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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엔드 오브 타임 part9 [지속과 무상함 : 숭고함에서 최후의 생각으로]

by Utnapishtim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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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9. 지속과 무상함 : 숭고함에서 최후의 생각으로

모든 문화권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숭고한 개념이 존재한다. 불멸의 영혼, 신성한 이야기, 한계가 없는 신, 불변의 법칙, 속세를 초월한 예술, 수학 정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추상적 영원함은 인간이 항상 동경해 오면서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 였다. 거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삶의 관점이 통째로 달라지는 희귀한 경험을 겪곤 한다.(행복한 만남이나 비극적인 만남, 명상적, 또는 화학적인 유혹, 종교적, 또는 예술적인 경험을 통해 시간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십 년 전 나를 포함한 아홉 명의 청소년들이 버몬트 주의 깊은 숲속에서 생존 훈련을 하였다. 하루 훈련을 마치고 밤이 되어 모두 텐트 안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훈련 교관의 불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기상~!!!! 신속하게 옷 입고 텐트 앞으로 집합" 비몽사몽간에 대충 옷을 입고 나왓더니, 난데없이 야간 행군을 간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한 줄로 서섯 컴컴한 숲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수시로 나타나는 아름드리 관목을 피해 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허리까지 빠지는 진흙 늪은 정말 압권이었다.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물에 빠진 생쥐처럼 홀딱 젖은 채 추위에 덜덜 떨다가 마침내 공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마치 천국에 도착한 것처럼 기뻐 날뛰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교관은 침난 3개를 던져주며 알아서 자라고 했다. 인원은 아홉인데 침낭이 달랑 3개뿐이라... 그러나 우리는 항의를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침낭의 안감을 끄집어 내어 임시변통으로 이불을 만들어 덥고 잠을 청했다. 당연히 아이들 입에서는 불평과 원망 어린 한탄이 쏟아져 나왓다. 훈련을 포기하고 내일 아침에 집에 가겠다는 아이들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떨구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밤하늘에 오로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말이지 난생처음 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밤하늘에 빼곡하게 채운 별을 배경으로 비단 자락 같은 빛줄기가 출렁대던 모습...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힘든 행군과 허리까지 빠지는 늪,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일부가 되어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지구의 한 지점에 서 있던 나는 춤추는 불빛에 에워싸였고, 결국 멀리 있는 별들에게 흡수되었다. 그날 새벽에 잠들 때까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오로라와 별을 쳐다봣는지 아무런 기억도 없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몇 분이건 몇 시간이건, 지속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날 내가 잠시나마 시간을 초월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코 흔한 경험이 아니며, 어쩌다 찾아와도 금방 사라진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시간을 의식하면서 시간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절대적인 것을 공경하면서 일시적인 것에 얽매여 있다. 오래 지속되는 우주의 특징들(팽창하는 공간, 멀리 떨어진 은하들, 물질의 성분 등)도 시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우주의 겉모습이 아무리 안정적으로 보여도 그 안에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속성들이 자리잡고 있다.

진화와 엔트로피, 그리고 미래

과학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의 저변에서 역동적인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냈다. 모든 만물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캐스팅한 진화와 엔트로피라는 두 캐릭터가 서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의 플롯은 간단하다. 진화가 어떤 구조를 애써 만들어 놓으면 엔트로피가 그것을 파괴하는 식이다. 이야기 자체는 깔끔한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앞엑서 보았듯이, 이야기를 단순화 시키면 중요한 진실이 흐릿해지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다. 진화가 만들어 놓은 구조를 엔트로피가 약화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엔트로피와 진화가 반드시 반대로 진행될 필요는 없다. 2~4장에서 언급햇던 엔트로피 2단계 과정에 의해 한 곳에서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엔트로피는 다른 곳에서 무질서도를 높인다. 진화의 최대 걸작품인 생명이 어느 순간부터 이 과정에 끼어들어 고품질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질서 정연한 배열을 유지(또는 강화)하고, 엔트로피가 큰 폐기물을 주변 환경에 배출했다. 이런 식으로 엔트로피와 진화가 수십억 년 동안 공동 작업을 수행한 끝에 합창교향곡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생명체와 그 곡을 듣고 숭고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생명체가 탄생했다. 

빅뱅에서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벗어나 미래로 관점을 돌려보자. 진화와 엔트로피는 미래에도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요소로 남을 것인가? 다윈주의자들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유전적 기질이 번식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의술을 비롯한 생명 보호 시스템이 다양하게 구축되어, 생존에 불리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도 자손을 낳고 잘살 수 있다. 고대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유전자도 현대의 뉴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아 사망률과 번식력이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물론 유저적 차이가 평준화된 현대인은 새로 조정된 진화압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또한 학자들은 다양해진 식생활(유제품을 많이 먹으면 유아기가 지난 후에도 라타아제가 계속 생성된다)과 환경적 요인(고도가 높은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산소가 적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성에 대한 선호도(일부 지역민의 평균 신장은 이성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등 다양한 진화압이 유전자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조작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무작위변이와 성분포 등을 제어할 수 있고, 진화의 방향타가 급회전을 일으켜 의외의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유전자를 재배열하여 인간의 수명을 200년으로 늘려놓았는데, 그 부작용으로 청록색 피부에 키가 3m에 달하면서 번식력이 왕성한 종이 태어난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영화<아바타>의 나비족을 닮은 종족으로 가득 찰 것이다. 유전자의 일부만 조작한다고 해서 다른 부분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다 강화될 수 도 있고, 취약해 질 수 도 있다.)

진화와 달리 엔트로피는 미래에도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요소로 남을 것이다.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제2법칙은 기존의 물리 법칙에 통계적 논리를 적용하여 얻은 일반적인 결과다. 현재 토용ㅇ되는 기본 법칙이 미래에 수정될 수도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엔트로피와 제2법칙은 미래에도 여전히 통용될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통적인 고전역학에서 낯설기 그지없는 양자역학으로 넘어갈 때 일각에서는 엔트로피와 제2법칙도 양자 세계에 걸맞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두 개념은 가장 기본적인 통계 논리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유지되었다. 앞으로 물리 법칙에 대한 이해가 아무리 깊어진다 해도, 엔트로피와 제2법칙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이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물리 법칙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이런 법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및 실험 결과와 정면으로 상충된다.

우리의 후손은 주변 환경을 제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욱 먼 미래에 등장할 지적 생명체는 별과 은하, 그리고 우주 전체를 관리할 수 있을까? 이들은 엔트로피의 흐름을 조절하여 특정 공간의 엔트로피를 줄임으로써,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우주적 규모로 일으킬 수 있을까? 아예 우주 전체를 다시 설계할 수 도 있지 않을까? 황당한 이야기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문제는 그 영향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물리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세계(전통적인 자유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세계)에서도 지능의 행동 범위는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계산법과 기술은 지금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생명 및 지능과 밀접하게 관련된 요소들의 미래상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번 시도해 보자.일단은 미래의 우주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법칙(빅뱅 후부터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작동하는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가정하자. 이는 곧 물리 법칙뿐만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상수들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물리 법칙과 기본 상수가 실험 장비로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변하다가 그 효과가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먼 미래에 나타날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이건 다른 생명체이건, 미래의 지구를 지배하게 될 지적 생명체의 영향권이 우리 은하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것이다. 가정이 너무 많은 감이 있지만, 우리의 길을 안내할 증거가 전무한 상황에서 굳이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은 칠흑 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에 열거한 가정이 당신이 생각하는 미래와 다르다면, 이 장과 다음 장에 전개될 이야기를 물리법칙과 기본 상수가 변하지 않거나, 지적 생명체가 개입되지 않은 미래의 우주상으로 이해하면 된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미래에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져서 부분적으로 수정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과감한 가정을 제시하면서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이것이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곧 알게 되겠지만, 여러 가지 사실을 종합하여 우주의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이룬 성과이며, 소중한 이야기와 신화, 종교, 그리고 예술을 조화롭게 통일하고 싶으 열망의 상징이긷 하다.

