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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엔드 오브 타임 part6 [언어와 이야기 : 마음에서 상상으로]

by Utnapishtim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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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6. 언어와 이야기 : 마음에서 상상으로

경험의 핵심 키워드는 패턴이다.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세상사를 느끼고 적절하게 반응해왔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늘과 분명 다르겠지만 끊임없이 오고가는 무수한 일상 중에는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도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은 우리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본능과 기억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부분의 패턴은 수학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약간의 기호만 도입하면 패턴을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수학은 인간이 자연의 패턴을 서술하기 위해 개발한 또 하나의 언어일까? 아니면 수학 자체가 현실의 원천이어서 자연의 패턴이 자연스럽게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것일까? 필자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진다. 수학을 통해서 현실의 근본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수학은 인간이 자연의 패턴에 과도하게 집착하다가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언어일 수도 있다. 사고를 하기 위해선 우리는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는 언어의 한계가 곧 세상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언어가 없으면 우리의 정신 활동중 일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비상한 천재가 아닌 이상, 상상의 세계에서도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언어가 있으면 현실 세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실질적인 것과 몽상적인 것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고, 계획을 공유하여 협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여러 사람의 창조력을 하나로 결합하여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자음과 모음, 그리고 마침표를 정교하게 배열하여 시공간의 특성을 서술하거나 사랑과 죽음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언어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경험을 후대에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최초의 언어 : 현대인은 언어유희를 즐기지만 최초의 언어가 등장한 시기와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윈은 언어가 노래에서 탄생했을 것이라 했다. 언어의 기원과 초기 발달에 대한 다양한 가설이 난무하는 이유는 언어에는 화석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가 다른 동물의 소통방식과 근본적을 다르다는 점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가 복잡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이유는 열린 언어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개수의 음소를 이리저리 조합하여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고, 이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문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그래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의 SF 소설과 같은 것들도 자세히 서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무슨 말을 했으며, 왜 그토록 많은 말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우리 조상들이 언어 능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것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공통의 문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주장의 기원은 13세기 영국의 철학자 로저 베이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세계 각지의 언어를 오랫동안 분석한 끝에 모든 언어는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대에 와서 그의 주장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데, 촘스키의 이론도 그중 하나다. 지금까지 제안된 공통 문법 중에서 논쟁의 여지가 가장 적은 버전은 사람은 신경생리학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기초적인 언어 체계를 구축하여 인종에 상관없이 듣고,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어린아이들은 인종에 상관없이 언어를 배울 수 있으므로 타고난 능력은 언어의 종류와는 무관하며, 이는 곧 모든 언어에 공통적인 요소가 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촘스키는 지금으로부터 약 8만 년 전에 두뇌의 회로가 살짝 재배치되는 특별한 신경생물학적 사건이 발생하여 우리의 조상들이 언어능력을 획득했고, 그 후로 인지능력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면서 모든 인류에게 언어가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언어의 기원을 연구해 온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거와 폴 블룸은 인류의 생존력이 서서히 높아지면서 언어가 탄생하고 발전했다는 다소 타협적인 언어발생론을 제안했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에게 언어는 사냥의 성공률을 높이고 지식을 공유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소통 능력이 뛰어난 종은 생존 경쟁과 번식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수 있었으며, 세대를 거듭될수록 언어는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져서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언어는 생존 능력과 별 상관없으며, 호흡 조절과 기억력, 추상적 사고력,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 무리를 짓는 능력 등이 개발되면서 부수적으로 얻은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도 분명치 않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은 다른 고고학적 증거를 분석하여 최초의 언어가 탄생한 시기를 추정했는데, 손잡이가 달린 도구와 동굴 벽화, 기하학적 조각품, 구슬세공품 등의 완성도를 시간대 별로 추적한 끝에 인류는 최소 10만 년 전부터 일을 계획하고, 추상적 사고를 하고, 복잡한 사회 교류를 시도했다고 결론지었다. 

