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권으로 현실 세계를 통달하는 지식 여행서 : 채사장님 글에 첨언하거나, 요약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입해서 정독 바랍니다.
* 프롤로그 : 탄자니아 세렝게티 평원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하는 사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현대 철학의 거물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철학적 탐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면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해도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다. 바로 공통분모다. 이 책은 현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의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알아본다. 이 책을 마주하고 서로가 가진 공통분모를 넓혀가며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1. 역사 / 2. 경제 / 3. 정치 / 4.사회 / 5. 윤리
1. 역사
1) 직선적 시간관과 원형적 시간관 : 역사는 시간에서 출발한다. 역사는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데 시간이라 무엇인가? 그냥 흘러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시간의 본질을 밝히는 것은 어려운 문제지만 고전적인 두가지 관점을 살펴본다. 첫번째는 하나의 방향으로 전진해간다는 관점이다. 깨어진 물건이 다시 붙지 않는 불가역적인 현상처럼 직선적인 시간관을 말한다. 두번째 관점은 반복되는 하루, 돌아오는 계절, 한살씩 먹어가는 나이와 같이 순환적인 시간관을 말한다. 직선적인 시간관은 서양 문화와 종교의 밑바탕이 되었고, 순환 혹은 원형적인 시간관은 동양 문화와 종교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시간관의 차이는 역사 관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직선적인 시간관은 진보적 역사관을 낳는다.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고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임을 낙관한다. 이는 서구 사상의 근간을 형성한다. 원형적 시간관은 역사가 큰 틀에서 반복된다는 관점으로 순환적 역사관을 가진다. 역사는 발전과 진보와 퇴보를 반복한다. 이 책에선 진보적 역사관을 사용해서 알아볼 차례다.
2) 생산수단 그리고 자본주의 특성 :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핵심 개념 두 가지, 공산주의 혁명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 5단계설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붕괴되면 공산주의 사회가 올 것으로 예언했다. 그러나 현재 공산주의는 완벽하지도 않고 행복해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미국 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우선 원시 공산사회부터 근대 자본주의 사회까지 생산수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알아본다. 만약, 생산수단이 있는 사람과 생산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매력적인가?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은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고 경제력이 있다는 건 권력이 있다는 뜻이다. 생산물은 생산수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물품인데 재화 혹은 서비스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는 물질이면 재화, 눈에 안보이면 서비스이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개념은 자본주의 특성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공급량이 언제나 수요량보다 많다라는 뜻이다. 공금과잉을 말한다. 결국, 역사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두 부분은 생산수단과 자본주의 특성인 공급과잉으로 설명되어진다.
3) 원시 공산 사회 : 어느 날 생산수단이 탄생했다. 원시시대에는 모두가 공동으로 수렵, 채집하며 모두가 공동으로 나눠갖는다. 개인 소유물이란 개념이 없다. 그러나, 농업사회에 이르러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구분이 생긴다. 생산수단은 논밭이며, 생산물은 곡물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논밭은 평등한 개념으로 보고 농업 도구를 생산수단으로 보았다. 생산수단 즉, 농업도구 유무에 따라 생산물 물량 차이가 발생하고 생산물의 차이는 곧 권력 발생을 의미했다. 생산물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에게 물량을 주고 지시할 수 있는 권력이 생긴 것이다. 권력이 발생한 이후 원시 공산 사회는 막을 내리게 된다.
4) 고대 노예제 사회 : 생산수단은 왕과 노예를 만들었다. 생산수단이 발생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생산수단을 가진 이는 대대손손 생산물을 생산해왔고 생산수단이 없는 이들은 생산물을 가진 이들에게 복종했다. 즉, 지배 계급이 생겨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급은 체계화되었다. 지배 계급은 왕과 귀족, 피지배 계급은 평민과 노예로 구성되었다. 원시 시대 말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생산 수단이 변화했는데 이는 토지, 영토였다. 영토가 많으면 모든 가치가 발생하므로 많은 생산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영토를 가진 이는 영토가 없는 이들에게 자릿세를 받거나, 영토를 빌려주고 세를 받는 방법으로 특별히 일을 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즉,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생산수단을 가졌다는 이유로 노동력 착취와 많은 생산물을 가져가는 것은 피고용주 입장에선 불만이었다. 그래서 불만인 피지배층은 전복을 꿈꾸었다. 그러나 지배층은 신을 불러냈다. 신은 요청되었고 진짜 신이 있는지와는 관계없이 피지배층을 복종하도록 움직이는 동력원으로 작동했다. 고대 노예제사회는 종교를 통해 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며 막을 내린다. 토지, 영토라는 생산수단을 지배자가 독점하고, 그 독점의 정당성을 종교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고대 노예제사회는 모든 문명의 시작에서 발견된다.