시간의 제국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가는게 좋을까? 인간의 직관은 일상적인 시간(간격)을 파악하는 데 별 문제가 없지만, 우주적 시간 규모는 너무나 방대하여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우주의 시간대를 어떻게든 이해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규모로 축소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뉴욕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우주의 달력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건물의 각 층은 특정 연대기에 해당한다. 특이한 것은 임의의 층에 대항하는 기간이 그 아래층에 대항하는 기간보다 10배 길다는 점이다. 1층은 빅뱅으로부터 향후 10년을 나타내고 2층은 100년, 3층은 1000년... 이런 식이다. 숫자에서 알 수 있듯이,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기간이 길어진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자칫 오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12층에서 13층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빅뱅 후 1조 년에서 10조 년을 조망한다는 뜻이다. 이 한 층을 올라감으로써 9조 년이 경과하는 셈인데, 이 기간은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층을 더한 기간보다 길다. 이런 패턴은 꼭대기 층까지 계속된다. 각 층에 해당하는 기간은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층을 더한 기간보다 길고, 그 차이는 위로 올라갈수록 커진다.

인간의 수명은 약 100년이고 강력한 제국의 수명은 대충 1000년쯤 되며, 생존력이 강한 생명체는 지구에서 수백만 년동안 번성해왔다. 빌딩의 옥상에 가까워질수록 각 층에 해당하는 기간은 거의 영겁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1층에서 출발하여 86층에 있는 전망대에 도달했다면, 당신이 바라보는 우주의 시점은 빅뱅후 10^86년이다. 1x10에서 0이 85개 붙어 있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인간의 상상력으론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우주 달력으로 보면 문명의 발생은 극히 짧은 마지막 몇초에 불과하다. 출처 : Wikipedia

그러나 이토록 길게 이어지는 0의 행렬에도 불구하고, 86층 전망대에 대항하는 10^86년은 제일 꼭대기 102층 바닥에 칠해진 페인트의 두께에 해당하는 기간보다도 훨씬 짧다. 빅뱅은 지금으로부터 약 138억 년 전에 일어났으므로, 현재 우리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0층에서 계단 몇 개를 더 올라간 셈이다. 우리의 목적은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므로 계속 위로 올라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고장났으니 딴 생각 말고, 계속 발걸음을 옮겨 보자.

검은 태양

초기 인류는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저-엔트로피 에너지가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내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불타는 눈이 지상의 모든 존재를 굽어 살핀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태양이 서쪽 하늘로 사라진 후 다음 날 다시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가장 분명하고 신뢰할 만한 자연의 패턴을 발견했다. 이 믿음은 오늘 날 까지도 이어지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명언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태양의 일출/일몰의 패턴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 50억 년 간 태양은 중심부의 수소를 원료삼아 핵융합을 일으켰고, 여기서 생성된 막대한 에너지로 자체 붕괴를 스스로 막아왔다. 만일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엄청난 자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오래전에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태양의 중심부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만큼 충분한 온도를 가지고 있고 여기서 생성된 에너지가 주변 입자를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이로 인해 엄청난 중력을 버틸 수 있었다. 태양의 질량과 성분 비율로 미뤄 볼 때, 안으로 내리누르는 중력과 바깥으로 밀어내는 압력 사이의 팽팽한 균형은 앞으로 50억 년 동안 유지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50억 년이 지난 후에도 태양의 외곽에는 다량의 수소가 남아 있지만, 중심부의 수소가 바닥나서 더 이상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없게 된다. 수소 원자핵이 융합하면 핼륨 원자핵이 되는데, 헬륨은 수소보다 무겁기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온도가 높은 중심부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못에 뿌린 모래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면 중심부의 수소가 바닥난 것은 문제정도가 아니라 우주적 대형 사고의 전조이다. 현재 태양 중심부의 온도는 약 1,500만도 씨 정도이다. 그러나 수소 대신 헬륨 원자핵이 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온도가 1억도씨를 넘어야 한다. 앞으로 50억 년이 지나도 태양의 온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텐데 중심부가 수소에서 헬륨으로 물갈이 되었으므로 핵융합을 일으키기에는 온도가 턱없이 낮다. 간단히 말해서, 태양을 불태우던 연료(수소)가 바닥한 것이다.  핵융합이 끝났으니 밖으로 향하던 압력이 약해지고, 이 시점부터 가차없는 중력이 태양을 안으로 짓눌러서 내파되기 시작한다. 그뿐 아니라 엄청난 질량이 중심부로 응집되면서 온도가 대책없이 올라간다. 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온도가 아무리 높아도 헬류 원자핵이 융합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중심부의 헬륨 덩어리를 에워싸고 있는 수소 원자들이 충분한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 제2라운드에 돌입하여 다량의 에너지를 바깥쪽으로 방출한다. 이것은 태양이 탄생한 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엄청난 양이어서, 중력에 의한 수축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태양 전체가 거대한 규모로 팽창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내행성(수성,금성,지구)의 운명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1) 수명을 다한 태양은 어느 정도까지 팽창할 것인가? (2) 태양이 팽창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질량을 밖으로 뱉어 낼 것인가? 두 번째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태양의 핵 엔진이 과도하게 작용하여 바깥층에 있는 입자들이 우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태양은 질량이 비교적 작은 편이어서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가까운 행성들은 먼 궤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행성이 밀려나는 속도와 태양이 팽창하는 속도, 둘 중 어느 것이 더 빠를까? 행성의 운명은 여기에 달려 있다. 태양계의 모든 데이터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가장 안쪽 궤도를 도는 수성은 팽창하는 태양에 흡수되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릴 운명이다. 궤도가 비교적 큰 화성은 수성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어서 안전하다. 금성도 수성처럼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지만, 일부 시뮬레이션에서는 태양이 팽창하는 속도보다 금성이 도망가는 속도가 조금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구도 아슬아슬하게 재앙을 피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환경은 크게 바뀔 수 없다. 표면 온도는 수천 도씨까지 치솟으면서 바닷물이 모두 증발하고 대기는 우주로 날아갈 것이며 지표면은 용암으로 뒤덮일 것이다. 결코 쾌적한 환경은 아니지만, 적색거성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태양은 기가 막힌 장관을 연출한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 멋진 광경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후손들이 50억 년 후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똑똑하다면(핵전쟁과 치명적인 병균, 환경 재앙, 소행성 충돌, 외계인 침공 등 온갖 위험을 이겨내야 한다), 이미 오래 전에 우주적 재앙을 예견하고 다른 행성을 찾아 지구를 떠났을 것이다. 

태양 중심부의 헬륨을 에워싸고 있는 수소 층에서 핵융합 반응이 계속되면 추가로 생성된 헬류이 중심부에 유입되어 중력에 의한 수축이 더욱 격렬해지고, 온도는 더 높이 올라간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수소의 핵융합 반응이 더욱 빠르게 진행되면서 중심으로 유입되는 헬류의 양이 많아지고, 온도는 더 빠르게 증가한다. 그리고 앞으로 약 55억년 후에는 태양의 중심 온도가 헬륨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높아져서(약 1억도씨) 탄소와 산소가 생성되기 시작하고, 잠시 동안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자신의 에너지원이 수소에서 헬륨으로 바뀌었음을 알린 후, 얌전한 작은 별로 수축된다. 그러나 이 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얌전한 왜성이 된 후 약 1억 년이 지나면, 과거에 무거운 헬륨이 가벼운 수소를 대신했던 것처럼 무거운 탄소와 산소가 가벼운 헬류을 주변으로 밀어내고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다. 이들도 전임자처럼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까? 원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탄소와 산소가 핵융합 반응을 하려면 온도가 6억도씨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 무렵의 태양의 중심 온도는 여기에 한참 못 미친다. 그리하여 중력이 다시 한번 주도권을 잡아서 태양을 안으로 수축시키고, 온도가 또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전 주기에서 중심부의 온도가 상승하여 헬륨을 에워싼 수소 층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번에는 탄소와 산소를 에워싼 헬륨 층에서 핵융합 반응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에서는 중심부의 온도가 탄소-산소의 핵융합 반응에 필요한 온도까지 올라가지 못한다. 왜냐면 태양의 질량이 기준 미달이어서 충분한 중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양보다 무거운 별이 이 단계에 도달한다면 중심부의 탄소와 산소가 핵융합 3라운드에 돌입하여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의 태양은 헬륨 층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새로 만들어진 탄소와 산소가 중심부에 축적되면서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의해서 더 이상 수축될 수 없을 때까지 가차없이 수축된다. 

