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 2. 경제 / 3. 정치 / 4.사회 / 5. 윤리 : 채사장님 글에 첨언하거나, 요약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입해서 정독 바랍니다.
3. 정치
1) 보수와 진보 그리고 민주주의 : 경제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정치는 사실 매일같이 이슈가 발생하는 시사적이고 복잡한 분야이다. 단순하게 우리 사회에 어떤 경제체제를 적용하느냐가 정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택지는 두 가지로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입장(작은정부)으로 이를 정치적 보수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입장(큰정부)으로 이를 정치적 진보라고 부른다. 이렇듯 정치 이념 구분은 경제체제로부터 도출된다.
2) 보수와 진보의 이론적 구분 :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흔히 이런 질문을 하고 왜 보수냐고 물어보면 자신이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라고 말한다. 반면 진보라고 대답한 사람은 본인이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진보라고 말한다. 크게 잘못된 대답은 아니지만 너무 막연하고 주관적이다. 보수/진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며 같은 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
세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타인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한다. 사회에서 벌어진 같은 사건도 보수 매체냐 진보 매체냐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보도되기도 한다. 세계가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있다고 본다. 왜냐면 사회가 안정적인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니 사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의 일탈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세계가 문제가 많고 불안정하다고 보는 사람은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사회가 이미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정상적인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부조리한 상황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하지만, 틀린 시각이란 없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타인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더라도 매우 소모적이다.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가 그나마 최선의 체제이므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현재 사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보수 혹은 우파라고 한다. 보수란 안정 지향적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말한느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새로운 것과 변화를 추구하려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면 보수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처럼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국식 자본주의를 최대한 이용하고 활용한 측면에서 보면 그는 보수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진보 혹은 좌파라고 한다. 이들은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입장을 비판하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는 입장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있다.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도 포함된다. 아예 산업화나 국가 자체를 비판하는 환경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도 신자유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진보에 포함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보수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며, 세금을 축소함으로써 복지를 축소하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보수적 견해는 자본가, 기업, 기득권이 지지한다. 반면, 진보는 후기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며, 세금을 높임으로써 복지를 확대하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적 견해는 노동자, 농민, 서민 등이 지지한다. 어떤 정치적 견해가 옳은가에 대한 답변은 무의미하다.
보수는 신자유주의와 동일한 장단점을 갖는다. 보수가 집권한다는 것은 세금과 복지가 줄어들 것임을 의미한다. 세금이 줄면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기술, 산업투자가 활성화 된다. 이는 기업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일자리 창출되며 결국 우리 사회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반면 세금이 줄어들면 정부 재정이 부족해지므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재정은 시행할 수 없고 심화되는 빈부격차를 막을 수 없다. 문제는 복지 축소와 빈부격차 심화가 소외계층의 불만을 일으켜서 결국에는 사회 갈등을 낳는다는데 있다. 이것이 보수의 단점이다.
진보는 후기 자본주의와 동일한 장단점을 갖는다. 진보가 집권한다는 것은 세금과 복지가 늘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복지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된다. 또 빈부격차가 완화되어 사회 갈등이 적제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줄어든다. 이것이 진보의 장점이다. 반면 세금이 높아지기 때문에 직접적인 부담을 지는 자본가와 기업이 노동과 투자 의욕을 상실할 수 있다. 이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낮출 것이고, 시장의 활기를 떨어뜨릴 것이다. 이것이 진보의 단점이다.