언어 구사 능력 발생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다른 고고학적 증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두개강과 구강의 발달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최초의 언어가 등장한 시기를 100만 년 전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분자생물학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언어를 구사하려면 고도의 발성 능력이 필여한데, 2001년에 분자생물학자들이 이 능력의 유전적 기초를 발견한 것이다. 언어장애를 가진 영국의 한 가정을 조사한 끝에 이 가족의 유전자 7번째 염색체에 있는 FOXP2 유전자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침팬지에서 조류와 어류에 이르는 다양한 종들이 사람과 조금 다른 FOXP2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이용하여 유전자의 변천사를 추적하는 중이다. 침팬지의 FOXP2 유전자에 암호화된 단백질 정보는 사람의 것과 2개의 아미노산이 다르지만, 현대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완전히 동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네안데르탈인이 말을 할 줄 알았다는 증거는 없다. 진화의 나무에서 인간과 침팬지는 수백만 년 전에 갈라져 나왔고,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은 약 60만 년 전에 분리되었으므로, 인간의 언어 능력은 그 사이에 획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조들은 왜 오랜 세월 동안 지켜왔던 침묵을 깨고 말을 하기 시작했을까? 이스라엘 언어학자 가이 도이처는 최초의 언어가 모방하는 능력, 털 빗어주기, 리듬에 맞춰 노래하기 등 거의 모든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언어 발생론과 비교할 때 매우 창의적이면서 유쾌한 이론이다. 아마도 언어는 이들 중 하나, 또는 여러 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탄생했을 것이다. 여러가지 가설을 살펴보자. 

어린 아이를 안거나 내려놓을 때 엄마는 두 손을 이용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랠 때 다정한 표정으로 쓰다듬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허밍이나 콧노래 등 목소리가 동반된다. 아이의 옹알이와 엄마의 TLC(다정한 보살핌)는 유아생존율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인데 엄마들은 오랜 세월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장 효과가 좋은 목소리를 선택했고 이것이 훗날 언어로 발전했다는 가설이 있다. 

목소리가 통하지 않는다면 몸동작(손짓, 발짓)으로 뜻을 전달할 수 있다. 특정 물건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특정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식이다.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 중에는 말을 못하지만 손짓과 몸짓으로 초보적인 생각을 교환하는 종도 있다. 한 실험에 의하면 침팬지는 행동과 물건, 또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수백 가지 동작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어는 몸짓에 기초한 의사 소통에서 파생된 능력일지도 모른다. 삶의 패턴이 복잡해지면서 손의 기능은 무언가를 만드는 쪽으로 집중되었고, 집단 속에서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으므로 목소리가 가장 효율적인 정보 교환 수단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몸짓이 언어로 진화했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면,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의 이론을 고려해볼만 하다. 그는 언어가 사회적 그루밍의 효과적 대안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침팬지는 같은 무리에 속한 다른 침팬지의 털을 조심스럽게 다듬고, 벌레를 잡아주고, 피부를 긁어주면서 친구나 동맹 관계를 맺는다. 계급이 비슷한 침팬지끼리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우두머리 침팬지는 서비스를 받기만 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한다. 즉, 침팬지의 그루밍은 무리 속에서 서열과 파벌, 그리고 협동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사회적 행동이다. 초기 인류도 이와 비슷한 그루밍을 했지만, 무리 구성원이 많아짐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루밍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친구와 배우자, 그리고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을까? 던바의 가설에 의하면 원시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시점부터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부터 그루밍을 목소리로 대신하면서 정보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남은 시간에는 주로 남에 관한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 최근 실행된 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이 나누는 대화중 60%가 가십이라고 하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것을 초기 언어의 주기능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하고 있다. 