1925년의 어느 날 평소 독설가로 유명했던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네 생각이 느린 건 걱정 안 해. 자네의 논문이 그 느려 터진 생각보다 먼저 출판될까 봐, 그게 걱정이라고!") 는 2개의 전자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거리에 양자역학적 한계가 존재하다는 사실을 알았냈다.(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2개의 동종 입자는 동일한 양자 상태에 놓일 수 없다.) 얼마 후 물리학자들은 파울리의 배타 원리가 미세한 입자에 초점을 맞춘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태양과 같은 거대한 천체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태양이 수축될수록 중심부의 전자들이 더욱 빽빽하게 배열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울리가 예견한 한계치에 도달한다. 여기서 더 수축되면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위배되므로 전자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양자적 반발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태양은 더 이상 수축되지 않는다. 한편 태양의 바깥층은 계속 팽창하면서 온도가 점점 내려가다가 결국은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버리고 탄소와 산소만으로 이루어진 초고밀도 부위만 남는다. 이런 별을 백색왜성이라고 하는데, 내부에 열에너지가 남아있어서 향후 수십억 년 동안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나 핵융합 반응이 재개될 정도로 높은 온도가 아니기 때문에 타고 남은 장작의 마지막 불씨처럼 서서히 잦아들아가 결국 '어둡고 차가운 구형 천체(죽은 별)'로 생을 마감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10층에서 몇걸음만 더 올라가면 태양의 최후를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꽤 점잖은 결말이다. 11층으로 올라가서 맞이하게 될 범우주적 파국과 비교하면 점잖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침묵 속의 죽음에 가깝다.

빅립(The Big Rip)

사과를 위로 던지면 최고 높이에 도달한 후 반드시 아래로 떨어진다. 모든 만물에 상관 없이, 그리고 가차없이 작용하는 중력 때문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우주의 운명은 이 평범한 중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1920년대에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모든 은하들이 지구로부터 일제히 멀어지는 이유를 추적하다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위로 던진 사과의 속도가 위로 올라갈수록 느려지는 것처럼, 멀어지는 은하들은 상호 중력에 의해 멀어지는 속도가 점점 느려져야 한다. 공간이 팽창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팽창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느려져야 한다는 뜻이다. 1990년대에 천문학자들로 구성된 두 연구팀이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관측을 시작했는데, 거의 10년이 지난 후에 이들이 발표한 결과는 과학계에 일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신호인 초신성폭발을 관측하여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팽창 속도가 느려지지 않고 오히려 빨라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무려 50억년 전부터 계속 되어 온 현상이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팽창 속도가 느려진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래야만 이치에 맞기 때문이다. 공간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은 위로 부드럽게 던진 사과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빨라지다가 지구를 탈출하는 것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만일 당신이 사과를 던졌다가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면, 어떻게든 사과를 위로 밀어내는 힘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팽창이 가속되고 있다는 의외의 사실에 당황한 천문학자들도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파헤쳤다.

가속 팽창을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이론은 3장에서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다룰 때 잠시 설명했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행성이나 별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 덩어리들이 서로 잡아당기는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접근법은 뉴턴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물질 덩어리가 아닌 에너지장(사우나실을 가득 채운 증기라고 생각하면 된다)이 공간의 한 영역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으면 밀어내는 중력이 작용한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에너지가 특별한 장(인플라톤장)을 통해 운반되며, 여기서 발생한 강력한 척력이 빅뱅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은 무려 140억 년 전에 일어났지만, 최근에 알려진 가속 팽창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설명 가능하다. 또 다른 에너지장(빛이 없는 암흑에너지로 불리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이 우주 공간 전체를 균일밀도로 가득 메우고 있다고 가정해도 은하들이 빠르게 멀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은하는 물질의 집합체이므로 잡아당기는 중력을 발휘하여 은하들끼리 멀어지는 속도를 늦추고 있다. 또한 공간에 균일하게 분포된 암흑에너지는 밀어내는 중력을 발휘하여 은하들끼리 멀어지는 속도를 점점 더 빠르게 가속시킨다. 우주 공간의 팽창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은 암흑에너지에서 유발된 척력이 은하들 사이의 인력(중력)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빅뱅 때 일어났던 과격한 팽창에 비하면 지금의 팽창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암흑에너지의 양이 너무 많아도 안된다. 지금과 같은 가속 팽창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암흑에너지는 공간 1m^3당 '100와트짜리 전구를 2천억분의 1초 동안 밝힐 수 있는 양'으로 충분하다. 터무니없이 작응 양 같지만 공간이 워낙 넓기 때문에, 모두 합하면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팽창 가속도가 거의 정확하게 구현된다. 

암흑에너지를 도입하면 공간이 팽창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이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관측된 적이 없으니 어떤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도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량의 암흑에너지를 도입하면 이론과 관측 결과가 매우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가속 팽창을 설명하는 정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암흑에너지의 장기적 거동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리고 먼 미래를 예측할 때에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관측 결과에 부합되는 가장 간단한 시나리오는 암흑에너지가 장구한 세월동안 변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밀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것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없다. 암흑에너지를 수학적으로 표현해보면 앞으로 점점 약해져서 가속 팽창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고, 점점 강해져서 가속도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밀어내는 중력이 점점 강해지는 경우)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1층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만일 이것이 실제 상황으로 닥친다면, 우주는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빅립(Big Rip, 거대한 균열)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밀어내는 중력이 점점 강해지는 추세가 장기간 계속되면 언젠가는 잡아당기는 힘을 압도하고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 놓을 것이다. 당신의 몸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원자와 분자를 강하게 결합시켜주는 전자기력과, 원자핵 아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시켜주는 강한 핵력(강력) 덕분이다. 이 힘들이 공간을 확장시키는 힘보다 아직은 훨씬 강하기 때문에 당신의 몸이 하나의 덩어리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몸이 확장되는 것은 공간 팽창이 아니라 다이어트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충분히 흘러서 밀어내는 힘이 강해지면, 우주 공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몸속에 있는 공간도 전자기력이나 강한 핵력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확장된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는가?

그렇다.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 당신의 몸도 부피가 커지다가 결국은 산산이 분해가 될 것이다. 구체적인 진행과정은 밀어내는 중력이 강해지는 속도에 달라진다. 물리학자 로버트 콜드웰과 마크 케미언코우스키, 그리고 네빈 와인버그는 앞으로 약 200억 년 후에 밀어내는 중력이 은하단을 해체시키고, 그로부터 약 10억 년 후에는 은하수의 별들이 불꽃놀이 폭죽처럼 산산히 흩어질 것이며, 다시 6천 만 년이 흐른 뒤에는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으로부터 한참 멀어지고, 몇 개월 후에는 밀어내는 중력이 분자 규모에서 작용하여 별과 행성들이 폭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분이 지나면 원자조차도 자신을 구성하는 입자들 사이의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낱개의 입자로 분해된다. 이 모든 난리를 겪은 후에 우주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그 답은 시간과 공간의 양자적 특성에 달려 있다. 이 분야는 아직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어서 정확한 답을 알 수 없지만, 밀어내는 중력이 시공간의 구조 자체를 찢어 버릴 수 있다. 빅뱅으로 시작된 현실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1층(빅뱅 후 1천억 년)에 도달하기 전에 갈가리 찢어지면서 끝날 수 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다수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빅립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믿고 있다. 수학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지만 논리 자체가 다소 부자연스럽다. 빅립은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미래'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경험의 산물이어서 틀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빅립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12층부터 꼭대기까지는 의미를 상실하겠지만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그 못지않게 크기 때문에, 우리의 여정은 여기서 끝낼 필요는 없다. 단, 건물 위층으로 더 올라가기 전에 중요한 사건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공간의 절벽