상기 도표를 보고 본인이 어디에 속하는지 확인해보자, 1번과 2번은 합리적이다. 3번을 선택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높은 교육 환경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보수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함을 알고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를 선택했다는 것은 경제적 측면이 아닌 윤리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4번의 판단이 좀 이상한데, 이 판단은 단적으로 좀 어리석다. 4번을 선택한 사람은 생산수단이 없고, 자본가에 비해 가난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진보 대신,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를 선택했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경제적 판단도 아니고, 윤리적 판단도 아니다. 가난한 이들이 자본가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보수를 선택했다는 것은 윤리적 판단으로 보이지 않는다. 4번을 선택한 이는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누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주는지 판단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실정치는 상기 도표보다 많이 복잡하다. 정치적 입장을 고려함에 있어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경제 뿐만 아니라, 외교, 안보, 교유, 지방 정책, 정치인의 도덕성 등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정치의 본질이 경제체제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며, 구체적으로는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문제임을 이해하고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서 정치적 입장을 선택하는 사람과 무엇이 정치의 본질인지 알지도 못한 채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3) 보수와 진보의 현실적 구분 : 현실에서 보수와 진보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현실적인 정치 성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보자. 경제체제와 연계해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면 하기와 같다. 공산주의는 100% 세금인 대신 모든 것이 복지고 무상이다.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한국, 일본, 미국의 경우는 25% 내외 세율을 유지한다. 수정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에는 대략 40% 세율을 유지한다. 사회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스웨덴, 덴마크의 경우 50~60%의 높은 세율을 유지한다.
이어 한국 정당을 구분해보자. 개별 정당의 정치성향은 경제체제에 대한 입장과 직결된다. 보수 정당이 집권하면 모든 정책이 세금 인하에 초점이 맞춰지고 이에 따라 복지 역시 축소된다. 정부의 개입이 지양하므로 시장의 자유가 보장되고 규제도 완화된다. 이것은 기업과 자본가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된다. 진보 정당이 집권하면 모든 정책은 복지 증진에 초점이 맞춰진다. 세금은 대폭 인상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규제를 강화한다. 이런 정부 주도 계획 경제와 복지 정책은 노동자, 서민, 최소수혜자의 삶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일 것이다. 반면 자본가와 기업에게는 세금 부담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기업은 기술 투자를 망설이거나 사업 투자를 망설일 것이다. 해외 자본 투자는 감소하고 국내 자본은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다.이에 따라 국가 전체의 이익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적 관점에서 일반적인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은 아래와 같다. 일반적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보수적 입장을 갖고, 사회당과 공산당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여 진보적 입장을 견지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던 그 모든 정책은 사회당, 노동당이 집권하는 유럽 사회처럼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룬 나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의 색에 대해서 잠시 논의하자면, 세계적으로 자유주의는 파란색을, 사회주의는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해왔다. 그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에 있는데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가 파랑, 흰색, 빨강으로 나뉘어 있는 것과 연결된다. 이 삼색기는 절대왕정에 저항한 시민혁명의 정신을 표상하고 있다. 파랑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강은 우애를 표현하고 있다. 우애는 형제애와 연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상징색을 정확히 지켜지는 지역은 유럽이다. 영국의회는 보수당이 파란색을, 진보당이 빨간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사용한다. 반면, 한국, 미국, 일본 등의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상징색이 전통적인 맥락과는 무관하게 사용된다.
언론과 방송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해보자. 미디어가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늘날은 미디어가 객관적인 사실 전달을 넘어선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객관적인 언론과 방송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디어가 객관적 보도를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할 능력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객관적인 사실에 의도적을 개입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저널리즘의 특성상 정보의 접근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잘못 해석해서 오보를 내는 경우를 말한다. 의도적인 오보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우려하는 점은 후자에 있다. 미디어가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주관적으로 편향될 수 밖에 없는 것은 단적으로 수익 구조 때문이다. 언론과 방송사는 오직 광고 수익을 통해서 유지된다. 사업 유지를 위한 모든 수익이 기업으로부터 나오니, 언론과 방송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미디어의 수익 구조의 특성은 한국 사회에서 보수 정당이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을 제공한다. 언론과 방송이 진보 성향을 띠려면 우선 수익 구조가 재벌 그룹에 의한 광고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대형 미디어가 광고 수익없이 유지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 대신 운영 규모가 작은 소규모의 미디어는 진보 성향을 유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 언론들이다.