5) 중세 봉건제 사회 : 계급은 더욱 세분화 되었다. 4세기부터 14세기 무렵까지 천년 정도의 시기인데 사회 계급은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화되었다. 국왕, 성직자, 영주, 귀족, 기사, 농노, 노예로 나뉘었다. 영주가 성의 주인으로서 장원(영주의 사유지)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 영주들은 더 큰 권력을 위해 서로의 영토가 필요했다. 이로 인해 영주들 간의 끊임없는 전쟁이 발발했다. 영주들은 자신의 장원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벽이 두껍고 높아야 적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세 사회를 거친 국가는 성을 소유하고 있었다. 유럽과 중국, 일본은 중세를 거쳤기에 성이 있었으나, 한반도는 영주들에 의해 지방 분권되지 않고 국왕 중심 집권 체제가 유지되었기에 거대한 성이 없다.
국왕은 신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통치 권한을 물려받은 자이다. 그 권한은 성직자가 인정해 주었고, 그 대가로 국왕은 성직자의 재산과 지위를 보장해주었다. 여전히 국왕은 생산수단(영토)라는 물질적 측면과 종교의 인정이라는 정신적 측면에서 모두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가 되면서 견고했던 사회 분위기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첫번째 원인은 상업의 발달로 상인 계급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지배층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두번째 원인은 공장의 탄생이다. 18세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기계를 작동시켰고 이를 분업 시스템과 합작해서 일 효율화를 높히는 공장으로 탄생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공장이 새로운 생산수단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중세 사회시대의 생산수단은 영토였으나 중세 후기로 가면서 공장이 만들어낸 생산물로 막대한 부를 챙긴 부르주아라는 계급이 생겨났다. 부르주아는 왕을 정당화하는 신을 대신해 자신들을 정당화해주는 이성을 성공적으로 세계에 입성시켰다. 구권력은 예전 생산수단인 장원을 가진 왕과 영주였고, 신권력은 새로운 생산수단인 공장을 가진 부르주아였다. 예상대로 두권련을 충돌했고 신권력이 승리했다. 대표 사례로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인데, 평등이라는 생각만 해왔던 개념을 행동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왕의 몰락과 함께 구권력은 무너졌고 중세 봉건제 사회도 막을 내렸다.
6) 근대 자본주의 :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다. 대략 18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200년 정도 기간으로 중세 생산수단이던 장원은 근대에 공장과 자본으로 대체되었다. 이에 지배권력은 왕과 영주에서 부르주아로 옮겨갔다. 사회 계급은 생산수단을 가진 부르주아와 갖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로 나뉘었다. 생산수단을 가진 부르주아는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는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는 형식이지만 부의 축적은 부르주아 몫이었다. 이 문제는 현대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갈등의 본질이 되었다.
역사는 생산수단에 의한 계급 갈등이라는 단순한 구조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7) 근대 자본주의의 전개 : 공급 과잉이 시작되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단적으로 공장의 탄생을 의미한다. 공장은 기계와 분업을 통해 생산물을 빠른 속도로 엄청나게 생산해 냈다. 공장의 특징은 대량 생산이고, 자본주의의 특징은 공급 과잉이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태를 의미한다. 내가 만약 공장 소유주라면 공급과잉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공장을 절반만 돌리거나, 새로운 수요처를 늘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공장을 절반만 돌리느니 새로운 수요처를 찾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수요를 늘리는 방법으로는 시장 개척이 있고 아니면 생산물의 가격을 낮춰서 수요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 시장 개척과 가격인하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가격을 낮추는 것은 생산자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방법이다. 그래서 시장 개척을 위해 식민지 개척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8) 제국주의 시대 : 그들에게는 식민지가 필요했다.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 특성인 공급과잉에 필연적으로 봉착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요를 늘리는 방법이 필요했고 시장 개척과 가격인하라는 방법이 있었으나, 가격인하는 확실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영국은 인도로 갔고, 스페인은 남미로 갔으며, 프랑스는 아프리카로 갔다. 그곳에 식민지를 만들어 자국에서 만든 생산물을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런 시대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독일은 산업화가 늦어지면서 식민지 개척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공급과잉에 봉착한 독일은 수요처가 필요했는데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독일의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러시아 지역에서 민족 문제로 암살되었다. 독일한테는 절호의 기회였고 이 사건을 빌미로 러시아에 선전 포고를 했다.
9) 제1차 세계 대전 : 공급 과잉이 전쟁을 일으켰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다. 표면적 원인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이에 러시아의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참가했다. 이 전쟁은 독일이 공급과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했던 전쟁이다.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개척이 필수였고 전쟁을 통해서 많은 식민지를 빼앗아 오는 방법이 유일했을 것이다.