밀어내는 중력이 현재 값에서 더 강해지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위에서 말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팽창은 계속되겠지만, 팽창하는 공간 때문에 당신의 몸이 산산이 분해되는 일은 없을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밀어내는 중력이 일정하다는 것은 공간의 팽창 가속도가 일정하다는 뜻이므로, 긴 시간이 지나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된다. 앞으로 약 1조 년 후에는 팽창속도가 광속을 초과하여 모든 은하들이 빛보다 빠르게 멀어질 것이다. 그런데 가만있자.... 빛보다 빠르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아니다. 상관없다. "모든 물체는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 는 아인슈타인의 계명은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물체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은하들이 멀어지는 것은 공간 자체가 팽창하기 때문이지, 이들이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때문이 아니다. 은하에는 로켓엔진이 달려 있지 않다. 신축성 좋은 물방울무늬 옷감을 길게 잡아 늘이면 무늬들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는 것처럼, 공간이라는 직물에 새겨진 은하는 팽창하는 공간과 함께 멀어진다.(물론 은하가 공간에 대해 완전히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팽창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무시해도 상관없다) 그리고 은하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이들 사이에 낀 공간도 커지므로 공간 팽창에 따른 분리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난다. 즉, 은하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빠르게 멀어진다. 공간이 팽창하는 속도는 아인슈타인의 광속초과 금지령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무한정 빨라질 수 있다. 그래도 광속 초과 금지령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은하는 팽창하는 공간을 타고 빛보다 빠르게 멀어질 수 있지만, 은하에서 방출된 빛은 광속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지구에 도달하지 못한다. 강물에서 상류 쪽을 향해 노를 젓는 카약 선수가 유속보다 빠르게 노를 젓지 않는 한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처럼, 빛보다 빠르게 멀어지는 은하에서 방출된 빛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미래의 천문학자가 가까운 별을 마다하고 멀리 떨어진 은하에 망원경의 초점을 맞춘다면 칠흑같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은하들이 팽창하는 공간에 실려 떠내려가다가 천문학자들이 말하는 우주지평선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간의 가장자리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나 있어서, 모든 은하들이 그 아래로 추락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관측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서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은하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겠지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국부은하단(약 30개의 은하로 이루어진 은하집단)은 여전히 우리의 동반자로 남을 것이다. 우주의 타임라인이 11층에 도달하면 은하수와 안드로메다은하를 포함한 국부은하군이 우주의 주인공으로 부각될 것이다. 미래의 천문학자들은 이 은하단을 밀코메다로 부르지 않을까? 아무튼 밀코메다의 별들은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서 공간 팽창을 이겨내고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멀리 있는 은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천문학자에게 커다란 손실이다. 20세기 초에 허블이 우주팽창설을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은하를 관측하여 얻은 데이터 덕분이었다. 만일 은하들이 이미 사라진 후였다면 우주가 맹렬하게 팽창하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며, 빅뱅과 우주의 진화 과정도 미스터리로 남았을 것이다. 하버드대학교의 천문학자 에이브러햄 러브는 "밀코메타 은하단에서 운 좋게 탈출한 별들이 우주 공간을 표류하면 흐르는 강물에 뿌려진 팝콘처럼 팽창의 흔적을 추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이다. 가속 팽창이 계속 진행되다 보면 지구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결국 칠흑으로 변하고, 먼 미래의 천문학자들으 아무것도 관측할 수 없게 된다. 빅뱅이 일어나고 약 1조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12층에 도달하게 되면 우주 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우주배경복사마저 너무 희미해져서(공간팽창에 따른 적색편이 때문) 더이상 관측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알려진 천문학 관련 지식(빅뱅, 인플레이션, 공간 팽창 등0이 1조 년 후의 천문학자들에게 온전히 전수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볼수 없는 그들이 과연 아득한 과거에 구축된 우주론을 문자 그대로 믿어줄까? 그때가 되면 관측 장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겠지만, 아무리 먼 곳을 뒤져도 우주 공간은 암흑 천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고색창연한 이론을 원시 인류의 낭만적인 착각으로 간주하고, '우주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정적우주론을 정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별로 달가운 사실은 아니지만, 우주가 팽창할 수록 천문학은 퇴보한다. 우리는 엔트로피가 가차없이 증가하는 세상에 살면서도 날이 갈수록 관측 도구가 개선되고, 데이터가 증가하고, 이해가 깊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가속 팽창이 계속되면 이런 기대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정보들이 너무 빠르게 달아나서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는 모든 진실이 지평선 밑으로 숨어버리고, 우리의 후손들은 우주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하늘같이 믿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별들의 황혼

최초의 별은 8층(빅뱅후 1억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재료가 남아있는 한 새로운 별은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순환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별이 생성되는데 필요한 성분 목록은 아주 짧다. 충분한 양의 수소만 있으면 된다. 앞서 말한 대로 수소 구름이 중력으로 서서히 뭉치다가 중심부의 온도가 임계값을 넘으면 핵융합 반응이 시작된다. 은하에 떠다니는 수소 구름의 총량과 하나의 별이 형성되는 데 필요한 수소의 양을 알면 별의 탄생과 소멸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몇 가지 미묘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별의 출생률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별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구성 성분의 일부를 은하에 되돌려주기 때문에 원자재가 수시로 보충된다), 천문학자들은 정교한 계산을 통해 "앞으로 100조 년(14층)이 지나면 모든 은하에서 별이 더이상 탄생하지 않는다"라고 결론 지었다. 

14층으로 올라가면 알아야 할 것이 또 있다. 이 시기에 존재하는 별들은 맹렬하게 타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태양과는 달리, 서서히 빛을 잃어 갈 것이다. 별의 질량이 클수록 중심부의 질량도 커서 온도가 높고, 우리의 태양은 앞으로 50억 년(탄생 후 100억년) 동안 찬란한 빛을 발하겠지만, 질량이 훨씬 큰 별은 핵연료를 빠르게 소모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명이 짧다. 이와 대조적으로 질량이 태양의 1/10이하인 경량급 별들은 연료를 천천히 소모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빛을 발할 수 있다. 이를 적색왜성이라고 하는데, 관측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존재하는 별의 대부분이 이 부류에 속한다. 적색왜성은 온도가 낮으면서 핵반응의 효율이 높기 때문에(별이 보유한 수소의 대부분이 중심부에 모여있다) 수조 년 동안 빛을 발할 수 있다. 태양의 수명보다 무려 천 배나 길다. 그러나 우주 달력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4층에서는 뒤늦게 탄생한 적색왜성 조차도 수명을 다한 상태다. 14층으로 올라가면 모든 은하는 디스토피아를 방불케 하는 황무지로 변한다. 한때 찬란한 별들로 만원사례를 이루었던 하늘에는 이제 타고 남은 재밖에 없다. 그러나 별의 중력은 밝기가 아닌 질량에 의해 좌우되므로, 행성을 거느린 별은 여전히 주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 한 층 더 올라가도 아직은 무언가가 남아 있다.

천문질서의 황혼

맑은 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은하에 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언뜻보면 지를 에워싼 가상의 구 안에 별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천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눈은 집광력과 초점심도가 매우 낮다. 간단히 말해서, 성능이 형편없는 망원경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별들은 엄청난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태양을 설탕 분말 한개 크기로 줄여서 뉴욕시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갖다 놓는다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로시마 켄타우리는 코네티컷주의 그리니치 어딘가에 있다. 당신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자동차를 타고 출발하여 프록시마 켄타우리를 찾아 그리니치로 간다면, "내가 도착할 때 쯤이면 그 별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에 속도를 낼 필요가 전혀 없다. 이 규모에서 별이 움직이는 속도는 시간당 1mm가 채 안될 정도로 느리기 때문이다. 넓은 벌판에서 치기장난을 하는 달팽이처럼, 별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것은 극히 드문 사건이다. 이제 원래 규모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15층으로 올라가면 빅뱅 후 1천 조년의 우주가 보인다. 별들이 충돌하는 사건은 극히 드물게 일어나지만 1천 조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므로, 이때까지 살아남은 별들은 수많은 충돌을 아슬아슬하게 모면한 억세게 운좋은 놈들이다. 자, 이들 앞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잠시 지구에 초점을 맞추고, 우주 공간을 배회하는 별들을 상상해보자. 질량과 궤적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별은 지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가벼운 별이 지구와 먼 거리를 두고 지나가면 느긋한 마음으로 구경해도 된다. 그러나 무거운 별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하면 공전 궤도가 틀어져서 태양게 밖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지구뿐만 아니라, 다른 은하, 다른 태양계의 행성들도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면 졸지에 우주 미아가 될 수 있다. 빌딩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은 행성들이 떠돌이별 때문에 모항성(주인별)을 잃고 우주 공간을 떠돌게 된다. 가능성이 낮기 하지만, 지구는 태양이 수명을 다하기 전에 이런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지구는 태양과 멀어질수록 온도가 점점 내려가서 모든 지표면과 해수면이 꽁꽁 얼어붙고, 대기의 주성분인 산소와 질소는 낮은 온도를 이기지 못하고 액화되어 비처럼 뚝뚝 떨어져 내릴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땅 위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은 어렵겠지만 원래 지구 생명체는 깊은 바다 밑에 있는 열수분출공에서 탄생했고, 지금도 일부 생명체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 해저면에는 햇빛이 도달하지 않으므로 열수분출공 근처의 환경은 태양이 없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열수분출공의 에너지는 지구 내부에서 꾸준히 진행되는 핵반응으로 공급되고 있다. 지구도 별이냐고? 물론 아니다. 지구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핵융합이 아니라, 핵분열이다. 지구 내부에 있는 방사성 원소들(토륨, 우라늄, 포타슘)이 핵분열을 통해 붕괴되면서 방출한 고에너지 입자들이 열을 공급하고 있다. 태양이 핵융합으로 지구에 에너지를 공급하건, 오래전에 죽었던 간에, 지구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분열로 꽤 오랫동안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구가 태양계에서 방출된다 해도 해저면의 생명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수십 억년 동안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무튼 우주를 떠도는 범퍼가 같은 별은 태양계를 망가뜨릴 뿐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은하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2개의 별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거나(드물긴 하지만) 정면으로 충돌하면 무거운 별은 속도가 느려지지만 가벼운 별은 속도가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농구공 위에 탁구공을 올려놓은 채 땅에 떨어뜨리면 농구공의 반발력이 가벼운 탁구공에 전달되어 탁구공이 매우 빠른 속도로 튕겨 올라간다). 이런 사건이 한두 번 일어나면 별문제가 안 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충돌을 반복하면서 효과가 누적되면 별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서 자신이 속한 은하를 탈출할 수도 있다. 천문학자들이 수행한 계산에 따르면 우주 달력 빌딩의 19층을 지나 20층을 향해 올라갈 때쯤 웬만한 은하는 이런 식으로 모든 별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다. 별이 없는 은하는 물없는 바다와 같다. 간단히 말해서, 은하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앞으로 10^19년 후에는 태양계와 은하를 지배했던 천문 질서가 붕괴되고, 은하를 탈출한 별들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중력파와 마지막 청소

