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 / 2. 경제 / 3. 정치 / 4.사회 / 5. 윤리 : 채사장님 글에 첨언하거나, 요약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구입해서 정독 바랍니다.
4. 사회
1) 개인과 사회 : 역사, 경제, 정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역사는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했는지에 따라 전개되었다.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소유했다. 고대는 왕이 토지를 소유했고, 중세에는 왕과 영주가 장원을 소유했다. 근대가 되어서는 부르주아가 공장과 자본을 소유했다. 그렇게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근대부터 현대까지는 자본주의가 유지되며 발전한 역사였다. 자본주의는 공급과잉이라는 부작용이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후기 자본주의가 생겨났다. 그 뒤로 후기 자본주의로 인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경기침체로 인해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출범하게 되었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실은 역사의 하부구조가 경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결국 경제체제를 선택하는 문제로서 계급 간의 이익 대결로 이어진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은 대립한다. 정치는 사회의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즉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2)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이익이 대립하는 경우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어떤 이들은 개인의 권리가 우선 보호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이를 개인주의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사회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며 개인의 총합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사회의 이익이 먼저라고 하는 견해는 집단주의라고 한다. 이들은 사회가 허구가 아닌 실체로 보며 사회는 개인의 총합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사회 존속을 위해서는 개인의 권리 침해는 어느정도 정당화 된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이익이 충돌할 때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이 정당할까? 사례로 알아보자.
국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A도시에 역대 유례없는 홍수가 났고 10분면 A도시를 덮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홍수가 덮치면 막대한 재산 및 시설 피해를 피할 수 없다. 산업 활동도 정지될 것이고 안보상 중요 시설들도 마비될 것이다. 그런데 A도시의 홍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댐폭파를 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댐폭파를 하면 B시골에 큰홍수로 인한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 시간적 여유는 없다. 당신이 국가 최고 권력자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A도시를 구한다는 것은 집단주의라고 하고 B시골을 구한다는 것을 개인주의라고 한다.
3) 이기주의와 전체주의 : 전체주의는 개인이 비윤리적 행위에 눈감게 한다. 알아본 바와 같이 개인주의는 개인이 우선이란 관점이고, 집단주의는 국가나 사회가 더 우선이란 관점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주의는 서구에서 지지되어 왔고, 집단주의는 동양에서 지지되어 왔다. 두 관점 자체로는 문제가 없으나 극단화가 되면 부정적인 측면이 생긴다. 개인주의가 극단화 되면 이기주의가 되고, 집단주의가 극단화 되면 전체주의가 된다. 이기주의의 경우 사회 안에서 개인이 이기적인 행동을 할 경우 그 행위를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줌으로써 통제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경우는 정말 문제가 된다. 실제로 인류는 근현대 기간 동안 사회가 전체주의 모습을 띠는 경우에 얼마나 폭력적이고 공포스럽게 행동하는지 충분히 경험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냉전시대의 공산주의 체제는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으며 사회를 폭력의 광기로 몰아넣었다. 이 체제 자체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씌인다. 신자유주의나 공산주의, 엘리트 주의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이지만, 전체주의는만은 언제나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되며 그 자체로 욕이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전체주의를 보면 그 탄생은 자본주의 시기인 경제 대공황부터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인 공급과잉으로 발생한 경제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은 수정 자본주의로, 러시아는 시장을 폐기하고 공산주의로 해결하려 했다. 그외 특별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웠던 국가들은 전체주의적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이탈리아에서도 대공황이 경제 위기를 만들어내자 강력하고 배타적인 국가 중심의 체제를 강조하는 무솔리니가 등장해서 파시스트당을 만들었다. 이 파시스트들의 이념을 파시즘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이탈리아어 파쇼에서 유래한다. 결속, 단결, 묶음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겐 그의 이름은 알지만 이념이나 신념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한 신념과 행동이 부재했던 까닭에 우리 기억에 그 내용이 남아 있지 않다.