언어학자 대니얼 도어는 언어의 사회적 기능이 기존의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언어가 상호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는데,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른 사람의 상상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언어를 사용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사회적 거래는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경험해봤던 일에 대해서는 공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코코넛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맛을 설명할 수 없고, 추상적인 사고나 내면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일등 공신이 바로 언어다. 언어 덕분에 인류는 교류의 장을 엄청나게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언어를 사용하기 전에 수천 년 동안 손짓과 몸짓에 의존해 오다가 의사 전달에 한계를 느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개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생각까지도 타인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이론에는 겉으로 드러난 언어, 즉 구어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촘스키는 기존의 이론과 달리 초창기의 언어가 내면의 사고를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정보 처리, 계획, 평가, 추론 등 냄녀의 사고력이 언어를 사용하면서 신뢰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구어의 등장은 컴퓨터 초기 모델에 스피커를 부착하여 업그레이드 시킨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언어를 사용하기 전에 매우 과묵하고, 일상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는 타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학자들 중에는 언어의 주기능은 내면의 개념을 구어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외부 소통을 위해 개발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언어의 발전은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졌다.

언어의 기원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지만, 사고에 언어가 추가되면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면의 언어가 말로하는 언어보다 먼저였던 나중이었던, 그리고 발성의 기원이 노래였건 육아였건 몸짓이었건, 가십이었건, 집단 대화였건, 또는 용량이 커진 두뇌때문이었건 간에 인류는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토리텔링과 직관에 대하여... 길가메시 서사시가 점토판에 기록되고 무려 5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음식과 집, 소통 방식, 의술 그리고 출산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험담이 마치 우리의 이야기인 것처럼 가깝게 와닿는다. 길가메시는 친구 엔키두와 함께 자신의 용기와 도덕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마치 신석기 시대 버전의 델마와 루이스를 보는 것 같다. 그들이 겪은 여러가지 이야기에서 우리는 많은 공감을 얻는다.  길가메시 이야기 이후로 5000년이 흘렀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약 5000년 전에 씌였으니 그 전후로 많은 이야기들이 씌여졌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오랜 세월동안 해 온 일이다.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동은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과 우리 몸의 입자 배열에 각인된 물리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이 조합의 핵심 요소인 취향과 본능은 생존력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했다. 우리가 아는 한 진화는 낭비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의 본능을 억제하는 유전적 별이가 일어나면 이야기를 할 시간에 창날을 다음고 사냥에 더욱 집중하여 생존 기회가 더 높아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진화의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른다. 

학자들은 스토리텔링 능력이 살아남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수천 세대를 거슬러가며 추적해 보았지만 거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패턴을 결정한 진화적 요인을 찾는 연구로서, 앞으로 자주 언급될 것이다. 자연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다양한 행동이 생존과 번식에 미친 영향이다. 그러므로 타당한 설명을 제공하려면 고대인의 심리적 경향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시대(문헌사료가 존재하는 시대)는 200만년에 달하는 인류 전체의 역사의 0.25%에 불과하다. 학자들은 이런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대의 인공물을 세밀히 관철하거나 현존하는 수렵 부족에 민족지학적 분석법을 적용하거나, 두뇌의 구조적 변천 과정을 추적하는 등 과거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을 개발했다. 여기서 얻은 증거를 하나로 모으면 이론의 자유도가 크게 줄어들지만, 아직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중에는 스토리텔링의 적합한 역할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하는 이론도 있다. 사실 인간의 행동 경향은 다른 진화의 부산물일리도 모른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은 진화는 좋은 것만 골라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뉴런으로 가득 찬 두뇌가 생존에 유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구조적 특성 때문에 인간이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미지 트레이닝하여 생존능력을 높히는 두뇌 시뮬레이션 게임이기 때문이다. 출처 : West Virginia University