지구가 운 좋게 11층의 태양 팽창에서 살아남고, 외계에서 날아온 별과 충돌하여 태양계 밖으로 날아가는 봉변도 당하지 않는다면, 최후의 운명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아름다운 특징 중 하나인 중력파에 의해 좌우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개념은 휘어진 시공간이다. 다소 추상적인 면이 있어서 수학적인 언어를 빼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이 개념을 설명할 때 우리에게 친숙한 비유를 들곤 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판 한가운데 묵직한 볼링공이 놓여있고(그 자리의 고무판은 움푹 들어갈 것이다), 그 주변에 작은 구슬이 굴러가는 광경을 상상해보자. 여기서 볼링공은 태양이고, 작은 구슬은 행성에 해당한다. 그런데 별과 행성을 이런 식으로 비유하면 당장 한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구슬은 볼링공 주변을 돌다가 나선을 그리며 움푹 팬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행성은 왜 안그런가? 답은 이렇다. 고무판 위에서 구르는 구슬은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별한 장비가 없이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고무판 위에 구슬을 굴린 후 귀를 기울이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렇다. 분명히 소리가 난다. 구슬의 에너지 중 일부가 소리에너지로 변환되면서 나는 소리다. 그러나 텅 빈 우주 공간에는 마찰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행성은 나선을 그리지 않고 자신만의 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행성이 다른 이유 때문에 약간의 에너지를 잃는다. 천체가 움직일 때마다 공간의 구조가 교란되면서 밖으로 퍼져 나가는 파동이 생성된다. 이것은 고무판을 손으로 계속 두드릴 때 표면에 파동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아인슈타인이 1916년과 1918년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에서 이 파동의 존재를 예견하고 '중력파'라는 이름을 부여했지만, 그 후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아서 본인조차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중력파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결코 관측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존재이거나, 방정식을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사실 일반상대성이론은 수학 체계가 워낙 낯설고 미묘해서 아인슈타인조차도 종종 혼란에 빠지곤 했다. 이론이 학계에 수용되려면 실험과 관측을 통해 검증되어야 하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은 워낙 규모가 큰 이론이어서 수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에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가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1960년대의 물리학자들은 중력파가 일반상대성이론의 필연적 결과라고 믿었지만, 실험실에서 중력파가 발견된 사례는 단 한 것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1970년대에 이르러 극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1974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러셀 헐스와 조 테일러가 중성자별로 이루어진 쌍성계를 최초로 발견했는데, 여러 천문학자들이 후속 관측을 실행해 보니 두 별이 나선을 그리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궤도가 작아진다는 것은 에너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중성자별의 에너지는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테일러와 그의 연구 동료 리 파울러, 피터 매컬러는 쌍성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하여 중성자별이 잃어버린 에너지의 양이 중력파에 투입된 에너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중력파는 너무 약해서 감지할 수 없었지만, 파울러의 연구 논문은 중력파의 존재를(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한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로부터 30년 후, 10억 달러를 들여 설립한 레이저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의 연구원들이 드디어 공간에 생긴 주름, 즉 중력파를 직접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2015년 9월 14일 이른 아침에 루이지애나주와 워싱턴주에 설치된 2개의 거대한 감지기에서 중력파 감지 신호가 거의 동시에 잡힌 것이다. 50년에 걸친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새로 업그레이드된 감지기를 설치한지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두 곳에서 동시에 신호가 잡혔으니 의심할 만도 했다. 진짜 중력파일까? 아니면 감지기가 엉뚱한 신호를 중력파로 오인한 것일까? 또는 어떤 장난꾸러기가 시스템을 해킹하여 가짜 신호를 주입한 걸까?

연구원들은 몇 달 동안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 끝에, 정말로 중력파가 지구를 지나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뿐 아니라 슈퍼컴퓨터로 신호를 정밀 분석하여 중력파의 진원지까지 알아냈다. 지금으로부터 13억 년 전, 그러니까 지구에서 다세포생물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에 우주 어딘가에서 2개의 블랙홀이 서로 상대방 주변을 공전하면서 점점 가까워지다가 거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했다. 이 충돌사건은 주변 공간에 엄청난 중력 쓰나미를 일으켰는데, 그 위력은 관측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은하, 모든 별의 에너지를 더한 것보다 훨씬 막강했다. 인류가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다른 대륙으로 진출했던 10만 년 전에 이 중력파는 은하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암흑물질후광을 통과했고, 히아데스성단을 지나던 100년 전에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지구인이 중력파의 존재를 예견한 논문을 최초로 썼으며, 케타우루스자리를 지나던 50년 전에는 일부 과감한 물리학자들이 중력파 감지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중력파가 지구에 도달하기 2일 전에 새로 업그레이드된 감지기가 LIGO에 설치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명의 날(2015년 9월 14일), 바로 그 2개의 감지기가 5천분의 1초 동안 중력파를 감지하여 이 모든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었다(물론 중력파는 지구를 지난 후에도 계속 진행한다. 그러나 멀리 갈수록 신호가 약해지기 때문에 감지하기 더욱 어렵다). 중력파 관측팀을 이끌었던 레이 와이스와 베리 배리시, 그리고 킵 손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이 발견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지구의 미래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구가 우주달력 빌딩 23층에 도달할 때까지 궤도를 유지한다면, 중력파에 에너지를 조금씩 낭비하다가 결국 나선 궤도를 그리며 오래전에 죽은 태양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행성들도 시간대는 다르겠지만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덩치가 작거나 모항성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은 공간을 교란하는 정도가 약하기 때문에 좀 더 긴 시간동안 나선 궤도를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지구와 비슷한 모든 행성들은 우주의 시간이 23층에 도달하면 주어진 운명에 따라 차가운 모항성과 격렬한 재회를 하게 될 것이다.(모든 행성은 과거 한 때 모항성의 일부였다)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면 은하들도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대부분 은하의 중심에는 우리 태양의 수백만 배ㅇ에서 수십억 배에 달하는 초대형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다. 23층에서 바라볼 때 은하에 남아 있는 별로서 중심부의 블랙홀 주변을 서서히 공전하고, 행성들도 궤도에너지가 중력파로 조금씩 전환되면서 남은 별들과 함께 나선 궤적을 그리며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에너지 손실률과 궤도의 규모를 고려할 때, 우주의 시간이 24층에 도달하면 그때까지 남아 있는 별의 대부분이 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 후에도 중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는 홀로 배회하는 죽은 별이 존재할 수 있는데(집단생활을 하다보면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사람이 꼭있다. 별들도 마찬가지다), 블랙홀은 이들에게도 가차없이 중력을 행사하며 마지막 남은 한 개까지 알뜰하게 먹어치울 것이다. 그리하여 30층에 도달하면(빅뱅 후 10^30년) 거의 모든 은하들이 사라지게 된다. 이 세계에는 우주 여행을 해봐야 구경거리가 별로 없다. 홀로 외롭게 떠다닌느 죽은 별과 괴물같은 블랙홀이 간간이 눈에 띌 뿐, 우주의 대부분은 어둡고 황량한 공간으로 가득 찰 것이다. 