대형 미디어의 보수화와 재벌기업 눈치보기는 일면 정의롭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언론과 방송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의 광고로 부터 미디어가 대중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막대한 자본력을 토대로 복잡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엄선하고, 소자본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대중문화의 질적 향상에 미디어와 기업 간의 공생 구조가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경제주체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구분해보자. 일반적으로 경제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를 말한다. 이러한 구분만으로는 다양항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더 세분화 해서 봐야 한다. 기업을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 중소기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생산수단을 보유한 자본가라는 입장에서 궁극적으로 세금 감소와 규제 완화를 바라는 편이다. 이들은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은 추구하는 방향성이나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과 수단에 대해 서로 이견을 보인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복지 증진과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원하는 노동자 집단이다. 이들은 정부에 대한 강력한 시장 개입을 추구하는 진보적 입장을 추구한다.
여러 사회집단의 정치 성향도 분류해보자. 우선 군은 극우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타당하다. 군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러한 태도는 전 세계 군의 공통적인 모습이고, 이런 의미에서 전 세계의 군은 모두 보수성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군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는다면 그것은 쿠데타로 이어지고 그 사회의 체제는 쉽게 전복된다. 사회의 안정을 위한 군의 보수화는 필요하다.
종교도 보수의 위치에 있다. 군과 보수에 위치한 이유가 유사한데 종교는 기본적으로 그 사회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체제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종교 교리는 없다. 그리고, 한국교총과 전교조는 약우파, 약좌파 정도로 구분된다.
학생운동은 오늘날에 와서 그 영향력이 미미해진 반면 추구하는 이념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졌다. 전통적으로 학생운동 단체로 구분하면 NL과 PD로 구분된다. NL은 National Liberation의 약자로 번역하면 민족 해방 정도가 되겠다. 이들은 반미와 통일을 추구한다. PD는 People's Democratic의 약자로 민중 민주 정도로 해석된다. 이들은 자본주의 반대, 노동 해방을 지향한다. 이 둘의 근본적 뿌리는 마르크스에 가서 닿는다. 어쨋거나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착취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 둘은 입장 차이가 있는데 NL은 북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을 방해하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PD는 그것보다는 노동자의 권리나 인권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에게는 비슷해 보이고 둘 다 진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만 당사자들은 세부적 논의들을 두고 대립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아래 도표와 같다. 결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 이 대립하는 두 집단 중에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할지를 선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둘로 구분된다. 세계는 이분화된 세계이다. 보수는 언제나 보수끼리 협력하고 진보는 언제나 진보끼리 협력한다. 이들은 항상 동일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며, 그런 까닭에 거의 모든 사회 문제는 이들의 대립 관계를 전제하고 파악해야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4) FTA, 무상급식, 민영화 : 보수와 진보를 실제 현실에 적용해보자, FTA는 자유무역협정으로 국가 간에 무역 거래를 할 때 관세를 낮추거나 폐지하는 제도를 말한다. FTA는 관세, 즉 세금에 대한 논쟁이며 궁극적으로 세금을 낮추려는 제도다. 세금이 낮아지면 필연적으로 복지가 낮아진다. 세금이 낮아지면 자본가와 기업에 이익이 되고, 복지가 낮아지면 노동자와 서민에 불이익이 된다. 따라서 FTA는 보수는 찬성하고 진보는 반대하게 된다. 보수 정당은 이를 찬성하고 추진하려 할 것이다. 보수 언론은 FTA의 장점만을 부각하려 노력할 것이다. 반대로 진보 정당은 FTA에 반대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진보 언론은 소규모 기업이나 소상공인의 경우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외국계 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것임을 강조하고 직접적인 피해 대상인 농민들의 열악한 상황과 그들의 피해를 중심으로 보고할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계와 학생운동 단체의 거센 반대가 진행될 것이다.