반면 전체주의자로서 우린 히틀러를 강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화가 지망생으로 화가가 되기 위해 비엔나로 가서 미술학교에 응시했지만 두 번이나 낙방하고 그는 분노했다. 화가로서 펼쳐보지 못한 미적 재능을 정치에 활용했다.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외모를 강렬한 이미지로 바꾸기 위해 콧수염을 특이하게 깎고,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나치당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라는 갈고리 십자가 모양을 직접 디자인했다. 대공황이 유럽을 강타할 당시 독일은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경기침체로 만성적인 가난에 찌들어있었다. 이때 히틀러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등장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경제를 살리겠다. 둘째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 셋째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전쟁배상금을 물지 않겠다. 그리고 나는 나의 조국만을 받을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히틀러의 인기는 빠르게 치솟았고 그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독일 민족이 하나로 뭉쳐야 함을 주장했다. 국민들은 그의 이념에 녹아들었고 독일 민족 전체 이익과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소수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결과 유대인, 집시, 장애인을 수용소로 보냈고, 60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이렇듯 전체주의는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단 사실 경제 위기가 발생시키는 병리 현상으로 보인다.
개인의 독립된 가치를 잘 알고 있는 현대인은 전체주의를 끔찍한 체제로 느낀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거시적이던, 미시적이던 우리 안에서 매우 쉽게 발현되는 일반적인 태도다. 내가 속한 집단이 위기에 처해 있고 이를 해결해줄 급진적 인물이 등장하면 개인은 이에 쉽게 동조된다. 그 해결 방안이 비윤리적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책임이 따르지 않으므로, 대놓고 지지는 못하지만 내심 이를 반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집단 따돌림의 원리와 유사하다. 전체가 비윤리적 행동을 할 때 내가 거기에 가담할 수 있는 건은 그 비윤리적 행위의 직접적인 책임이 내가 아니라, 전체에게 있기 때문이다. 전체는 나의 이익을 위해 강력하게 행동하지만, 나에게 책임이 없다는 매력적인 체제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개인이 전체의 비윤리적 행위에 눈감게 한다.
4) 자연권 : 전체주의에서 개인을 구하는 법,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극단화 될 경우 발생하는 문제로 이기주의와 전체주의를 살펴보았다. 그 중 전체주의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폭력적인 국가의 등장을 확인했다. 전체주의에서는 어떻게 개인을 보호할 것인가? 국가 전체는 막강하고 개인은 나약하므로 국가가 법과 공권력과 친정부적 미디어를 앞세워 내 권리를 침해할 때, 나는 그것을 막을 방법은 전무하다. 이렇듯 실질적 방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인류가 찾아낸 방법이 자연권이다. 자연권은 천부적 권리, 즉 하늘이 부여해준 권리로서 국가라 하더라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배타덕인 권리이다. 국가를 초월하는 모호한 존재의 권위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나마 자연권은 전체의 폭력에 대해 우리가 내세울 유일하고 근본적인 보호막이라 할 수 있다. 자연권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인권선언에서 비롯되었는데 현대와서는 대부분의 국가의 헌번에 명시되어 있다. 자연권에 대한 해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는데, 절대적 권리로 서너 가지를 제시한다. 생명, 재산, 자유가 대표적이다. 즉, 국가는 어떠한 특수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나의 생명을 침해할 수 없고, 어떤 상황이라도 나의 재산을 침해할 수 없으며, 나의 자유를 절대로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권은 하나의 외침이고 그렇게 하자는 주장이지, 국가가 이에 대해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전체주의와 세금 : 부유층의 세금을 높이는 것은 전체주의적 폭력인가? 가난한 다수가 소수인 부자들에게 누진세를 적용하자 주장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폭력인가? 위에서 배운 전체주의의 부도덕성과 자연권의 침해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윤리의 측면에서 우위를 점했던 진보의 견해는 실제로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담고 있는 위험한 견해가 된다. 그러나, 윤리적 관점에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누진세 적용이 타당하다. 그리고 소수의 부유층은 생산수단과 자본의 독점으로 더더욱 부유해지는 자본시장 구조에서 있기 때문에 누진세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당신은 어느 관점이 옳다고 보는가? 누진세는 합당하다고 보는가?