복잡한 물질의 운명

이토록 극단적으로 환경이 변하는 와중에 인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장의 서두에서 말한 대로, 생명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수벽, 수천 년 후가 아니라 수천 억, 수조 년 후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생명 기능을 유지하려면 에너지(대사에너지, 생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별이 수명을 다하면 이 작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은하에서 퇴출되거나 게걸스런 블랙홀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놓이면 훨씬 더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살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우주 공간에 널리 퍼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암흑물질에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암흑물질의 구성 입자가 서로 강하게 충돌하면 광자(빛)가 생성된다. 그러나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더 큰 위험이 찾아온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물질 자체가 분해될 수 도 있다. 생명체에서 별에 이르는 모든 복잡한 물질과 모든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의 중심에는 양성자가 자리 잡고 있다. 만일 양성자가 더 가벼운 입자(전자나 광자)로 붕괴되는 경향이 있다면, 모든 물질이 분해되면서 우주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양성자의 평균 수명이 적어도 138억 년(빅뱅 후 지금까지 흐른 시간)보다는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지난 50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시간이 충분히 흘렀을 때 양성자가 붕괴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수학적 증거를 찾아왔다. 1970년에 물리학자 하워드 조자이와 셸던 글래쇼는 중력을 제외한 3개의 기본 힘을 하나의 수학 체계로 통일하는 대통일이론을 개발했다. 강력(강한 핵력)과 양력(약한 핵력), 그리고 전자기력을 실험실에서 관측하면 완전히 다른 힘처럼 보이지만, 힘이 작용하는 거리를 줄여 나가면 세 힘의 차이는 점점 희미해진다. 대통일이론에 의하면 약력과 강력, 그리고 전자기력은 더욱 포괄적인 하나의 힘의 다른 측면이다. 즉, 극도로 작은 규모에서는 3개의 힘이 구별되지 않고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조자이와 글래쇼는 대통일이론에서 예견된 힘 사이의 연결 관계에 기초하여 입자와 물질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했다. 이 관계에 의하면 양성자를 포함한 여러 입자들은 붕괴를 통해 다른 입자로 변신할 수 있다. 다행히도 이 과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만일 당신이 한 손에 양성자 한 움쿰을 쥐고 이들의 절반이 붕괴되길 바란다면 무려 1000 x 10억 x 10억 x 10억년을 기다려야 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층 편의점에서 양성자를 구입했다면, 30층까지 올라가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거짓말이라고 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대체 어느 누가 그 긴 세월을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확인할 방법이 있다. 로또복권을 소량만 판매하면 1등 당첨자가 나올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지만, 복권을 수억, 수십억 장 판매하면 1등 당첨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은 샘플에서 양성자 붕괴가 관측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지만, 샘플의 크기를 왕창 키우면 단 몇 개라도 관측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거대한 용기에 수백만 갤런의 정수를 채워 넣고(여기에는 약 10^26개의 양성자가 들어있다) 최고로 민감한 입자 감지기로 에워싼 후, 감지기에 신호가 뜰 때까지 주야장천 기다리면 된다.(조자이와 하워드의 이론에 의하면 양성자가 붕괴될 때 파이온과 반전자가 방출된다. 감지기가 감지하는 것은 바로 이 입자들이다).

10^26개면 지구의 모든 해변과 사막에 존재하는 모래 알갱이의 수보다 많다. 이렇게 많은 양성자들 중에서 단 1개가 붕괴되는 사건을 과연 잡아낼 수 있을까? 이 실험을 운영하는 연구팀은 양성자가 단 한 개라도 붕괴된다면 감지기에 신호가 뜰 것이라고 장담했다.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자이가 대통일이론을 한창 검증하던 1980년대 중반에 그의 제자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 나는 물리학과 학부생이어서 첨단 이론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학계의 분위기는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꿈이었던 통일이론이 곧 완성될 것이라며 이론물리학이 정상에 깃발을 꽂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1년도 지나도 양성자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은 들여오지 않았고, 그 다음 해도, 그그 다음 해도 마찬가지 였다. 무소식 상태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양성자의 수명은 길어진다. 붕괴될 때까지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양성자는 단 하나도 붕괴되지 않았으니, 현재 양성자의 수명은 최소 10^34년까지 길어졌다. 조자이와 글래쇼가 제안한 통일이론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이론이다. 비록 중력은 제외되었지만, 이들의 이론은 수학과 물리학을 엄밀하면서도 예술적으로 결합하여 자연에 존재하는 세 종류의 기본 힘(강력, 약력, 전자기력)과 물질 입자(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의 특성을 통일된 논리로 아름답게 설명했다. 가히 '인간의 지성이 낳은 걸작'이라 부를 만 하다. 그러나 자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훗날 조자이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의 소감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말도 말게나, 그때는 정말 자연한테 한 방 걷어차인 기분이었지. 그 후 통일이론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네." 그래도 자연의 법칙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제안된 통일이론(칼루자-클라인 이론, 초대칭, 초중력, 초끈이론, 그리고 하워드-조자이의 이론을 확장한 글래쇼의 대통일이론 등. 자세한 내용은 엘러건드 유니버스에 정리되어 있다)은 한결같이 양성자 붕괴를 예측하고 있다. 이 현상이 일찍 관측되지 않는 바람에 조자이와 글래쇼의 이론은 후보에서 제외되었지만, 아직 유효한 통일이론에서 주장하는 양성자의 붕괴속도는 지금까지 실험으로 확인된 값보다 훨씬 느리다. 이들이 제안한 양성자의 수명은 대략 10^34~10^37년이며, 이보다 더 길다고 주장하는 이론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주를 수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감행할 때마다 양성자 붕괴가 단골손님처럼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양성자 붕괴가 아예 등장하지 않도록 방정식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미 옳은 것으로 판명된 이론에 역행하는 수학적 조작을 가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은 양성자 붕괴를 실존하는 현상으로 믿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양성자의 수명이 10^38년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다. 이는 곧 38층에서 계속 위로 올라가면 우주에 존재하거나 한때 존재했던 모든 구조물(바위, 물, 토끼, 나무, 당신과 나, 행성과 달, 별 등)의 구성 성분인 원자와 분자가 산산이 분해된다는 뜻이다. 이때가 되면 우주에는 전자와 양전자, 뉴트리노, 광자와 같은 고립된 기본 입자만 남고, 곳곳에 조용한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보다 낮은 층에서는 생명체들이 생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품질 좋고 엔트로피가 낮은 에너지를 열심히 찾고 있다. 38층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대두된다. 원자와 분자가 분해되면 생명체의 근간은 물론이고 모든 구조 자체가 붕괴된다. 생명체가 온갖 재앙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까지 용케 버텨왔다면, 이제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최후가 찾아온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고려 중인 시간 규모에서는 오래전에 버렸던 기능이라 해도 지금 당장 필요하다면 다시 취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 도 있다. 아득한 미래의 생명과 마음은 완전히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거칠고 서툰 형태로 진화할지 모른다. 

이는 곧 미래의 생명과 마음이 세포, 몸, 두뇌와 같은 물리적 기질에 의존하지 않고 '통합된 과정의 집합체'로 진화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생물학이 생명 활동을 전적으로 지배해 온 것은 모든 생명체들이 지구라는 행성에 적용되는 자연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원자가 해체된 후 기본 입자로 이루어진 집합체가 생명 활동과 사고를 안정적으로 수행한다면, 이것도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우주에서 '생각하는 존재'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의 사고력은 물리 법칙을 따른다. 다른 것을 모두 초월한다 해도 물리 법칙만은 넘어설 수 없다. 이런 제한 속에서 사고는 과연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의 미래