다들 알다시피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유용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요즘 누가 잘나가고 누가 슬럼프인지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믿을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복잡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보를 교환하면 사회적 지위가 견고하게 유지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더 높아지기도 한다. 지어낸 이야기에는 이런 종류의 정보가 많기 때문에, 적응에 초점을 맞춰 진화해온 우리는 이야기가 아무리 황당해도 집중해서 듣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뇌는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은 진화의 패키지 거래를 통해 덤으로 얻은 능력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하고 듣고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파하는 것이 그저 가십을 옮기는 잡담에 불과했다면, 이런 소모적인 능력은 진화의 와중에 자연스럽게 제거되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듣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겪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미리 연습하여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는 재미있고 안전한 두뇌 운동이다. 다재다능한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이 사실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은 체스 게임과 같고, 생존 전략은 유명한 체스 게임을 기록해 놓은 책과 같다. 이런 책을 미리 읽어 두면 곤경에 처했을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상상의 목록을 만들어 놓으면, 자신이 겪어 본 적 없는 비상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두뇌 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경험을 넓히는 좋은 방법이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조너선 갓셜은 문학적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면 돈키호테처럼 희극적인 정신병자가 되거나, 엠바 보바리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론토 대학교의 심리학자이자 소설가인 키스 오틀리는 인간의 뇌는 소설에 묘사된 상황을 현실로 간주하여 컴퓨터처럼 시뮬레이션을 실행한다며 스토리텔링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스토리텔링을 비행사 훈련용 시뮬레이터에 비유해보자. 당신이라면 시뮬레이터에 어떤 상황을 입력할 것인가? 견습 비행사가 노련한 비행술을 익히려면 시뮬레이터에서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그 답은 창조적 글을 쓰는 101가지 방법의 첫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대립(갈등)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는 내적 또는 외적으로 위험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현실적이건 상징적이건,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야기에서 갈등요소가 빠지면 따분한 이야기로 전략하기 십상이다. 시뮬레이터에서 실행되는 다윈의 컨텐츠도 마찬가지다. 갈등과 어려움이 없으면 이야기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우리는 매일 몇시간씩 밤에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REM 수면 상태에서 만들어내는 꿈을 말하는 것이다. 한 세기 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발표한 후로 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지만 꿈을 꾸는 이유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쥐를 대상으로 더욱 정교한 실험을 수행하여, 꿈을 꿀 때 나타나는 두뇌의 패턴이 깨어 있ㅇ르 때의 패턴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과 함께 꿈에서 익힌 미로 찾기 전략을 생시에 적용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고양이와 쥐는 꿈을 꾸면서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와 쥐의 특성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지만 언어가 가미된 우리의 마음도 이와 비슷한 목적으로 꿈을 꾸는 것 같다. 우리는 꿈속에서 지적, 감정적 훈련을 통해 지식과 직관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야기 시뮬레이터의 야간 버전 인 셈이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꿈과 달리 혼자 만들고 소비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다른 동물보다 사회성이 강한 우리 조상들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생존과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었을 것이다. 