무상급식이란 국가 재원으로 학생들에게 무상을 급식을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무상급식은 복지에 대한 문제다. 국가의 재정부담이 생긴다. 재정부담은 세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세금 인상은 기업과 자본가의 손해와 부담을 증가시킨다. 결과적으로 보수는 반대하고 진보는 찬성하는 문제가 된다.
민영화는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했던 생산수단을 민간 부문에 매각하거나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 통신, 의료, 철도, 도로, 전기, 수도, 공항, 항만 등의 분야가 논의의 대상이 된다.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자유를 늘리는 정책이라 하겠다. 자유를 늘리는 정책으로 정부의 개입이 줄고 세금과 규제가 축소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세수가 줄어듬으로 복지도 축소된다. 세금 축소는 자본가와 기업들의 이익이 되고, 복지 축소는 노동자와 서민의 손해가 된다. 결국 보수는 민영화에 찬성하고, 진보는 반대한다.
5) 보수/진보에 대한 축구 경기의 비유 : 보수와 진보의 한 판, 당신은 누구를 응원하겠는가, 광활한 축구 경기장에서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보수팀과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진보팀이 축구를 한다. 보수팀의 선수들은 열한명 인데 공격수는 다국적 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이렇게 셋으로 모두 거인이다. 수비수들은 보수 미디어들이다. 골키퍼는 보수 정당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막강한 체력을 지녔다. 반면 진보팀은 안쓰럽다. 공격수와 수비수 모두 하나같이 말도 안되게 왜소하고 굼뜨다. 진보팀의 공격수는 대부분 노동자다. 인원도 많고 가끔 잘 뭉쳐서 보수팀의 공을 빼앗기도 하지만 서로 의심이 많고 공을 패스하지 않아 불신과 혼란으로 우왕좌왕 할 때가 많다. 수비수는 진보 미디어들로 목소리가 작고 검소하게 생겼다. 진보쪽 골키퍼는 진보 정당으로 덩치는 작은데 능력이 좋아 많이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기분열적인 특성이 있어서 혼자 말하고 혼자 답하고 혼자 심각해하는 동안 골을 못 막을 때가 많았다.
경기가 시작되면 가관이다. 거대하고 발빠른 보수의 꽃미남 거인 공격수들이 드리블하며 믿기지 않는 속도로 진격하는 동안, 거인의 발에 진보 선수들이 밟혀 죽는다. 혼돈과 비명 속에서 아비규환이 펼쳐지는데, 진보의 수비수들이 반칙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관중에게 있다. 진보 관중이건 보수 관중이건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기 앉은 좌석을 지키려고 경계하고 옆사람을 의심할 뿐이다. 어떤이는 수시로 자기 자리를 닦느라 여념이 없고 어떤이는 자기 자리가 특별하고 좋은 자리라고 자랑을 한다. 어떤 관중은 경기장에서 왜 소리지느냐면 응원하는 사람들을 무례하다고 나무란다.
보수팀 거인 공격수가 골문 앞에서 슛을 할 모양이다. 그러나 진보팀은 아직도 아비규환이다. 진보팀 수비수는 지쳤다.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건 골키퍼인데 뭔가 혼자 심각하다. 골대 가운데 서서 무언인가 계속 중얼거리며 왼손으로 오른쪽 뺨을 때리고 반대로 해보기도 한다. 보수팀 공격수가 결국 슛을 하고 골은 심심하게도 골문 안으로 멋지게 꽂힌다. 보수 수비수들은 공격수의 멋진 세레모니를 빛내기 위해 경기장을 잘 꾸며놓았다. 수비수들은 박수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응원석이 무관심하면 직접 응원석으로 올라가 환호를 하기도 한다. 진보진영은 골 먹은 후가 더 흥미롭다. 그동안 무관심하던 관중은 분노하기 시작하면서 경기장에다 물병을 던지고 선수들을 욕한다. 경기장 내 선수들 간에도 서로 싸우고 헐뜯기 바쁘다. 최종 책임을 골키퍼가 지기로 했는데, 혼자 말하고 싸우고 심각했던 자아분열적인 골키퍼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정중한 태도로 돌변해서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사과를 한다. 그러곤 이름을 한번 바꿔보겠다고 한다. 관중도 그게 정말 책임을 진건지 알도리가 없지만 다른 방도가 없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또 자기 자리에 관심을 쏟는 일에 집중한다. 우리나라 정치를 축구로 알아보았다. 이제는 관중들에게 관심을 가질 차례다.