누군가가 생각의 미래를 예측한다고 하면 왠지 오만해 보인다.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생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5장에서 말한대로 생각과 마음을 연구하는 과학은 아직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체의 운동을 연구하는 과학은 뉴턴에서 슈뢰딩거에 이르는 250여년 사이에도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는데, 10억세기(1천억년)가 찰나로 느껴질 정도로 장구한 세월이 흐른 후에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 무슨 수로 알아낸다는 말인가? 이 질문은 지금 우리가 다루는 핵심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주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또 이해되어야 한다. 여러 질문에 제시된 답들은 결국 하나의 일관적인 이야기로 통합되어야 하겠지만, 제한된 지식만으로도 이야기의 일부를 꾸려 나갈 수 있다. 뉴턴은 양자역학을 전혀 몰랐지만 일상적인 규모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설명했으며, 훗날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대세로 떠오른 후에도 뉴턴의 물리학은 폐기되지 않고 오히려 개선되었다.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의 기이한 특성을 설명하고 뉴턴의 고전 물리학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과학의 영역을 이전보다 훨씬 넓게 확장시켰다. 오늘날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수학이 미래의 생각에는 완전히 무용할 수도 있다. 당신이 물리학사와 철학사를 꿰어 차고 있지 않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현적 운동이론이나 엠페도클레스의 눈 속의 불 이론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탐구할 때마다 잘못된 길로 쉽게 빠져든다. 너무 자주 있는 일이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그랬던 것처럼, 틀린 내용도 언젠가는 더욱 포괄적인 연대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머나먼 미래의 생각을 예측하려면 이렇게 낙관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1979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머나먼 미래의 생명과 마음을 예측하는 인상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부터 최신 이론과 관측 데이터에 기초하여 다이슨의 논리를 따라가보기로 한다.다이슨은 시종일관 물리학자의 관점을 고수하면서 인간의 사고 행위를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물리적 과정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우리의 취지와 잘 들어맞는다. 또한 우리는 머나먼 미래의 우주에 대하여 몇 가지 단서를 갖고 있으므로, 사고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 논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먼저 당신의 두뇌부터 생각해 보자. 두뇌가 작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당신은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숨 쉬면서 에너지를 공급한다. 또한 두뇌는 세부적인 배열을 수정하기 위해 다양한 물리화학적 과정(화학 반응, 분자 재배열, 입자의 이동 등)을 수행하면서 열과 폐기물을 외부로 방출하고 있다. 당신의 뇌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에는(또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괘감이나 통증을 느낄 때에는), 2장에서 언급했던 증기 기관의 작동 과정이 그대로 재현된다. 증기 기관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두뇌에서 외부로 방출되는 열에는 엔트로피가 담겨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증기 기관이 내부에 쌓인 엔트로피를 해소하지 못하면 얼마 가지 않아 고장 날 수밖에 없다. 두뇌도 이와 비슷하여, 작동 중에 누적된 엔트로피 폐기물을 처분하지 못하면 곧바로 오작동을 일으킨다. 두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생각도 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두뇌에 기초한 사고를 위협하는 잠재적 요인이다. 과연 두뇌는 머나먼 미래에도 폐열을 외부로 방출할 수 있을까?

먼미래에도 인간의 두뇌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원자가 기본 입자로 분해되는 시기에 이르면 복잡한 분자는 더욱 존재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고 생명체가 제아무리 희한한 구조로 진화한다 해도, 폐열을 배출하는 것은 생각하는 존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떤 구조로 되어 있건 간에, 생각하는 존재(인간의 후손이라는 보장은 없으므로, 이것을 사고체라 하자)는 사고 과정에서 생성된 열을 외부로 방출할 수 있는가?" 사고체가 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면 자신이 생성한 엔트로피 속에서 과열되다가 결국은 타 버릴 것이다. 그리고 팽창하는 우주에 적용되는 물리 법칙이 사고체의 엔트로피 방출을 방해한다면, 생각의 미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생각의 미래를 평가하려면 생각의 물리학을 이해해야 한다. 사고체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사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엔트로피를 생산하는가? 또한 사고체는 얼마나 빠르게 페열을 방출해야 하며, 우주는 얼마나 빠르게 폐열을 흡수해야 하는가?

느리게 생각하기

이 책의 2장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엔트로피란 주어진 물리계의 미시적 구성 요소(입자)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뱅려 중에서 '외관상 거의 비슷하게 보이는' 배열의 수를 의미한다. 그런데 주어진 물리계가 사고체인 경우에는 위의 정의를 다른 유용한 형태로 재서술 할 수 있다. 계의 엔트로피가 낮다는 것은 구성 입자들이 '외관상 거의 비슷한 배열의 수가 비교적 적은 상태'에 해당하는 배열 중 하나를 점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에게 물리계의 실제 배열 상태를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많은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없다. 엔트로피가 낮은 계는 가능한 베열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할인마트 진열장에 몇 개 안 되는 통조림이 놓여 있을 때 특정 통조림(예를 들어 캠벨 토마토 수프)을 지정하기가 쉬운 것처럼, 몇 안되는 가능성 중 하나를 지정할 뗑는 소량의 정보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계의 엔트로피가 높으면 입자의 배열은 '외관상 거의 비슷한' 수많은 배열 중 하나다. 즉, 엔트로피가 높은 배열은 수많은 도플갱어를 갖고 있다. 이런 경우에 계가 실제로 점유하고 있는 배열을 알려주려면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초대형마트의 선반에 쌓여 있는 수만 개의 통조림 중에서 특정한 통조림 하나를 지정할 때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처럼, 엔트로피가 높은 계의 입자 배열 상태를 서술하려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지정해야 하기 때문에 다량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엔트로피가 낮은 계의 입자 배열에는 정보의 양이 많지 않고, 엔트로피가 높은 계의 입자 배열에는 다량의 정보가 들어있다. 엔트로피와 정보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사고의 주체가 누구이건(인간의 두뇌이건, 또는 추상적인 사고체이건 간에) 생각이란 곧 정보 처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와 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정보처리와 사고 기능을 엔트로피 처리 과정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2장에서 말한 대로 엔트로피 처리과정(엔트로피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과정)에는 반드시 열의 이동이 수반되기 때문에, 사고와 엔트로피, 그리고 열을 하나의 묶음으로 간주해야 한다. 다이슨은 이들을 연결하는 수학적 도구를 개발한 후, 사고체가 펼치는 생각의 수에 기초하여 밖으로 배출해야 할 열의 양을 계산했다. 간단히 말해서 생각의 수가 적으면 열ㅇ르 조금만 방출해도 되고, 생각의 수가 많으면 다량의 열을 방출해야 한다.

사고체가 무언거를 생각하려면 주변에서 에너지를 추출해야 한다. 그런데 열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므로, 사고체가 주변에서 추출한 열은 나중에 방출할 열보다 최소한 같거나 많아야 한다. 입력에너지는 출력에너지보다 품질이 좋지만(입력에너지는 사고체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출력에너지는 그냥 버려진다), 사고체는 자신이 흡수한 에너지보다 많은 에너지를 방출할 수 없다. 다이슨은 사고체에게 최소한으로 필요한 고품질 에너지의 양을 계산함으로써 난이도를 정량화했다. 별이 핵융합 반응으로 소진되고, 태양이 해체되고, 우주가 팽창하면서 차가워질수록 사고체는 사고에 필요한 고품질-저엔트로피 에너지를 주변에서 추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에너지 효율을 높혀야 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저엔트로피 에너지를 흡수하여 고엔트로피 열을 배출하는 것이다. 자, 과연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다이슨이 제안한 방법을 따라가 보자. 첫번째 단계로 사고체의 내부 과정이 진행되는 속도가 빠를수록 사고체의 온도가 높아진다고 가정하자. 높은 온도에서는 입자가 빠르게 움직이므로 사고체의 사고가 빨라지면서 에너지를 빠르게 소비하고 폐기물도 빠르게 축적되며, 낮은 온도에서는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된다. 점점 차가워지는 우주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사고 능력을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고를 가능한 한 느리게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사고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온도를 낮추고, 어렵게 획득한 고품질 에너지를 천천히 소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사고체에게 이 전략을 알려줬더니 반응이 영 썰렁하다. "저는 사고 행위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데, 사고를 느리게 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나요? 그냥 저만 답답해지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사고체를 위로한다. "그건 아니죠. 생각을 느리게 하면 당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도 함께 느려지기 때문에, 느려졌다는 것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게 이전하고 똑같아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당신이 느끼는 생각의 속도는 이전하고 다를 게 없습니다." 다행히 사고체는 우리말을 알아듣고 달팽이 전략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여전히 걸리는 모양이다. "당신 말대로 하면 새로운 생각을 영원히 할 수 있는 건가요?"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다. 우린 그가 이 질문을 할 것이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답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수학 계산에 의하면 자동차가 천천히 달릴 수록 연비가 높아지듯이, 사고체의 생각이 느릴수록 단위에너지당 사고량(생각의 분량)이 많아진다. 즉, 온도가 낮을수록 효율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고체는 유한한 에너지로 무한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사고체에게 기쁜 소식을 알린다. "우리가 짜준 전략대로 하면 유한한 에너지로 영원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고체는 크게 기뻐하며 당장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데, 갑자기 중요하면서도 성가신 수학적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차가운 커피가 주변에 방출하는 열은 뜨거운 커피가 방출하는 열보다 작지 않은가? 따라서 사고체가 우리의 전략을 따르면 자신이 생성한 폐열을 방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사고체가 조용히 말한다. "당신은 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 제가 폐기물 처리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은 내지 말아주세요." 오케이~! 우리는 입을 다물기로 약속했다. 이 모든 이야기에 깔린 가정이라곤 "사고체는 전자와 같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기존의 물리법칙을 따른다."는 것뿐이므로, 사고체의 구체적인 형태와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사고체의 물리학적, 또는 생리학적 구조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온도가 내려가면 그가 만들어 내는 엔트로피가 방출하는 엔트로피보다 많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내 말 잘 들으세요. 유한한 에너지로 생각을 무한정 계속하려면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엔트로피를 방출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시점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후에도 생각을 계속한다면 당신은 바로 그 생각 때문에 타 버릴 거에요." 

