀이다.
절대주의의 전통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중세의 교부철학과 실재론을 거쳐 근대 합리론으로 이어졌다. 반면 상대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해 중세의 스콜라 철학과 유명론을 거쳐 근대 경험론에 와서 닿았다.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한 인물은 칸트이고, 이후에 헤겔과 마르크스가 이를 이어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하이데거가 존재를,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탐구하며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담론을 이어갔다. 회의주의는 철학사에서 대체로 환영받지 못했지만, 소프스트에서 쇼펜하우어, 니체, 실존주의로 이어지며 결국 현의 포스트모던이 등장하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성이나, 신, 국가나 전체보다 개인의 개체성과 주관성에 집중한 회의주의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념과 사상이 등장하고, 공존할 수 있는 열린 장을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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