6) 민주주의 : 민주주의는 어떻게 독재를 탄생시키는가, 이제부터 보수와 진보를 결정하는 방법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우선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민중이 주인인 정치체제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독재와 엘리트 주의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북한을 떠올렸겠지만, 북한 역시 민주주의다. 정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스스로 추구하는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모든 시민이 직접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전문가 집단이 시민의 의견을 대리해서 결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시민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의사를 작접적으로 확인하므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종합할 수 있다는 매력을 갖는다. 다만, 대의제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개별 사안이 반영될 수는 없다. 그리고 국가 정책 의사 결정을 국회의원끼리 알아서 한다. 다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개인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가 보수/진보로 이분화 된 세상이기 때문에 거칠게 묶는다면 본질적으로는 선명히 구분되는 두 가지 대립 관계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하기 위해 개별 정치인의 삶을 알아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 대신 현시점에서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당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선택하는 것과 그런 선택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구분하는 것이 자신과 사회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된다.
이렇게 선출된 정치인이 정의로우며 덕이 있는 사람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신념 자체가 문제있다면 혹은 이들이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저 보통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커진다. 그렇다면 소수의 달변가들은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자신이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민주주의 첫 번째 문제점이 발생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독재란 것이다.
그리고, 부자가 되는 세상, 성장하는 경제, 세금 인하를 약속하는 대리인만이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다. 경제 성장과 부를 추종하는 다수에 의해 경쟁에서 소외된 소수의 다른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민주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이 발생한다. 다수의 독재가 그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만을 고려할 때 거의 필연으로 보인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측면과 동시에 내용적 측면이 보강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형식적 다수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내용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과 공정한 절차가 보장되고, 각 구성원이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관용의 태도가 전제되어야만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7) 독재, 엘리트주의 : 독재와 엘리트주의는 나쁜 것인가,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다시 정리해보자. 장점은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는 것이고, 단점은 민주주의 정신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독재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의 문제는 하나의 원인으로 발현된다. 의사결정의 주체인 다수가 정치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를 중우 정치라 부르며 경계했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위험성을 강력히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결국 민주제가 중우 정치로 몰락하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 대신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상적인 정치 형태로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를 제시했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귀족제, 과두정치, 독재, 참주제, 전제정치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름이 어찌 되었건간 소수에 의해서 정치적 결정이 이뤄진다는 점이 동일하다.