그렇지 않아도 의기소침해진 사고체가 이 말까지 이해하면 완전히 좌절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팀원 중 한 사람이 나서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겨울잠을 자면 됩니다! 물론 꼭 겨울에 잘 필요는 없구요." 그렇다. 정말 기발한 해결책이다. 사고체가 주기적으로 생각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면(즉, 마음의 스위치를 켜고 끄고 잠들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면서 폐열을 계속 방출할 수 있다.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자고 일어나면 모든 폐기물이 방출되어 타 버릴 염려가 없고, 자는 동안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지루할 틈도 없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어느새 몸에 쌓인 폐기물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바로 이것이 다이슨이 1979년에 발표한 논문의 핵심이다. 사고체가 생각과 휴식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 영원히 생각할 수 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생각에 대한 마지막 생각

다이슨의 논문이 발표된 후 수십 년 사이에 전략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발전이 이뤄졌다. 하나는 사고 행위와 엔트로피의 관계를 규명하여 기존의 결과를 적절하게 재해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의 가속 팽창이 다이슨의 이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가속 팽창이 모든 결론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고를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먼저 무엇이 어떻게 재해석되었는지 부터 알아보자. 다이슨이 제시한 논리의 핵심은 사고 행위가 필연적으로 열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생각은 정보와 연결되어 있고 정보는 엔트로피와, 엔트로피는 열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생각과 열은 태생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 연결고리는 매우 미묘하여, 최근 대두된 컴퓨터 이론에 의하면 에너지의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서도 기초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생각과 계산이 같은 부류라고 가정하면 사고체는 폐기물을 전혀 낳지 않으면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의 여정을 이끌었던 생각-엔트로피-열의 연결관계는 컴퓨터 과학에서 뉘앙스가 조금 달라질 뿐, 여전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메모리를 지우면 필연적으로 폐열이 발생한다.(일반적으로 폐열은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사건과 함께 발생한다.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지우면 복구하기가 어려우므로 열이 발생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고체에게 이렇게 조언해주면 된다.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 폐열을 생성하지 않고 계속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체의 기억 용량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더 이상 기억을 보관 할 수 없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 후에 사고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메모리에 고정된 정보를 재편성하여 오래된 생각을 다시 떠올리는 것뿐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긴 한데, 그다지 보람 있는 삶은 아닌 것 같다. 사고체가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고, 새로운 지적 영역을 탐험하기를 원한다면 기억을 지워서 열을 발생시키고, 겨울잠을 자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가속 팽창과 관련된 두 번째 개선 사항은 더욱 중요한 문제를 부각시켰다. 공간이 점점 더 빠르게 확정되면 영원한 사고력을 유지하는데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발생한다. 공간이 점점 더 빠르게 확장되면 영원한 사고력을 유지하는 데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발생한다. 가속 팽창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된다면, 12층에서 봤던 것처럼 멀리 있는 은하들은 공간의 가장자리에서 나있는 절벽에서 추락하듯이 사라질 것이다. 즉, 우리는 원리적으로 관측 가능한 거리를 반지름으로 삼은 거대한 구형 지평선의 중심에 놓여 있는 셈이다. 구의 바깥에 있는 천체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방출된 빛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다. 물리학자들은 이 경계면을 '우주지평선'이라고 부른다. 우주지평선은 엄청난 수의 적외선등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거대한 구면과 비슷하다. 이 등에서 방출된 열이 공간의 배경 온도를 결정한다. 그 이유는 다음 장에서 알아보기로 하고(약간의 스포일을 하자면 블랙홀과 관련되어 있다. 블랙홀은 호킹복사를 방출하면서 지평선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지금은 우주지평선의 온도가 빅뱅의 잔해로 남겨진 마이크로파 우주 배경복사의 온도(2.7k. 또는 -270.3도씨)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는 공간이 팽창할수록 희미해지면서 온도가 절대온도 0K(273도씨)에 가까워지지만, 우주지평선의 온도는 일정한 값을 유지한다. 현재 진행 중인 가혹 팽창을 고려할 때 우주지평선의 온도는 약 10^-30K로 추정되는데,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값이지만 머나먼 미래에는 이 미세한 값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다들 알다시피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따라서 사고체의 온도가 우주 공간의 온도보다 높으면 안에 쌓인 폐열을 밖으로 배출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고체의 온도가 우주 공간보다 낮아지면 열이 반대 방향으로(공간에서 사고체로) 흐르면서 폐열 방출을 방해한다. 이렇게 되면 겨울잠 작전도 소용없다. 사고체의 온도가 꾸준히 내려가다 보면(그래야 유한한 에너지로 영원히 생각할 수 있다.) 언젠가 10^-30K에 도달할 것이고, 이 시점에 이르면 모든 게임은 종료된다. 여기서 사고체가 생각을 한 번만 더 하면(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메모리를 한 번만 더 지우면) 곧바로 타버릴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공간의 가속 팽창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 된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앞으로 공간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빅립을 맞이하여 생명과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수도 있고, 팽창 속도가 다시 느려질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언젠가는 멀리 떨어진 우주지평선의 적외선등이 모두 꺼지고, 우주의 온도는 무한정 내려갈 것이다. 물리학자 위 키니와 케이티 프리즈는 우주의 팽창이 진정되면 사고체가 겨울잠을 자면서 영원히 생각할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다이슨의 낙관적 미래관에 힘을 실어 주었다. 

나는 생각의 미래에 대한 한 줄기 희망마저 꺾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생각하는 존재가 영원히 계속되길 바란다. 그러나 개인적인 바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 일단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보자. 사실 앞에서 펼친 모든 논리에는 어떤 형태로든 낙관적인 관점이 배어 있다. 우리는 별과 행성에서 원자와 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부족한 미래의 우주에도 사고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우주 공간을 떠도는 안정적인 기본 입자들(전자, 뉴트리노, 광자 등)이 한곳에 모여들어 생각하는 구조체가 탄생한다는 것은 꽤 낙천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허용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구조체가 탄생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우주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팽창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체가 영원히 존재한다면 매우 기쁘겠지만, 미래의 사고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래에도 팽창 가속도가 진정되지 않으면 생각하는 존재는 언젠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현재의 지식으로는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지만, 방정식에 대략적인 값을 대입하여 계산해 보면 '생각의 종말' 앞으로 10^50년 이내에 닥칠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지적 생명체는 우주적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별과 은하의 진화를 제어하고, 고품질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공간의 팽창을 제아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답을 제시하고 싶은데,  실마리가 거의 없다. 지능이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개념이어서 어설픈 예측밖에 할 수 없다. 그동안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능의 영향력'에 대해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언제나 믿음직한 제2법칙에 입각하여 생각해보면, 생각하는 마지막 존재는 빌딩 50층까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10^50년은 터무니없이 긴 시간이다. 빅뱅 후 지금까지 흐른 시간보다 10억 x 10억 x 10억 배 이상 길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긴 시간, 예를 들어 75층과 비교하면 한 순간이나 마찬가지다. 10^75년을 1년에 비유하면 10^50년은 당신 책상 위의 전등을 켰을 때 전구에서 방출된 빛이 당신의 눈에 도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짧다. 그리고 우주의 수명이 영원하다면 10^75년이 아니라 10^75^1,000,000,000년이라 해도 찰나에 불과하다. 이렇게 방대한 시간 규모에서 우주의 역사를 서술하면 대충 다음과 같을 것이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직후에 생명체가 등장하여 아주 잠시 동안 존재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러나 우주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생명체는 곧바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이것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여인이 무덤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으면 잠시 동안 빛이 비추다가 다시 밤이 찾아온다." 며 한탄하던 포조(Fozzo)의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2장의 첫머리에서 보았듯이, 20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우주의 미래가 암울하다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를 비추는 빛과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은 단명하지만, 과학은 이것이 정말 희귀하고, 경이롭고, 가치 있는 사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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