물리학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외계인어를 방불케 하는 전문 용어와 방정식이 난무한다. 1915년 11월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거의 완성한 상태에서 방정식을 이리저리 갖고 놀다가 수성의 궤도가 뉴턴 역학의 예상치에서 미세하게 벗어난 이유를 알아내고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을 만끽했다고 한다. 거의 10년 동안 수학의 풍랑을 헤쳐 온 끝에 드디어 육지에 도착한 것이다. 추상적인 수학과 전문 용어로 쓰인 이야기는 우주 만물의 탄생과 변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듣는 사람은 우주의 경이로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이것은 우주를 경험하는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실험과 관측으로 입증된 수학을 통해 낯설고 경이로운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자연어로 말해 온 이야기들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일상적인 관점을 탈피하여 잠시나마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는 스토리텔러(화자)의 눈과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야기로 진행되는 비행 시뮬레이터는 우리 마음 근처의 독특한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렇다면 이 독특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화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낳았을까? 학자들은 그렇다고 생각해왔다. 인간이 진화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성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일하면서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완벽한 조화는 아니더라도, 협동 정신을 충분히 발휘하면 생존 확률을 높힐 수 있다. 무리의 안전뿐만 아니라 혁신과 참여, 위임, 그리고 공동의 목적이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성공적인 집단이 되려면 이야기를 통해 들은 다양한 경험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우리는 주로 이야기를 통해 경험과 기억을 체계화한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에게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고 간접 경험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집단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바람직한 선행에서 흉악한 범죄에 이르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탐구한다. 이야기 속에는 고결한 야망에서 무자비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의 동기가 담겨 있고, 위대한 승리에서 뼈아픈 패배에 이르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할 수 있다. 문학 연구가 브라이언 보이드가 강조한 대로, "이야기는 사회에 대한 친밀감을 유도하고 사회의 규모를 확장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여 자신의 경험 뿐만 아니라 타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려는 욕구를 자극한다. 물론 여기에는 실존하는 타인뿐만 아니라 상상 속의 타인도 포함된다." 라고 했다. 신화, 기담, 우화에서 일상적인 사건의 수려한 서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는 인간이 갖고 있는 사회적 본성의 핵심이다. 그리고 수학을 이용하면 또 다른 현실을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감정을 교환한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개념 도식 중 하나다. 진화심리학자의 선구자인 인류학자 존 투비와 심리학자 레다 코스미데스는 그 이유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후천적인 개인의 경험에서 얻은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생명체가 진화하여 인간으로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우리가 입자를 볼 수 있는 초인적인 시력을 갖고 있다면, 입자의 궤적이나 양자역학적 파동함수를 통해 생각과 기억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에게는 경험의 팔레트가 이야기로 채색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를 입자가 아닌 이야기로 채색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물론 형식이 같아도 내용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경험은 이야기의 구조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도 많다. 그 대표적 사례가 과학이다. 과학자가 현실 세계의 커다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놀라운 통찰을 이끌어 낸 일화는 드라마틱 영웅담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과학의 성공 사례에 관한 이야기는 일반적이 모험담과 거리가 멀다. 과학의 본분은 객관적인 현실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거두는 것이므로 과학적 설명은 표준 논리를 따라야 하고, 재현 가능한 실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과학은 주관적 색채를 최소화하여,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낸다. 슈뢰딩거 파동방정식은 전자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수학으로는 슈뢰딩거를 포함한 인간을 서술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적 현실을 넘어 모든 시공간과 우주 만물의 이치를 서술하려면 이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 물론 양자역학은 그 대가를 기꺼이 치렀다. 

현실이건 허구이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개인적인 사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이건 허구이건 상징적이건 직설적이건 간에, 스토리텔링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일관성과 가능성에 기초하여 자연의 패턴을 찾고, 이미 알려진 패턴을 조합하여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통해 표현한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준비하고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새로운 연구가 과학계에 수용되려면 수수께끼 같은 데이터를 설명하거나, 중요한 이론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과학자들이 후속작업을 이룰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적 발견은 전문가들의 손을 통해 이뤄지지만, 특정 이론은 과학을 넘어 대중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주의 기원이나 시간의 본질에 관한 해결적인 이론이 등장한다면 일반 대중들도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바뀔 것이다. 