6) 미디어의 말 : 미디어는 어떻게 거짓을 말하는가? 개인은 언제나 거대한 세계와 만난다. 인간은 너무도 압도적인 세계의 위엄에 본능적으로 세계 그 자체를 받으들이려는 태도를 갖는다. 세계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는, 다시 말해 세계가 안정적이라는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앞서 이런 세계관은 보수적 견해의 전제임을 보았다. 이렇게 긍정적인 태도로 세계를 대하는 와중에 세계가 말을 걸어온다. 친구의 모습으로, 어미니의 모습으로, 선생님의 모습으로, 회사에서는 부장님의 모습으로,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세계 중에 유독 우리가 신뢰하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신문과 뉴스이다. 뉴스와 미디어에 나왔다고 하면 진리 인양 우린 의심없이 믿고 본다.
이처럼 미디어에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미디어라면 다수의 감시와 비판속에서 그나마 가장 진실되고 객관적인 내용을 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디어가 어찌 거짓 보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화용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화용론이란 언어분야 전문용어로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의 주변 상황, 맥락을 생각해 보는 방법을 말한다. 단순화 해보면 언어나 말에 대한 탐구는 크게 의미론과 화용론으로 나눌 수 있다. 의미론은 내가 말한 말 자체의 내용과 의미를 탐구한다. 반면 화용론은 내가 말한 말이 왜 하필 그 시간, 그 공간, 그 주체와 대상 가운데서 말해졌는지에 대한 맥락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화용론을 잘 활용하면 사회 생활을 잘하는 정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적은 노력으로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고, 내가 주도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율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미디어나 정부, 국가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주체가 대중을 상대로 세련되게 화용론을 구사할 때 발생한다. 미디어가 화용론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미디어는 미세한 편집과 보도 순서의 배열을 고려하는 등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방법을 활용해서 직접 말하지 않아도 맥락을 통해서 주관적 사고와 이념을 전달한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어떤 사고와 이념을 대중에게 전달하는가? 그것은 언제나 권력자의 사고와 이념이다. 정치체제의 형태에 따라서 그 권력자가 누구인지만 바뀔 뿐이다. 독재 체제에서는 권력자는 엘리트 정부다.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진짜 권력자는 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은 시장의 자유, 세금 인하, 규제 철폐, 신자유주의를 선호하며 정치적으로는 보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가 생존하기 위한 구조적 한계이다. 이렇게 우리는 미디어의 보수적 화용론에 잠식 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나도 알게 모르게 점점 보수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중에게 있다. 대중은 정직하고 순박해서, 미디어와 사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만이 진짜 사실이라고 믿고 그들이 자신을 속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심없는 대중은 사회와 미디어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그들이 욕하는 대상을 같이 욕하고 칭찬하는 대상을 칭찬하며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는다. 그러므로 미디어의 내용을 맹신하지 말고 의심하며 자신의 신념과 사고로 비판하는 태도를 길러야 한다.
* 최종 정리
우리 사회에는 두 주체로서 개인과 집단이 있고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면 개인주의,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면 집단주의로 알아보았다. 개인주의의 극단화는 이기주의이고, 집단주의의 극단화는 전체주의다. 근현대의 전체주의의 폭거를 경험한 인류는 개인을 구하기 위해 자연권을 찾았다. 이 자연권은 생명, 재산, 자유의 절대적 보호를 근간으로 한다. 그런데 자연권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와 충돌할 가능성을 갖는다. 이는 다수의 노동자가 소수의 자본가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 자본가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의 상황이 발생한다. 노동자가 절대 다수를 점유하고 빈부격차가 심각함에도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의 집권이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우리는 미디어의 구조적인 문제로 기업과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을 확인했다. 미디어의 화용론에 의해서 우리는 보수의 입장을 대변한 정보들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신념과 사고로 비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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