3국 동맹(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3국 협상(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치열한 전쟁을 치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1919년 6월 28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전국들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전쟁범죄국인 독일과 조약을 맺었다. 독일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했고 10%가 넘는 국토를 연합국에 반납해야 했으며 군대 보유를 엄격하게 제한받게 되었다. 이 전쟁 이후 세계 경제는 빠르게 안정되었고 성장해나갔다. 전쟁중에 막대하게 쌓였던 재고들이 처리되면서 공급과잉 해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 민간인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일부 국가들에게는 막대한 부를 창출해준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유지시켜주는 핵심 요소 두 가지중 하나는 전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행이다.
10) 세계 경제 대공황 : 가격 경쟁은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빠르게 안정화 되었고 부르주아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공장 설비를 확장했고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냈다. 또다시 공급과잉이 시작되었고 가격 경쟁이 심화되며 이는 구조조정을 일으켰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 실업은 구매력이 없는 실직자들로 인해 소비 위축이 되었다. 문닫는 공장과 기업이 속출했다. 이 문제가 폭발한 사건이 있었다. 뉴욕 증시가 대폭락하면서 세계 경제 전체를 무너뜨린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다.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해 각국은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미국은 뉴딜 정책을 시행하여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자유 시장의 공급과잉 문제점을 해소하려고 했다. 러시아는 미국과는 달리 공급과잉이라는 문제점을 내포한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따르면 공황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러시아가 공산주의로 돌아선 것은 1917년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대공황 때문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대공황이 오기 전에 자본주의를 폐기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배상금으로 힘든 마당에 대공황까지 겹쳐 파산에 직면했다. 국민의 고통과 불만은 극에 달했고 이를 구원해줄 영웅이 나타났는데 바로 히틀러다. 히틀러는 독일 영토가 저열한 유대인으로 오염되었다고 말하며 순결하게 하기 위해 청소가 필요하다 하였다. 그리고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하며 배상금을 물지 않겠다고 민중을 선동했다. 독일은 이렇게 군국화의 길을 선택했다.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배상금을 물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국가간 무역에서 우의를 점할 수 있다. 혹시 패배하더라도 수요 창출로 인해서 막대한 양의 공급과잉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일은 자본주의를 유지하기로 했다.
11) 제2차 세계 대전 : 공급 과잉으로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났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치러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추축국이 되어 전쟁을 일으켰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중국, 호주등 여러나라가 연합국을 형성했다. 갑자기 등장한 일본은 왜 전쟁이 필요하게 되었는가? 일본 역시 산업화가 자본주의를 낳았고 자본주의는 공급 과잉의 문제를 야기했다. 당연히 수요 창출할 곳이 필요했다. 이에 일본은 연합국에 대항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독일과 일본이 추축국으로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1945년 5월에 독일이 항복했고, 같은 해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다.
12) 냉전 시대 : 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대립하는가?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새롭게 재편되었다. 유럽은 황폐화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부각되었다.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이질적인 체제로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체제를 중심으로 세계는 팀을 나누어 재편되었다. 자본주의 지지 국가로 미국, 서유럽, 일본, 남한이 있고 공산주의 지지 국가로 소련, 동유럽, 중국, 북한이 있다. 두 세계는 체제와 군비 경쟁으로 아슬아슬한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 하나의 세계에서 이 두 체제는 공존할 수 없었다. 체제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대결 국면은 소련의 경기침체와 체제 비효율성이 드러나며 급격한 전환을 맞이했다. 소련 연방들은 더이상 소련의 리더십을 신뢰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소련은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선회했고 결국 1991년 12월 26일 러시아와 신생 공화국으로 해체 되었다. 냉전은 종식되었고 자본주의 독주의 시대가 열렸다.
13) 신자유주의의 탄생 : 새롭고 독특한 경제체제의 세계, 냉전의 종식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했다. 1991년 이후 30여년간 세계는 빠르게 자본주의화 되었다. 하지만 냉전 이후 자본주의는 이전 자본주의와 성격이 달라졌다. 냉전 이전의 자본주의는 대공황 이후 정부의 시장개입을 강조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였다. 공급 과잉을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 해소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반면 냉전 이후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 최종 정리
역사의 흐름은 원시부터 근대까지 이르는 기간동안 생산수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변화했다. 생산수단은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생산수단과 생산물을 소유한 자는 부를 가진 자이며 이는 곧 권력을 의미했다. 원시시대에는 생산수단이 없었으므로 물질적으로 평등한 사회였다. 고대 생산 수단은 토지와 영토였고, 중세에는 장원이 생산수단이었으며 소유자는 왕과 영주였다. 근대에는 공장과 자본이 생산수단이었으며 부르주아가 이를 독점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공산주의가 역사 발전의 마지막 단계라고 봤지만, 공산주의는 냉전시대 종말과 함께 몰락했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가 독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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