지난 수천년 동안 세계 각지의 문화권에서는 자기 종족의 우월함과 현실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을 그들만의 이야기에 담아서 전수해왔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로서, 대부분이 신성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신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지역의 문화를 수호하는 초자연적 이야기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비극과 환희, 역사와 환상, 모험과 자기 성찰이 반영된 신화는 오랜 세월 동안 넓은 지역에 퍼지면서 개인과 사회의 기본 틀을 세우고 가치를 보존하는 문화 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학자들은 신화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오랜 세월 동안 연구해왔다. 20세기 초에 스코틀랜드의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져 경은 신화를 고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로 정의했고, 스위스 정신분석가 카를 구스타프 융은 원형(모든 사람의 무의식에 내재된 심리적 행동 유형)의 개념에 기초하여 신화를 경험의 공통적 특성에 대한 서술이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은 모든 신화들이 단일 신화라는 하나의 원형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하버드 대학교의 언어학자 마이클 위첼은 신화의 원형을 파악하려면 개개의 신활르 파고드는 대신 전체적인 전통에 스며든 다양한 신화를 시작하여 종말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묶음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화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그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아직은 뚜렷한 정설 없이 논쟁과 반론만 난무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다양한 신화들을 하나의 기원으로 설명하면 여러모로 편리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복잡다단한 인간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축약하는 것은 무리한 시도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종교학자이자 작가인 캐런 암스트롱은 거의 대부분의 신화가 죽음과 멸종에 대한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신화의 교훈을 따라야 한다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신화에는 왜 위험이나 죽음, 또는 파괴와 같은 요소가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일까? 이 이유는 갈등과 재난은 이야기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표준 규범을 완전히 뒤집지 않은 한, 갈등과 재난이 누락된 이야기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신화의 핵심(특정 장소나 종족의 기원, 풍습의 논리적 근거)에 이런 극적인 요소를 끼워넣으면 이야기가 내재된 딜레마가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기가 쉽지 않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낼 때부터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순간을 초월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과거와 미래를 별 어려움 없이 오락가락할 수 있으며, 계획하고 설계하고 조정하고 소통하고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은 여러 면에서 유용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적 기민성을 함양하여 과거에 살았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각 개인의 삶이 마무리되는 불변의 패턴을 추측하고, 삶과 죽음이 절대 깨지지 않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작을 되돌아보는 것은 끝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과 같고, 삶의 방식을 성찰하는 것은 삶의 부재를 성찰하는 것과 같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가장 확실한 깨달음이며, 마지막을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야기에 죽음과 파괴가 주류로 등장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고대 신화에 거인이나 불을 뿜는 뱀, 소머리를 한 인간등과 같이 비정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야기는 신기하고 놀라운 구석이 많을 수록 좋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그 자리엣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터무니 없는 내용이라면 아무리 신기하고 놀라워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즉,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끌려면 최소한의 타당성을 갖추어야 한다. 

언어는 신화를 창조하는 엔진의 출력을 높여준다. 언어는 여러 가지 상상을 조합하여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을 창조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런 능력을 획득한 후부터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혁신이라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앞에서 의식을 논할 때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주변의 모든 대상에 마음을 부여한느 습성이 있다. 다른 사람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먼거리에서 바라보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에게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투영한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바람직한 습성이다. 낯선 사람이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행동하면 경계를 풀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의도와 욕망을 부여하여, 그들을 사람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심리학자 저스틴 배럿과 인류학자 스튜어트 거스리가 지적한대로, 대상에 마음을 투영하는 우리의 습성은 가끔 정도를 지나칠 때가 있다. 물론 이것도 진화론적 측면에서 좋은 습성이다. 달빛에 비친 작은 나무를 사자로 오인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표범이 다가오면서 내는 소리를 나뭇가지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로 착각했다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주변 사물에 속성을 투영할 때에는 과소평가보다는 과장하는 쪽이 유리하다. 이것은 분자진화의 성공 사례인 DNA와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스토리텔러(인간)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교훈이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물을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가끔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바위나 나무 앞에서 고민거리를 털어놓기도 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밴 습성이다. 그러나 주변의 사물이 계략을 꾸미고, 계획을 세우고, 나 모르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나를 공격하는 상상에 빠질 때가 더 많다. 모든 소리에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고 위험과 파괴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를 통해 현실적 요소와 환상을 적절히 조합하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평범한 주인공이 초자연적 능력을 부여받아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는 이야기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수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이런 이야기에 매료된 우리 선조들은 극적인 요소를 조합하여 고대 세계를 조망하는 이야기의 전형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탄생한 신화 중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흔드는 힘, 즉 종교의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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