엘리트 주의는 두 가지 전제로 탄생될 수 있다. 첫째, 사회가 권력과 능력을 가진 엘리트와 이를 가지지 못한 일반 대중으로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며,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엘리트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대중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대의제와 엘리트주의는 유사점이 있음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누구로부터 얻는지에 대한 차이다. 민주주의는 구성원 중 엘리트가 존재하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선출되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이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엘리트주의는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통치자의 정당성이 시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엘리트의 정치적 정당성은 엘리트로부터 나온다. 엘리트 주의를 이상적인 정치제도로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정치에서 절대적 진리를 찾고자 했다. 또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민주주의의 어리석은 군중들에 의해 자행된 것임을 상기하며 중우정치, 폭민정치라고 불러 그 한계를 명확히 했다. 플라톤이 제시한 정치체제는 철인정치였다. 이것은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정치 형태다. 여기서 철인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철학자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사회를 농민계급인 생산자, 군인계급인 수호자, 통치자인 철인 왕으로 구분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덕이 있는자에 의한 절대적 통치를 꿈꿨다. 다만, 독재주의, 엘리트 주의는 치명적인 한계를 갖는다. 그것은 잘 알다시피 소수에 의한 정치는 최고 권력자를 쉽게 타락하게 만든다는데 있다. 불완전하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채택되고 유지되는 것은 인류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소수의 독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와 한계를 드러냈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8) 독재와 민주주의 비교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체제는 무엇인가,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의 두 측면인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대해 알아보았다. 두 체제를 비교해봤으니 어떤 체제가 더 우리에게 필요한지 알아보자. 플라톤은 뛰어난 통치자에 의한 독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국가 개념이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만약 현대사회에서도 인격과 지혜를 갖춘, 절대 부패하지 않고 사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할 수 있다면 그에게 모든 정치를 맡기면 좋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대 사회에서 이상적인 개인에 의한 독재와 엘리트 정치는 실현될 수 없다. 이상적인 개인에 의한 이상적인 정치는 실현 불가능하다. 이유는 독재자나 민주주의나 어쩔수 없이 특정 집단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고, 이로써 필연적으로 소외되고 희생되는 집단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독재자나 엘리트는 불필요하다. 정치에서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인물이 정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이익 충돌하는 이익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이견을 조율할 절차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재, 엘리트주의가 현실화 되었을 때 사회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첫째, 특정 계급의 이익을 반복적으로 대변함으로써 그것이 자본가이건 노동자이건 이익 분배에서 배제된 다른 집단의 불만을 고조시킨다. 둘째, 엘리트주의는 스스로의 완전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책에 불만을 가진 집단을 필연적으로 억압한다. 셋째, 이런 억압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권력자는 정보를 은혜하거나 왜곡한다. 넷째, 정보의 은폐와 왜곡이 드러나는 것을 숨기기 위해 반대로 국민에게 조작한 정보를 사실인 양 과장해서 교유한다. 마지막 다섯째, 이러한 지속적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편협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 스스로가 사회의 합리적인 선택하는 걸 방해한다. 결국 사회는 병든다.
9)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 경제와 정치는 어떻게 결합되는가, 하나의 정치제체는 하나의 경제체제와 연결된다. 가능한 조합은 하기와 같다. 1번은 자본주의+민주주의를 선택한 사회이다. 이를 자유민주주의라고 한다. 자유는 신자유주의에서의 자유와 같은 의미다. 이러한 체제로 대표적인 나라로는 한국, 일본, 미국이 있다.
2번은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 북한이 있다. 공산주의(사회주의)+독재/엘리트주의를 선택한 사회다. 그냥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노동자가 독재하는 사회가 공산주의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북한은 공산주의라고 부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왜냐면 노동자에 의한 정치 형태도 아닐뿐더러, 90년대 중후반에 선군정치라고 해서 사회의 핵심 계층으로 군을 중시하는 정치체제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군인 중심이 된 북한 사회를 더 이상 공산주의 사회라 지칭하기 힘들다. 국가가 경제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고, 개인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권위적인 모습을 띠고 있으니, 통제경제의 파시즘 체제 정도로 이름 붙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런 체제 공산주의, 독재주의를 추구하는 나르는 소련, 중국, 북한이 있다.
3번은 자본주의를 추구하지만, 정치체제는 독재형태를 띠는 사회이다.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가능한 조합이 아니지만 자유주의적 독재국가라고 불리는 이 체제는 사실 가능하다. 이 체제를 계획 경제 사회라고 부른다. 한국의 60~80년대 군부독재 시가가 바로 이러한 체제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의 정치체제는 군부독재를 시행하면서도 경제 정책은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 체제는 구가가 시장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계획 경제 모습을 띤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했다고 해서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볼 수 없다. 한국 현대사의 군부정권은 시장 확장을 추구한 자분주의적 독재 정권이었다.
4번은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회형태이다. 이런 체제는 사회민주주의, 즉 사민주의다. 한국 역사에선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에 매우 낯설다. 사민주의는 공산주의와 이념적 토대는 다르다.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에 의한 독재만 인정한다. 부르주아의 정치 참여는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한다. 실제로 사민주의 사회에서는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공존한다. 따라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본주의 색채가 강할 수도 있고, 공산주의 색채가 강할 때도 있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세금이다. 세금을 높이거나 낮춤으로써 복지의 수준을 조율하며 사회를 균형있게 유지해 나간다.
사민주의 체제가 전제하는 것은 시민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다. 쉽게 말해서 시민이 국가의 현재 상황을 고려해서 성장과 분재, 시장 자유와 정부 개입, 세금 축소와 복지 확대 중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가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시민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체제가 선택되는 이상적인 사민주의는 현재 유럽의 많은 국가가 채택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의 부유한 국가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성숙한 사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 국가로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이 있다.
물론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민주의 체제에도 문제점은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두 가지 이다. 첫째는 국가 채무의 증가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사민주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복지 지출이 크고 세금 부담이 높을 것이다. 이것은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노동과 투자 의욕을 감소시켜 전반적인 경기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의 경우엔 실제로 그렇지 않다. 복지 지출이 많아도 더 부유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이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두 번째 근거가 된다. 사민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은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이 보여주는 평균적인 부유함은 사민주의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들의 후손들인 국가이기 때문에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사민주의 국가들의 경제력의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한국의 복지 현황을 유럽과 단순 비교해서 한국에도 사민주의 같은 과감한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장하지 않을 수 있다.
10) 민주주의 형식적 급진성과 현실적 보수정 : 우리는 왜 보수화되어가는가, 민주주의는 가능성의 체제로 고정된 사회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말은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지 항상 열려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모습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 총선에서 진보 정당이 집권한다면 사회 모습은 급격하게 바뀔 것이다. 부유층과 기업의 세금이 인상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복지가 확대될 것이다. 의료혜택이 강화되고 무상 교육이 확대될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투기 규제가 강화되고 종합부동산세가 높아져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거나 낮아질 것이다.(실제로는 많이 올랐다.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므로 논외로 넘어간다) 또한 최저임금이 상승될 것이고 대학 등록금은 낮아질 것이다. 이런 복지 정책은 사회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 가능성을 가졌음에도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은 실제로 급격히 변화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익 추구에 대한 견해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까닭에 민주주의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듯 쉽게 변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여있다.
현실의 한국사회는 오랜 기간 재벌과 기업에 유리한 신자유주의 모습을 하고 있고, 보수 정당이 막강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역사적 이유에 있다. 우리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와 적대 관계를 경험했던 나라이다. 이 트라우마는 우리로 하여금 최대한 우측으로 도망치게 했다. 둘째는 교육의 문제에 있다. 한 사람의 교육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정규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미더어를 통한 교육이다. 문제는 학교 교육이나 미디어 교육이 동일하게 보수적 측면을 띤다는 것이다. 정규 교육에서 교육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기득권이다. 또한 미디어를 통한 교유은 대형 언론과 방송이 수익 구조의 한계상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보수성을 강하게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세번째는 대중의 비합리성이 원인이 된다. 대중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이 무엇이고 어떤 정치-경제체제가 자신의 이익을 보장하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문제점이었던 중우정치가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 최종 정리
정치는 한마디로 어떤 경제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같은 의미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체제의 선택은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보수와 진보로 구분할 수 있었다. 우선 보수는 초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서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세금을 낮추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한으로 낮추길 원한다. 반면 진보는 후기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시장의 자유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강조한다는 측면이다. 정부의 개입은 세금 인상과 규제 강화로 이어지고 복지 지출이 늘어난다. 즉,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그 사회의 방향은 시장의 성장이 된다. 반대로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분대로 방향을 잡는다. 이상적인 측면에서는 엘리트 주의가 사회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부패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왜 보수성을 지녔는지 알아봤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공산주의와 대치할 수 밖에 없는 과거가 있었고, 교육과 미디어의 제작자가 보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우정치로서 대중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적 결정을 못내리는 어리석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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